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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선생 Feb 11. 2022

스타벅스 카페에 선별진료소

팬더믹 시대의 여행



 밤 8시 20분 출발 비행기이지만 동행인 딸과 인천공항에 오후 3시에 도착했다. 예전 같으면 공항 가는 길은 설렘과 흥분이 앞장을 섰지만 이번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따라붙었다. 코로나가 심각한 상황이라, 공항은 무척 한산했다. 예전의 모습을 생각하면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가방을 끌고 우리는 지하에 있는 코로나 검사소를 먼저 찾아갔다. 항원검사를 받아 음성이 나와야 비행기를 탈 수 있다. 방역복을 입은 의료진들이 칸막이 안에서 손만 밖으로 내밀어 이것저것 알려주고 난 후, 내 콧구멍에, 순간적으로 면봉을 넣었다 뺐다. 능숙한 일침이다. 돌아다니지 말고 한 곳에 있다가, 전화 문자로 결과를 받으라고 주의를 줬다. 

 모든 시설은 그대로 있고 사람만 사라진 공항 안 모습이 영화세트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주인공들이 언제 나타나 북적일 것인가? ‘혼자 무슨 재미?’ ‘함께해야 더 신나고 사는 맛이 난다.’란 말들이 떠올랐다. 시무룩한 마음으로 기다린 지 한 시간이 미처 안 됐을 때 ‘음성’이란 문자가 왔다. ‘혹시나’ 하는 불안에서 벗어났다. ‘나는야 미국으로 여행 간다.’ 속으로 외치며 스스로 기분을 끌어올렸다. 

 여행객이 많지 않아 좋은 점도 있다. 짧게, 줄을 서고 빠르게, 검사 받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다양한 상품들이 자태를 뽐내는 면세점은 화려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하지만 쓸쓸하다. 고객 없이 환하게 빛나는 조명 빛에 처연함이 느껴졌다면 과잉된 감정일까?

 비행기는 제 시간에 이륙했다. 이코노믹 4인 좌석에 한 사람씩 앉았기 때문에 나중에는 누울 수 있어서 좋았다. 모두 마스크를 하고 승무원들은 제복 위에 비닐옷을 한 겹 더 입고 위생장갑을 꼈다. 코로나와 일상을 떨쳐버리고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기분은 비행멀미처럼 아찔했다. 내 앞에 앉은 할매는 마스크를 두 개, 겹으로 썼다. 그래도 승객들에게 두 번의 식사가 제공됐다. 나는 커피도 마시고 기내식도 맛있게 해치웠다. 코로나 공포에 사로잡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기 싫었지만 한편으로는 겁이 났다. 

 거의 열 시간 넘는 비행 끝에 별 탈 없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신고를 할 때 여권, ESTA, 귀국 비행기 예매 티켓. 여기에 추가된 서류가 바로 코로나 백신접종 영문확인서, 어제 인천공항에서 받은 항원검사 음성 확인서다. 이 서류들을 보여주고 또 좌우 손가락을 번갈아, 큰 눈알만한 유리판에 대고 지문확인까지 받았다. ‘에휴, 까다롭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뭔 질문을 그리해대는지 결국 한국인 도우미가 와서 통역까지 해줬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 왔느냐, 어디에 있을 것이냐, 왜 오랫동안 있느냐, 전에 언제 미국에 왔었느냐, 꼭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 등등’ 내가 불법체류자로 남을 것 같아 보였거나 이 나라에 도움이 안 될 할매로 보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국적이 다른 딸은 다른 통로를 통해 벌써 통과해서 짐까지 찾아놓고 날 기다렸다. 

 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2시간 반 후 딸집이 있는 도시에 도착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델타, 오미크론 이름만 들어도 오싹해지는 바이러스를 뚫고 무사히 집에 들어왔다고 딸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잘 물리쳤는지는 아직 모른다. 시차 때문에 비몽사몽으로, 상공에서 보낸 화요일 하루를 더 살았다. 이 더 산 하루는 여지없이, 돌아갈 때 흔적도 없이 ‘하루’가 사라질 것이다.

 공기가 맑고 유채꽃이 노랗게 피어 햇살에 나풀거리지만 코로나 좀비떼 악몽이 마음 한편에서 계속 살아났다. 집 앞에 태평양이 펼쳐져 있는 도시지만 이튿날 아침에 우리는 코로나검사소부터 찾아갔다.  

 4성급쯤 돼 보이는 호텔은 정갈하고 넓은 정원에는 초록나무가 많고 꽃이 피어있어 아름다웠다. 정원 끝에 카페가 있고 그곳이 바로 코로나검사소다. 카페주방에는 커피잔들이 나란히 놓여있거나 걸려있고 커피내리는 도구, 봉지에 든 커피, 여러 가지 주방기구들이 그대로 놓여있다. 그리고 의자들은 겹겹이 쌓여있고 홀 가운데 탁자 하나 놓고 한가하게 한 여자가 혼자 앉아 있다. 그녀는 우리를 보고 마스크를 썼다. 면봉을 하나씩 주더니 우리보고 스스로 콧속에 면봉을 넣어 채취를 하라고 했다. 검사 받는 사람들이 없고 주위에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결과는 4~5일 후 이메일로 보내준다고 했다. 집에만 있으라거나 마스크를 쓰고 다니라거나 코로나 주의하라는 어떤 말도 없다. ‘아니, 우리가 코로나 걸린 사람이라면 어찌되는 것인지’ 참 어처구니가 없다. 

 “이게 선진국이란 말인가? 호텔 카페가 선별검사소라니, 이게 뭐하는 짓인지 애들 장난도 아니고”

흥분하는 내게 딸의 대답은 명쾌했다.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합니다. 자유를 박탈하지 않습니다.”

 ‘자유 좋아 하시네!’ 내 볼멘소리가 입안에서 웅얼거렸다. 


출국장 안 - 면세점에도 라운지에도 사람이 별로 없네요.


텅빈 공항  - 천장과 바닥을 비치는 한글 자음과 모음


바닷가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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