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ade in Nepal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삶엘 Dec 03. 2015

7_네팔 생활 Lesson 1 속도 낮추기

좌충우돌 네팔 정착기

언제 와요? 빨리요. 빨리


IT 강국(?) 한국 출신의 우리에게 있어  먹고사는 일에 전화와 인터넷이 없다는 건 더 이상 상상 불가인 것 같다. 그 관성은 네팔에서도 여전히 작용했다. 어딜가더라도 연락이 돼야 맘이 놓이고, 이메일도 써야 하고 한국과 영상통화도 해야 한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손글씨로 직접 쓴 편지와 집 전화만 가지고도 아무  문제없이 잘 살았던 것 같은데 참 빨리도 세상도 우리도 변했다.


네팔에서 휴대폰을 사용해 보도록 하자. 우리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이다. 한국에서 사용하던 아이폰3gs를 언락(Unlock)해서 왔는데 다행히 유심만 갈아껴도 사용이 가능하단다. Ncell이란 통신사의 대리점에 가서 여권을 내밀고 가입신청서를 작성하자 유심카드를 준다.

 

길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점상들과 가게들


네팔은 대부분 선불(Pre-Paid) 충전식 요금제를 사용한다. 길을 가다 구멍가게(사투리인지 일본어의 잔재인지는 모르지만 어릴 적 어른들이 말하던 점빵에 아주 가까운 느낌이다)에서 이 충전카드를 구입할 수 있다. 카드를 사서  복권 긁듯이 동전이나 손톱으로 슥슥 긁으면 충전코드가 나온다. 이 걸 통신사에 문자메시지로 보내면 그만큼 충전이 됐다고 알려준다. 하하 신기하다. 우리네 살던 습관이 있다 보니 넉넉히 충전해서 맘 편히 쓰고 싶은데 여기 사람들은 소액으로 충전을 많이 하는지 50이나 100루피 위주로 판다(당시 100루피가 한화 약 1600원). 아내와 서로 문자도  주고받아보고 전화도 걸어본다. 뿌듯하다. 남의 나라에서 뭔가 큰 일을 해낸 것 같아 괜스레 우리 자신이 대견한 기분이 들고  우쭐해진다. 

 

한국산 휴대폰을 크게 광고하고 있다. Ncell 통신사 광고도 보인다. @자왈라켈 로터리


네팔 사람들은 더블 유심 폰을 많이 쓴다. 신기하다.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다. 더블 유심 폰은 유심카드를 두개 꽂을 수 있는 폰인데 통신사마다 잘 터지는 지역이 다르다 보니 그때 그때 통신사를 전환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한쪽이 충전액이 다 소진돼도 다른  한쪽으로 버틸 수 있으니 위급 시에도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다. 예전 산악지형에 강하다고 광고하던  우리나라 전화기가 생각난다.


더블 유심폰(USIM을 꽂는 곳이 두 곳이다) / 이미지출처: http://www.in.techradar.com/photo/46456153.cms


무사히 첫 번째 미션을 완수했으니 이번엔 은행 계좌 만들기. 네팔에도 여러 은행이 있다. 한국인에게 조금은 익숙한 SC(스탠다드 차타드 - 한국에서는 SC제일은행으로 많이 알려졌다) BANK가 있길래 그리로 갔다. 물론 이 곳이 달러화 계좌를 만들어 주는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번호표를 뽑고 자리에 앉아있다. 은행은 한국이나 여기나 기다림이 꽤 길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창구에서 우리 번호를 부른다. 여자 직원이 우리 얼굴을 보더니 외국인임을 눈치채고 한쪽에 있는 데스크를 가리키며 그 곳에 있는 매니저에게로 가라고 손 짓을 한다. 가서 가만히 앉았다.


매니저는 밝은 얼굴로

"나마스떼(안녕하세요?)" 한다. 그리고는 아직은  알아듣지 못하는 네팔 말로 무어라 길게 말을 한다.


"저... 네팔 말 못해요." 영어로 답을 하자

"아, 오케이" 그러고는 내게는 네팔 말만큼이나 알아듣기 어려운 인도식 영어를 아주아주 아아아주 빠른 속도로 쏟아낸다. 흠 위기다. 그래도 굳이 긍정적인 면을 보자면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이다. 잘 도와줄 것 같다.


"음. 저기 계좌 좀 만들려고 왔어요"

"계좌?"

"네, 달러 계좌"

"여기서 학교 다니고 한동안 살아보려고요"

"아 오케이. 그래요 그럼 보증금  2000달러와 학교에 등록했다는 증명서의 사본을 가져오세요. 여권이랑"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일이 진행되고 서류만 내면 통장 개설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돌아왔다.


