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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색고양이상점 Feb 11. 2024

명상(기억일기)

2023년 11월 07일 

 

 그동안 마음이 상처 입은 상황 속에서 어떻게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많이 떠올랐었다. 오늘은 '상처'입은 과거의 '나'의 입장에서 기억이 떠오른 게 아니라, 과거의 '나'가 어떤 상황에서 스스로를 상처 입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비집고 들었다. 


 1. 중학교 1학년때부터 고1 이전까지 수학 공포증에 시달린 적이 있다. 시험을 잘 보지 못하면 아빠에게 맞아야 했기 때문에 시험지를 보면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그 무언가를 회피하려고 하는 마음의 뿌리가 이 지점인 듯하다. 엄마는 학교에 햄버거를 돌렸다. 숙제를 제출해야 할 때 내가 못하는 것은 능력이 훌륭한 친구에게 내가 못 하는 것을 부탁해서 내 것인 양 받아왔다.


  명상을 통해서 들여다보니 나는 그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수치심 무력감이 들었었나 보다. 있는 그대로 인정받을 수 없고, 어떤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어쩌면 자식을 도구로 여기는 엄마의 명예욕에 이용되는 아이가 갖는 감정들이었던 것 같다. 과거의 나가 느낀 감정은. 인정을 받기 위해 부모가 혹은 누군가가 좋아하는 제스처를 일부러 보여준 적이 많다. 그럴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었나 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서 성격이 굳어질 때까지 부모의 양육방식을 보면 어린 시절 나는 스스로에게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길러졌다. '나'를 있는 대로 긍정하지 않고, 조건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으로 나를 보게 되었다. 

 20대가 되어서 나는 대학을 자퇴했다. 돌이켜보면 '나'가 아니었던 10년 이상의 기간에 억지로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때부터 어쩌면 아직도 스스로를 찾는 여행 중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2.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마음에서 어쩌면 '나'와의 결별이 시작되는 듯하다. 


오늘은 명상을 끝내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기보다는 버겁다. 마음을 비웠다기 보단, 기억된 생각으로 마음을 채웠다. 마음이 너덜너덜하다. 



돌아보며


이때만 해도 '나'는 늘 부모의 양육방식의 피해자로만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부모의 양육방식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부모가 공부를 못한다고 나를 때렸다 한들 내가 쿨한 성격이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더라면, 공부를 놔버렸다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을 거다. 엄마가 친구에게 대신 그림을 그리게 해 내가 모두가 보는 데서 상을 받았을 때, '내가 그린 거 아닌데?' 하면서 웃을 수 있는 기질이었다면, 괜찮았을 수도 있다. 


어느 순간, '내가 상처받았다고 느끼는 그 상처는 최종적으로 내가 승인한 상처가 아니었던가?'라는 마음에 이르렀다. 과거의 기억을 구성하는 데는 외부적인 자극만 있는 건 아니고 자극에 반응하는 사람의 기질이 또 한몫한다... 이 지점에서 의문이 든다. 나는 누구를 미워할 수 있고, 누구를 탓할 수 있는가. 기질은 나인가? '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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