걷기의 의미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
내가 걷기를 시작한 이유는 몇 가지 계기에서 시작되었다.
젓 번째 계기ㅡ 8년 동안 안착했던 동네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새롭게 둥지를 튼 동네에서 우연히 발견한 장소가 있었다. 아스팔트 길에서 몇 발짝만 벗어나면 자연과 맞닿아 걸을 수 있는 길이였다. 온통 초록으로 물들어 빽빽하게 우거진 나무와 짹짹짹 지저귀는 새소리 맴맴맴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한대 어우러진 테크 길이 보기 좋게 조성되어 있었다. 거기서 조금만 시선을 옆으로 돌리면 샛길이 보인다. 흙을 밟고 오를 수 있는 작은 능선도 있다. 도심에서 자연을 벗 삼아 걸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와우!~벌써부터 내 심장은 사정없이 요동치며 흥분되어 뛰고 있다.
두 번째 계기 ㅡ마흔 중반을 넘어서면서 심신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모든 인간관계의 고립과 무의미 해져버린 가족 간에 벌어진 틈들은 누군가 희생하고 참는다고 더 이상 관계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잘 참고 견디고 살아왔다고 느꼈던 나 스스로가 더 이상 참아내지 못하겠다고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저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사회와 가족과 지인과의 관계 속에 나란 존재는 미미했다. 나 스스로가 자처한 것도 누군가에 만들어진 것도 있었다. 하지만 여태껏 불평 없이 잘 살아왔다. 그런데 느닷없이 나는 누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캐묻고 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나란 존재 자체가 신기루 같은 허상일 뿐이란 혼란 속에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만 있기도 했다. 잠도 잘 수없고 억울함과 후회, 미움이 거센 밀물처럼 밀려와 쓰나미처럼 사라졌다. 다시 한번 젊고 싱싱했던 리즈시절로 돌아가 화양연화를 꿈꾸고 싶었다. 난 그대로 나인데 다른 모든 것들은 모든 이들은 모든 시간들은 나란 존재를 부정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대부분의 중장년 여성이 겪고 있는 갱년기의 전초전일까..
세 번째 계기ㅡ 엄청난 혼란기를 겪고 우울에 빠져있는 나를 누군가의 도움 없이 오롯이 스스로 일으켜 세우고 싶었다. 난 정적이고 내성적이며 유독 남 의식을 잘하는 성향의 소유자다. 그러다 보니 사는데 제약이 많았다. 이런 말을 하면 상대가 상처 받을까, 이건 no라고 단호하게 말해야 했는데.., 상큼하고 달콤한 디저트를 먹고 싶은데 대세가 아메리카노라면 따라야지, 어깨라인이 드러난 옷을 입으면 주책이라고 생각하려나 등등 수도 없이 질문하고 답하고 피하고 포기한다. 지레짐작하는 것들이 날 불편하게 만든 날도 많았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러한 내 모습을 배려심이 많고 따뜻한 사람 같아요란 온기 있는 말로 표현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난 생각한다. 내가 태생부터 타고난 성향은 완전히 부정하지 못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데리고 사는 길밖엔 없다. 데리고 살면서 좋은 점은 잘 유지하고 안 좋은 점은 조금씩 천천히 변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수정해 나가야 한다. 타고난 성향을 바꾸겠다고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시간을 부정했을 때 어떠한 결과가 나오는지 무수히 실패한 경험을 알고 있다. 내 옷이 아닌 남의 옷을 입고 화려한 무대에 서있는 모습이다. 이것도 아닌 저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상태 그 자체이다. 애초부터 날 부정한다는 건 모순에서 출발하는 거다. 날 부정한 상태에서 새로움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그렇게 살지 않으려면 온전한 내 모습을 부정하지 않고 몇 가지 색채만 덧칠해주며 시시때때로 내 마음과 몸이 힘들어하지 않는지 돌보는 수밖엔 없다. 힘들면 쉬어주고 다시 변경하고 그럴듯하면 칭찬해 주는 거다. 그래서 두 개의 모습이 잘 어우려 졌을 때 어제보다 나은 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기로 시작한 것이 걷기이다.
혼자 걷기도 때론 마음 맞는 이와 걷기도 한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햇살이 비추면 비추는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눈이 내리면 내리는대로
사시사철 걷기와 함께하면 무의미하게 존재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의미를 더하게 된다. 의미 있는 자연, 의미 있는 사람이 된다.
비가 오는 날의 걷기는 자연과 곤충ㆍ동물들과 만나기에 더없이 좋다. 넓은 잎사귀 위로 후드득후드득 똑똑 리듬을 타고 떨어지는 빗소리는 다람쥐가 도토리를 줍다 바닥에 떨어뜨리고 또 줍다 떨어뜨리는 소리 같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은 움푹 파인 물웅덩이가 생긴다. 웅덩이에 빠진 지렁이를 발견한다. 어떡하든 흙바닥으로 올라오기 위해 사투를 버리는 지렁이를 볼 때면 나뭇가지로 살짝 올려주고 밟지 않으려고 조심히 비껴 걷는다. 지렁이는 살생을 하지 않은 내게 고마워하겠지..
