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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엘 Feb 11. 2016

13_안나푸르나에서의 첫 1박, 어둠 속의 그 롯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래킹 2일 차

눈을 떴다.  어제 하루 종일 버스를 타서 그런지 밤새 뒤척임 한 번 없이 푹 잔 기분이다. 테라스로 나가니 안나푸르나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호텔 테라스에서 훤히 보이는 안나푸르나 산군

식당으로 내려가 호텔 조식을 먹는다. 호텔 조식이라고 해봐야 토스트와 달걀 프라이, 주스가 다 지만 설산으로 걸어 들어갈  첫날이라 기분 좋게 두 접시를 해치운다. 밥을 먹고 방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물품을 정리하고는 배낭을 단단히 싼다.


떠나는 우리에게  주인아주머니는 행운을 빌어준다. 골목으로 나와 가까운 슈퍼에서 초코바, 건포도, 아몬드 등 비상식 겸 행동식을 구입한다. 카트만두보다는 조금 비싼 것 같지만 큰 차이는 없다. 이제 TANN 사무실로 가서 트래킹 허가와 TIMS 카드를 발급받아야 한다. 이게 없으면 공식적으로 트래킹은 불가능하다(네팔 정부에서는 해발 6000미터까지는 트래킹, 그 이상의 높이에 대해서는 등산으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고산 등반의 경우 비용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 이상 드는 아주 비싼(?) 일이다). 허가와 카드는 비용만 지불하면 큰 어려움 없이 받을 수 있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오피스가 있어서  걸어간다.


포카라의 페와 호수 근처에 사무실이 있다(포카라는 포커리 =  호수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포카리 스웨트도 이 포카라에서 따왔다는 말이 있다. 안나푸르나 빙하가  녹아내린 물이 모여 만들어진 푸른 호수. 포카리 스웨트와 딱이다). 오피스 문 여는 시간에 맞춰 갔지만 이미 많은 트래커들이 줄을 서 있다. 트래킹 하기에 더 없이 좋은 날씨라 그런지 다들 표정이 밝다. 1시간 정도 대기 끝에 우리도 허가와 TIMS 카드를  발급받았다. 네팔 여행을 할 때는 증명사진을 10장 이상 준비하면 좋다.  여기저기 붙이라고 하는 곳이 아주 많아서다. 계획보다는 시간이 늦어졌다. 서둘러야 한다.


TANN 오피스 앞에 나오니 택시들이 줄을 서 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래킹과 푼힐 트래킹은 너야뿔이라는 곳에서 시작된다. 너야뿔은  우리말로 너야(새 New) + 뿔(다리 Bridge)이란 뜻인데, 포카라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다. 로컬 버스를 이용해서 갈 수도 있지만 사람이 2인 이상이고 짐이 있다면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더 편하고 빠르게 갈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택시는 흥정을 해야 한다. 트래킹 성수기가 시작되었기에 기사들은 가격을 높이 부른다. 흥정 문화에 익숙지 않은 외국 트래커들은 택시 기사들이 부르는 가격에 그냥 OK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도 사실 이번이 첫 트래킹이기에 너야뿔까지의 적정 가격을 모른다. 이럴 땐 눈치를 잘 살펴야 한다. 우선 택시 라인 근처에 서서 다른 트래커들이 얼마 정도에 가는지 정보를 입수한다. 1시간 정도의 거리이니 미터로 가도 최소 800~1000 루피는 나올 것 같다. 가만히 지켜보니 기사마다 천차만별이다. 누구는 2000루피부터 부르고 누구는 1700, 1600을 부른다. 이 정도면 처음 부르는 가격에서 두 번 정도는 흥정이 가능할 것 같다. 목표를 1200 정도로 잡고 흥정을 시작한다.


"1200에 가시죠?"

운을 띄운다.

"에이, 안 돼요. 안 돼. 1500 이상은 줘야 해"

예상대로다.


