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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색고양이상점 Feb 09. 2024

명상일지

2023년 지금에 대한 자각

인생을 12번 돌아보며 버렸다. 


 지금 와서 곱씹어 보면, 명상에서 '버린다'는 것은 '나'를 객관화한다는 의미와 비슷한 듯하다. 그래도 잘 와닿지 않는다면 내가 표현하는 재주가 부족하거나, 읽는 분들께서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경험이 없거나 일 텐데, 그럼에도 스스로를 거리 두고 생각하는 일은 꼭 해보시길 바란다. 방법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10월 2일, 명상에 대한 생각


인생을 12번 돌아보며 버렸다. 슬프고, 힘들고, 아프다고 느낀 기억에서 조금은 거리가 생긴 느낌이 든다. 허상을 버린다. 기억을 버린다. 본래 얼굴을 회복한다. 찰나이지만 과거는 없다는 마음이 일었다가 그쳤다. 지나간 일들은 있지만 그곳에 연결된 나는 없고, 그곳들에 연결된 내가 있다는 믿음이 신기루라는 생경한 자각이 일었다. 지나간 것들과 지금의 나는 이미 끊어졌다는 자각이 마음을 오롯한 상태로 만든 느낌이다. 과거와 지금이 오롯이 끊어진다면, 앞으로 벌일 일은 오롯한 지금의 내가 일으킨 선택이다. 그런 점에서 오롯한 나의 선택이 어리지 않고, 단호하며, 자유롭고, 독립적일 수 있는 것 같다. 오롯한 스스로가 되어서 내리는 선택은 마음에 어떤 부담도 주지 않고, 애를 쓰지 않는 듯하며, 스스로 그러기를 택하는 것 같다. 어떤 상처나 기질 때문에 떠밀려서 내리게 되는 선택이 아니라.


10월 5일, 명상일지


 기억을 계속 버리다 보면, '지금'밖에 없다는 마음이 드문드문 일어난다. 생활양식, 양육환경, 성격, 기질이 토대가 되어 머릿속 그림을 만들고, 그것이 다시 토대가 되어 '지금' 오롯이 존재하지 못하게 누르고, 매 선택에 일정한 '길'을 만들어 과거의 패턴대로만 살게 되는 듯하다. 기억된 그림을 계속 버리는 순간마다, '지금'의 순간에는 '기억된 그림''없음'을 자각한다.


 명상에서 버리는 방법에 집착해서 '마음이 잘 비워지는지 확인하려는 마음'은 지금까지 형성된 습관 같은 마음이다. 의심하고, 확인하고, 완벽하려 하는 마음. '마음이 잘 비워지는지 확인하려는 마음'도 비웠다. 떠오르는 인생 사진의 순서와 감정적 반응들은 계속 버리고 나면 꽤나 공(空)해진 듯하고 마음이 가볍다.  



돌아보며


  10월 2일 5일에 쓴 명상일지를 돌아보면 '지금, 여기'에 오롯이 존재하는 경험을 했었나 보다. 한편으로는 '기억된 인생의 그림들'이 어떤 식으로든 '지금, 여기'에 살지 못하게 하도록 방해한다는 마음에 이르렀었나 보다. 우리는 경험을 토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경험을 토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바보 같은 짓이다. 과거에 일어난 경험을 앞으로 내일 판단에 반영하는 일에는 바보 같은 면들이 있다. 첫째, 과거의 현실과 지금의 현실은 다른데, 과거의 판단을 미래에 투영하는 건 현실을 잘 반영하지 못한 판단을 내리게 될 수밖에 없다. 둘째,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것인데, 과거의 '나'가 느낀 상황에 대한 감정들을 토대로 '지금의 나'가 내릴 판단에 집어넣는다는 게 두 번째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내리는 80%의 선택이 두려움에 기초한다고 했다. 사람마다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 트라우마가 모두 다르지만, 모두 과거의 강렬한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이런 감정이 사람의 판단에서 80%나 차지한다면, 우리는 과거의 압박과 상처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비슷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사람들은 '인간은 원래 안 변한다'라는 소리르 많이 하는 것 같다.


 내게 명상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의 고리를 느슨하게 하거나 끊어주는 역할을 한다. 인생을 돌아보면서 지나온 날들이 지금과 무관하다는 자각에 이르는 경험이 잦아질수록, 과거와 현재의 고리가 희미해진다. 지난 난 날들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한 기억을 비워내고 거리 둔다는 것은 그 기억을 형성하도록 주어진 모든 환경적 요소, 예를 들면,  부모의 가치관, 당시 나의 감정, 사회 문화적 양식과 거리 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내용을 알아도 마음에 닿지 않는다면 사람의 마음과 행동은 변하지 않는다. 머리와 마음의 거리가 가장 멀고, 그 사이에는 무수한 장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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