햇살이 비추는 날에 걷기는 높게 솟아오른 활엽수 나무가 만들어 놓은 그늘에 누워 하늘을 보는 묘미를 맛볼 수 있다.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린다. 내 유년시절도 유일한 즐길 거리는 걷기였다. 온 동네 언니ㆍ오빠ㆍ친구ㆍ동생들도 별반 다를 바 없어 아침밥숟가락을 놓기 무섭게 밖으로 나와 들로 산으로 걷고 또 걸었다. 다 함께 풀밭에 누워 파란 물결 위에 하얀 구름을 그려 넣은 하늘을 보곤 했다. 그러다 개구 짖고 우스갯소리 잘하는 동네 오빠 한 명이 어이없는 말 한마디를 하면 무엇이 그리도 웃겼는지 누구랄 것도 없이 손뼉을 치며 박장대소했다. 그때는 살아가는 인생이 고만고만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차별도 위축도 외로움도 주고받지 않았던 순수했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으로 걸어왔던 과거의 나와 지금까지 그런 추억을 간직하고 살아온 현재의 내가 만나 오늘도 걷고 또 걷는다.
바람이 부는 걷기는 자연에게 무한 감사함을 느낀다. 헉헉 거리며 숨을 가쁘게 몰아 쉬며 등줄기부터 땀이 흐르고 양쪽 볼살이 빨갛게 달아오를 때쯤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 시원한 바람은 나에게 조금은 쉬어가도 괜찮다고 다독여 주는 것 같다. 인생을 조바심 나게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 정작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되는 오류를 범한다. 그 순간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와 옴짝달싹 못할 때 잠시 쉬어가도 늦지 않음을 일깨워주듯 앞만 보고 걷고 또 걷기만 하는 나에게 바람은 다가와 미쳐 보지 못한 풍경들을 바라보라고 불러 앉힌다. 보라색 쑥부쟁이, 누린내 풀, 하얀색 등골나무, 노란색 추리 꽃, 금계국 꽃들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몸을 맡기고 흔들거린다. 나와 손잡고 바람 노래 가락에 맞춰 춤을 추고 싶다고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기꺼이 함께 춤을 추겠노라고 콩콩콩 발장구 스텝을 밟으며 소리 내어 걷고 또 걷는다.
사계절의 마지막 묘미인 눈이 내리는 걷기는 사실 자기와의 싸움 일 때가 많다. 누가 시켜 걷기를 하는 것도 아니것만 억지로 시켜서 걷는 것 마냥 대문 밖을 밀고 나서기부터 어렵다. 걸을까 말까, 쉴까 말까, 눈이 그치면 나서야지, 아니 아니 눈이 녹으면 걸어야지를 반나절 갈등하고 나서야 나서는 길이 된다. 누가 보면 그렇게 하기 싫은 걷기를 왜 하냐고 그것도 병이라고 말하겠지. 하지만 밤새 내려앉은 눈의 무게를 오롯이 혼자 감당하고 서 있는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잘 견디고 있다고 조금만 견디면 그 무게도 햇살이 비춰 한순간 봄눈 녹듯 사라질 거라고 인간사 인생의 무게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겨울나무와 나 자신에게 다독여 줄 수 있는 내가 비로소 좋아진다.
이렇듯 자신과 자연과 걷기는 삼위일체 일심동체가 되어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사시사철 걷기의 묘미를 알게 되면 일상이 되고 취미가 되어 걷기 찬양을 아니할 수 없다.
걷기가 취미이자 일상생활이 된 배우 하정우 씨가 쓴 걷는 사람 하정우 책에 보면
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하정우 씨 본인이 생각하는 걷기의 의미는 이렇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걸어 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럼 내가 생각하는 걷기의 의미는 무엇일까
진심으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
지나온 것들의 후회와 아쉬움, 화려했던 한때의 나와 직접 마주 앉아 천천히 이별할 수 있는 시간
현재의 내가 얼마나 애쓰며 살아내고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걸어가고 있다고 스스로 안아 줄 수 있는 시간
지나온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잘 데리고 융화시켜 미래의 나는 앞으로 천천히 함께 걸어 나갈 시간
나만큼 변화무쌍한 인생을 용감하게 해쳐나간 동거 동락한 이들과 함께 걸어 나가는 시간
더 나아가 내 존재를 치유해주고 사랑해 주었던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손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주어야 할 사명의 시간
어쩌면 나에게 걷기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낸 마침표가 모여서 어떤 고난이 와도 주저앉지 않고 한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리라는 무언의 약속일 지도 모른다.
얼마의 생이 허락될지 모르지만 내가 살아가는 동안 걷기의 의미는 계속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