성수기라 손님이 많아서 그런지 택시기사들의 표정에 아쉬움이 없다. 세상 그 어디를 가도 적정시세라는 것이 있다. 결과적으로 같은 액수의 돈을 주더라도 좋은 서비스를 받아 팁을 후하게 주는 것과 바가지를 쓰는 것은 다르다 생각한다. 누구도 바가지 쓰는 것을 좋아하진 않을 테다. 나 또한 유난히 그렇다. 그럼 장기전이다. 아침부터 많은 트래커들이 TANN 오피스를 들렀지만  일정 때문에 다들 일찍이 온 것일 뿐 하루 종일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건 아닐 테다. 역시나 시간이 좀 지나자 많은 트래커들이 떠났고, 이제 주변엔  우리뿐이다. 이제 관심을 좀 보이겠지.


"1200에 가실 분?"

모여 있는 택시 기사들 사이로 나지막이 외쳐본다.

"1200은 안되는데.. 1400"

아까와는 반응이 좀 다르다. 이제는 우리가 강하게 나간다.


"1200 이상은 안돼요. 1200에 갈 분?"


손님보다 택시들이 더 많은 상황이라 택시기사들만의 공고했던 연대는 금이 가고 있다. 서로 눈치를 보다가  여기저기서 자기랑 가자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다. 1200이라고 불러도 꼭 1200만 주는 건 아니다. 거리와 시간, 서비스 등을 고려해 늘 100~200 루피의 팁은 더 얹어주는 편이다.


어쨌든 한 택시에 타게 됐다. 아주 작은 마루티 택시. 지붕에 큼지막한 배낭을 올리고 단단히 묶었다. 길이 험해 가다가 떨어질 수도 있단다. 택시 뒷좌석에 오르자 출발한다. 차는 포카라 북쪽으로 향한다. 시내를 벗어나자 길 옆으로 큰 협곡이 보인다. 우리 택시 기사 아저씨 말로는 댐이 있고 수력발전소가 있단다. 그렇다. 네팔은 수자원이 아주 풍부하다. 히말라야 산맥의 만년설과 우기에 내린 엄청난 양의 비를 깊은 계곡들이 오래도록 품는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물이 많기로  손꼽히는  나라이기도하다. 그런데 왜 건기가 되면 하루 20시간이 넘는 정전을 견뎌야 하는가? 그 답을 택시에서 얻었다. 전기를 인도에 수출한단다. 댐을 지으려면 엄청난 자본이 필요하다. 가난한 나라 네팔은 그런 자본이 없으니 주로 외국의 원조나 투자를 받는데 이 댐은 인도의 자본을 받은 것이다. 투자를 받는 조건으로  몇십 년 동안은 인도에 전기를 우선적으로 그것도 아주 헐값에 공급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러니다. 세계에서 가장 물 많은 나라.  그곳에서 나는 전기. 자국민은 정전. 옆 나라에 전기 수출. 갑갑한 이 나라의 현실이 잠시 나를 괴롭힌다. 그래도 룸미러로 보이는 우리 기사 아저씨 얼굴은 연신 상글벙글한다.


넓은 들, 조그만 마을, 산 옆을  끼고도는 꼬불꼬불 도로를 차례로 지나 한 시간 넘게 달렸다. 저기 앞에 노점상과 구멍가게가 몇 개 보인다. 도착했단다.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 아무것도 없는 동네처럼 보여 조금은  당황스럽다.

너야뿔 초입 / 출처:farm4.staticflickr.com/3627/5744709127_7ab1d2fb3a.jpg

싱글벙글 기사 아저씨와 작별을 하고 우리는 배낭을 짊어진다. 등으로 전해지는 묵직한 무게감이 앞으로 우리의 여정을 예고하는 듯한 기분이다. 산 쪽으로 걸어 들어가자 첫 TANN 포스트가 있다. 이 곳에서 트래킹 허가증을 검사하고 여정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너야뿔 마을의 주로를 걸어 비레단티란 동네 쪽으로 간다. 30분쯤 걸으면 철골로 만든 큰 다리가 나오는데 이 녀석 때문에 이 동네 이름이 너야뿔(새다리 New Bridge)이 되었나 보다. 이 다리를 건너기 전에  또다시 TANN 포스트가 있다. 다리를 건너니 양갈래 길이 나오는데 우리는 왼쪽 길로 들어선다. 오른쪽 길은 란드룩 마을 쪽으로 가는 길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바로 직행하는 길이다. 우리는 푼힐을 먼저 들릴 예정이라 왼쪽으로 간다.