뿌듯한 마음이다. 바로 근처에 있는 인터넷 회사 사무실에 들러 인터넷도 신청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2000년대 초반 모뎀 속도의 서비스인데 아주 빠르다고 직원이 자랑을 한다. 구글 홈페이지를 클릭하면 1초 정도면 화면이 뜬다고 보여주기까지 한다. 누르자 잠시 틈을 두고 화면이 바뀐다.(솔직히 1초는 아닌 것 같다. 2-3초 정도일까)


'네네, 한국에서 온 우리에겐 소화불량 같은 느낌이지만 왠지 쓰다 보면 인품이 여유로워질 것 같은 서비스네요'  속으로 피식 웃고는 가입서를 썼다. 그런데 휴대폰처럼 인터넷도 선불 서비스다. 한 달치씩 먼저 내야 하고 6개월이나 1년치씩 내면 할인도 좀 해준다. 할인은 솔깃한 얘기지만 아직은 믿음이 부족하니 우선 한 달치만.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 가본다. 제법 크다.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외국산으로 보이는 물건들도 많이 있다. 시장도 들러서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야채가게와 쌀가게 위치도 기억해둔다(배추나 쫀득한 쌀은 네팔 사람들이 안 먹기 때문에 아무데서나 구할 수 없다). 이 곳에서는 어디에서 무엇을 파는지를 잘 기억해두는 것이 중요한 생존 기술이다.


파탄 골목의 오래된 집들 사이도 헤메본다.


인터넷이란 문명의 이기를 강제로 끊은지 일주일이 흘렀다. 분명 3일 안에 와서 설치를 해준다고 했는데... 아직이다. 초조해진다. 이것도 금단현상의 일종이겠지. 전화를 걸어본다. 


"네, 여기 인터넷 신청한 누군데요. 일주일이 지났는데 언제 설치하러 오나요?"

"네. 오늘 갑니다."

"아, 그래요? 언제쯤 와요?"

"그건 모르겠는데 오늘 안에 갈 거예요"


더 불만을 얘기해봐야 뭐 어쩌라구 라는 반응이 분명 돌아올 분위기다. 어쩔 수 없다 기다려봐야지. 하루 온종일 창 밖만 본다. 누구 반가운 손님 오나. 주위가 컴컴해지고 비로서 밤이 돼서야 오늘은 물 건너 갔다는 실망으로 속이 부글거리며 화가 나려 한다.


네팔에서는 화를 내면 상대를 아주 없이 여기는 것이므로  금기시된다라는 글을 한국에서 읽은 적이 있다.(사는 동안  화내며 서로 싸우는 거 많이 봤다). 참아야지. 무슨 사정이 있겠지 참자. 여긴 한국이 아니잖아. 한국만큼  빨리빨리 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 네팔에 왔으면 네팔 법을 따라야지.


그렇게 참을 인을 밤새 그린다. 뒷날 다시 전화를 한다. 어제의 레퍼토리가 ARS 메시지 마냥 반복된다. 오! 이건 익히 한국에서 경험 해 본 '중국집의 짜장면은 언제 출발했냐'이다 문득 순수한 호기심이 생긴다. 과연  언제쯤 올까? 그 후로도 비슷한 통화가 며칠 동안 계속  되풀이되었고, 우리의 네팔산 인터넷은 보름이 넘어서야 연결이 된다.


비단 인터넷뿐만이 아니다. 네팔에서 거의 모든 일은 언제  될지 모른다. 될 때 되는 것이 네팔이다. 안되면 되게 하라라는 모토로 빨리빨리를 외치며 초단위로 경쟁하는 한국인에게는 정말 답답할 노릇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한국인은 네팔에 와서 '이러니 요렇게 가난하게 살지'라는 감정을 품게 된다. 그리고는 한동안 답답함에 스스로 못 이겨 화병이란 풍토병에 걸린다.



이런 네팔리 타임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네팔 사람들이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께 거르네?(뭐 어떡할까?)" 


때로 무책임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그것 때문에 조급하거나  화내지 말고 조금은 느긋하게 기다려보자라는 태도가 보인다. 될 일은 될 것이다. 안 될 일은 무슨 뜻이 있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이 엿보인다. 그들은 빠르지 않지만 기다릴 줄 안다. 네팔리 타임은 늦을 뿐 그렇다고 안 되는 건 없었다. 돌아보면 전화도 개통했고, 은행 계좌도 개설했고, 인터넷도 잘 사용했다.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못한 나라에 가면 우리도 모르게 이들은 게으르다는 색안경을 낀다. 그리고 지내는 내내 이들을 개조해야 될 대상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 우리가 지나치게 조급하고 못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빨리 달려가는 우리는 무엇을 보았고,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가? 그래서 참 좋던가? 결국 옛 어른들이 고백했다. 살아보면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고... 


네팔 사람들은 본시 느긋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받아들이자.

달리 바라봐야 할 때이다. 속도를 줄이고 이 곳의 속도에 맞추어야 한다.



한국이라 무지개가 안 뜨겠는가? 빨리 달려가니 못 보고 지나친 거겠지




네팔 여행 Tip


네팔 여행을 혹 가시게 되면 한국 사람 기준으로 속 터지는(?) 일이 많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네 기준으로 보면 이 곳은 너무나 느리고, 종 잡을 수 없고, 또한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는 때가 많습니다. 우리와 다른 곳이다 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조금 느긋하게 먹으면 훨씬 행복한 마음으로 즐겁게 여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행 계획을 잡을 때 처음 생각한 일정에서 2-3일 정도 더 여유롭게 일정을 잡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트래킹을 가서 아프거나, 기상이 좋지 않거나, 교통편이  마비되거나 하는 일들이 자주 생기기 때문에 한국처럼 일정을 딱딱 맞추는 것이 잘 되지 않습니다. 네팔에서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  사고 없이 여행할 수 있는  첫걸음이니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네팔 이야기 처음부터 읽기

https://brunch.co.kr/@lsme007/2


매거진의 이전글 6_카트만두의 아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