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어 배우기의 시작
부아앙, 스쿠터의 스트롤을 당겨 매연을 뿜어내는 트럭과 버스들 사이를 달려간다.
일제 중고 스쿠터를 한 대 구입했다.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지 않아 이동하려면 차나 오토바이를 이용해야만 할 때가 있다. 차는 너무 비싸다. 세금이 차 가격의 100% 인지라(지금은 더 비싸졌을 수도) 네팔에서는 경차가 2000~3000만 원 정도 된다. 그래서 조금 위험하지만 중고 스쿠터를 구입하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타 본 적도 없는 오토바이. 거기다 이 곳은 영국, 인도의 영향으로 도로가 좌측통행이다. 적응이 쉽지 않다. 혼자가 아니다. 나만 믿고 있는 아내를 뒤에 태우고 질서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네팔의 도로를 달려야 한다. 긴장된다.
매연을 조금이나마 덜 마시기 위해 마스크를 썼다. 눈을 보호하기 위해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그 위에 헬멧을 썼다(선글라스는 자외선을 막는 용도라기 보단 날아오는 작은 돌멩이를 막기 위한 역할이 더 크다). 장갑과 바람막이용 자켓까지 입고 단단히 무장한 체 첫 등굣길에 나선다.
오늘은 트리부번 대학교에 네팔어를 배우러 가는 첫날이다. 트리부번 대학은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대 같은 네팔 제일의 국립대라고 한다.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낄띳뿔 지역에 있다. 우리가 등록한 코스는 네팔어 코스인데 우리나라 대학들이 운영하는 어학당과 비슷할 것 같다. 1년 단위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4년간 코스를 이수하면 네팔어 국어국문학 학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대학의 신입생이 된 기분이다.
오토바이를 운전해본 적은 없지만 5살부터 시작된 나의 자전거 경력 + 자동차 운전 경력이 헛되진 않았는지 운전 자체는 금방 적응이 되었다. 하지만 도로는 쉬이 적응이 안 된다. 신호도 없고, 차선도 없다. 빠르게 달리는 트럭과 버스도 무섭지만 시커먼 매연과 풀풀 날리는 먼지로 인해 앞도 보이지 않고 숨 쉬시기는 더 무섭다. 갑자기 도로로 튀어나오는 소들도 공포의 대상이다.
복잡한 링로드를 타고 가다 벌쿠 다리를 지나면 트리부번 대학이 있다. 한국이나 네팔이나 대학 건물들은 왜 언덕 위에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 스쿠터는 이 언덕을 힘겹게 오른다. 대충 수업이 진행될 건물 정도만 알고 있지, 어느 강의실인지, 교수님은 누구신지, 수업은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아는 봐가 없다. 아무런 안내도 없다. 오늘 어디선가 시작될 뿐이다.
건물 앞에서 네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서성거리는 것을 보며 직감적으로 이 곳이구나 눈치를 챘다. 이 곳에서 살려면 정보보다는 직감을 더 많이 필요로 하게 될 거란 생각을 해본다. 30분 정도를 입구 쪽에서 기다리자 나이 지긋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나타나 우리 무리를 향해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아마 이 분도 대충 직감으로 얘네가 네팔어 배우러 온 외국 친구들이구나 했을 거다.
교실은 낡고 지저분하다. 칠판과 나무 책상, 의자가 전부다. 학생은 한국인, 미국인, 중국인, 그리고 티베트인(국적상 중국인이지만 이 들의 아픈 역사를 생각하며 티베트인이라 부른다)까지 십여 명으로 규모에 비해 아주 글로벌하다. 앞으로 우리를 가르치실 할아버지 선생님은 연신 기침을 하며 칠판에 꺼, 커, 거, 거어부터 쓰신다. 가나다라부터 배우는 것이다.
네팔어는 뿌리가 산스크리트어라고 한다. 중고등학교 다닐 적에 산스크리트, 갠지스 문명 등 시험 전날 벼락치기에서 보던 단어들인데... 살다 보니 이토록 내 삶에 가까이 올 줄 몰랐다. 어순이 한국어와 아주 유사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순서대로 말을 하면 거의 맞다. 높임말과 낮춤말도 있는데 서양 사람들은 이 개념을 배우기 어려워 하지만 우리는 뭐 늘 해오던 것이니 이 또한 어렵지 않다.
'데바나가리'라는 글자를 사용하는데 네팔뿐만 아니라 인도와 서남아시아 지역 일부에서 사용한다.
선생님은 수업 시간 내내 우리가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개의치 않고 네팔어로만 열심히 얘기를 하신다. 영어처럼 따로 책이나 자료를 보고 공부할 방법도 많지 않다. 힘들지만 계속 듣는다. 눈빛과 몸짓을 읽으며 이해하려 애써본다. 언젠가 들리리라. 언젠가 나도 말하리라. 그런 마음이다. 어디선가 개 한 마리가 나타나 교실로 들어온다. 아무도 내쫓지 않는다. 개는 교실을 한바퀴 순찰하더니 곧 아내 쪽 책상 앞에 드러누워 잔다. 황당하지만 싫지 않은 풍경이다. 네팔어 수업 첫 시간. 낡은 교실에 네팔어 하나 모르는 외국인 신입생들과 할아버지 선생님. 칠판에 새겨지는 또각또각 글씨 소리. 교실에 드러누은 누렁이 한 마리. 이 나라는 왠지 이런 느낌의 여유와 평화가 잘 어울린다. 개는 경계하지 않고, 우리는 개를 내쫓지 않는다. 함께 배운다.
네팔어 잘 배워서 이들과 친구가 되어봐야겠다. 열심히 배워 한 마디라도 더 하면 이들 눈에 예뻐 보이고 떡 하나라도 더 생기지 않겠나? 이런 마음으로 시작해 본다. 다행히도 교실 안도 네팔어, 교실 밖도 네팔어 온통 네팔어다. 살아가려면 배워야 한다. 최고의 동기부여다.
졸지에 네팔 트리부번 대학의 신입생이 되었다.
얼마 전부터 네팔어 사전을 서비스 하기 시작했네요. 네팔에 들르실 일이 있는 분들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네팔 이야기 처음부터 읽기
https://brunch.co.kr/@lsme00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