비레단티 다리 / 출처:http://sonamadventures.com

오전에 트래킹 허가와 택시 흥정 등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예상보다 진도가 늦다. 이미  점심때가 지났기에 다리를 건너자마자 롯지 한 곳에 들어가 식사를 주문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땀이 줄줄이다. TV에선 히말라야 하면 설산만 보다 보니 히말라야는 마구 추울 것 같다. 반만 맞는 이야기다. ABC 기준으로 얘기하자면 출발은 해발 800미터 도착이 해발 4300미터이다. 해발이  높아질수록 기온은 떨어진다. 그리고 일교차가 아주 심하다.  트래킹 하는 시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낮에 햇살이 내려쬘 때는 25도 이상의 기온이고 새벽에는 영하로 내려갈 수 있다. 그렇기에 낮엔 반팔 반바지로 걷다가 저녁이 되면 우모복을 껴입고 뜨거운 차를 마시게 된다. 지금은 점심시간이고 저 높이 뜬 태양부터 달려오는 햇살은 어디 한번 붙어보자란 느낌으로 뜨겁고 내 등엔 15Kg 이상의 배낭을 짊어졌다. 그리고 난 원래 땀이 많다.


땀 흘린 뒤에 먹는 밥은 한국이나 네팔이나 맛이 없다. 사이다가 제일 맛나다. 사이다, 이 곳에서는 스프라이트다. 재미있는 것은 네팔이나 인도 사람들은 영어 발음 중에 'S'가 붙으면 항상 앞에 '이'라는 발음을 붙인다. 그래서 스프라이트는 '이스프라이트', 스쿨은 '이스쿨' 이런 식으로 발음한다. 이유? 모르겠다. 그들도 모른다.


밥도 먹었으니 이제 제대로 걸어보자. 마을도 멀어지고 산길보다는 임도에 가까운 길이 나온다. 그마저도 지난 우기에 산사태가 나서 무너졌다. '어떻게 저길 건너가나' 고민하고 있는데 무너진 흙무더기 중간으로 산토끼나 다닐 것 같은 작은 길 하나가 나 있다. 조금이라도 발을 잘 못 디디면 저 아래 낭떠러지다. 아주 위험한데도 사람들이 다닌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저 위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 길이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다. 복구를 기다릴 틈이 없는 것이다. 그건 우리 트래커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길이 아니면 저 산을 오를 길이 없다.


'트래킹 허가비는 꼬박꼬박 잘도 받더니 뭐하나? 여기를 가라는 건가?'  트래킹 허가비로 낸 루피를 침을 묻혀가며 세던 TANN 직원의 얼굴이 떠오르고 속에서 욕 한 바가지를 퍼붇지만 무슨 소용인가? 오르거나 안 오르거나 지금은 그 선택지 밖에 없다.

급한 마음에 당시에는 사진도 못 남겼다. 위 사진은 다른 곳의 산사태 사진인데 아주 비슷한 느낌이다 / 출처: https://thorungla.files.wordpress.com/

등산 스틱을 단단히 움켜쥐고 발걸음을 떼어본다. 내가 겁먹으면 아내가 더 불안할 것이다. 겁이 나도 웃어야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싱글벙글 택시 기사 아저씨에게 비결을 물어봤어야 했는데... 호기롭게 왔지만 사실 난 고소공포증도 있다. 다리가 후들거리려고 한다. 산사태가 난 곳은 아직 흙이 물러서 언제 다시 흘러내려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용기를 내고 전진. 아내에게는 뒤에서 조심히  따라오라고 한다. 3보 전진 후 뒤를 돌아 아내를 붙잡아 주는 식으로 조금씩 나아간다. 한참 만에야 탈출 성공. 50미터 정도 되는 그 구간을 빠져나오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산사태 이후로 열심히 걸어왔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속도가 느리다. 둘 다 체력이  저질인 데다가 배낭 무게도 줄인다고 줄였지만 여전히 무겁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를 넘기고 있다. 하늘에서 부서지는 햇빛의 색상이 슬슬 오렌지 빛을 띠는 것을 보며 곧 해가 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 산 속이라 해도 빨리 진다. 애당초 목표했던 마을까지는 못 가지 싶다. 플랜 B를 생각했어야 했는데 어느 마을에서 머물러야 하나 걱정이 된다. 문제는 정보가 없다. 우선 열심히 걸어가자. 걷다가 해가 지기 전에 마을이 나오면 무조건  그곳에서 1박을 하자. 마음이 초조해진다.


1시간가량 열심히 걸었다. 산 마루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푸스름한 얼굴을 한 어둠이란 녀석은 걸음이 우리보다 빠르다. 어느새 뒤 쫓아와서는 우리를 추월해 가버린다.  첫날부터 낭패다. 어서 마을이 나타나야 할 텐데. 헤드랜턴을 꺼내 길을 밝힌다. 마음은 급한데 발걸음은 무겁다.


'아, 히말라야 조난 기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인가?'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머리 속에 맴돌 때쯤 우리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발걸음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서는 어느 새 우리 옆에 와 섰다. 깜짝 놀랐다. 어둠 속에 불도 밝히지 않고 도인 같은 모습을 한 노인 한분이 홀연히 나타난 것 아닌가?


"나마스떼. 에, 다이. 가웅 너직꺼이 처?"(안녕하세요? 마을이 가까이 있나요?)

"처. 처"(있어요. 있어)

"롯지 뻐니 처?"(롯지-숙소 도 있나요?)

"처. 처. 아우누스"(아, 있어요. 따라오세요)


노인은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고는 앞장선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코 앞에 마을이 나타난다. 전기 사정이 안 좋아 양초를 주조명으로 많이 사용하다 보니 멀리 서는 마을의 불빛이 잘 안보였나 보다. 안도감이 든다. 다행이다. 노인은 마을 어귀에 한 롯지로 우리를 안내한다. 고맙다. 덕분에 살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노인이 롯지의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한 뒤 모자와 외투를 벗고 방으로 들어간다. 알고 보니 이 숙소 사장님이다.


안내해준 방으로 가 짐을 푼다. 다른 손님들은 없다. 방은 헛간을 개조한 듯 정말 낡고 지저분하다. 네팔 생활 반년차에 접어든 우리도 적응이 쉽지 않을 만큼 심하다. 그래도 살아난 것에 감사하며 밖으로 나와 식사를 주문했다. 밥이 되는 동안 씻어야지. 따뜻한 물이 나오냐고 물었다. 아주 자신 있게 'Hot Shower'가 가능하단다.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린단다. 10분 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물 한 바가지를 퍼온다. 이 물 한 바가지를 수돗가에 있는 찬물과 잘 섞어 샤워를 하라는 친절한(?) 안내를 해준다. 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이 것이 바로 핫 샤워다.


대충 씻고 식탁에 앉아 있으니 밥이 나온다. 그래도 '밥은  맛있겠지'라는 기대감으로 한 술 떠 입으로 넣는데 허기가 잔뜩 져 있음에도 정말 맛이 없다. 내일을 위해 억지로 반쯤 밀어 넣고 얼른 방으로 돌아왔다. 밀려오는 피곤에 아내와 나는 각자 침대에 몸을 뉘었다. 방을 밝히던 작은 촛불을 '후~' 불어 끄고는 눈을 감으니 저 아래에서부터 잠이란 녀석이 내 몸을 있는 힘껏 잡아 끈다.


아내가 한 마디 남긴다.

"이게 트래킹인가 봐"


그 말이 꿈결처럼 들리고는 우리는 기절하듯 잠 들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래킹 처음부터 읽기

https://brunch.co.kr/@lsme007/12


*네팔이야기 처음부터 읽기

https://brunch.co.kr/@lsme0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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