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ade in Nepal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삶엘 Jan 27. 2016

12_포카라행 그린라인 버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래킹 1일 차

포카라행 그린라인 버스 출발이 아침 7시  30분이다. 새벽부터 서두른다. 배낭은 어제 모두 팩킹해 뒀다. 대충 아침을 먹고 단단히 문단속을 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또 다시 미지의 여행지로 떠난다 싶으니 한국을 떠나 네팔로 오던 그 날의 감정이 저 아래 가라앉아 있다가 다시 일어난다. 택시를 잡아 타고 타멜로 간다.  작디작아  애처롭기까지 한 마루티 택시, 그 지붕에 얹은 우리의 커다란 배낭 두개가 유독 튄다.


이른 아침이라 교통체증 없이 빠르게 왔다. 그린라인 영업소에 도착하자 티켓을 검사한다. 항공기 수화물을 보내듯 일련번호가 적힌 택을 가방에 하나 달아주고 같은 번호가 적힌 다른 택 하나는 내게 준다. 분실 방지 목적이겠지. 우리의 배낭은 가차 없이 버스 트렁크로 던져지고 다른 짐들 사이에 끼워지고 눌려진다. '아이고'가 나오는 상황이지만 네팔에서 이런 걸로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된다. 그렇지 이 곳은 평정심.


버스엔 서양 여행객들이 대부분이다. 홀로 여행 온 사람들도 있지만 가족 단위도 많다.  갓난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부들도 있다. 부러운 광경이다. 쉽지 않지만 멋진 경험과 추억을 기꺼이 선택하는 사람들. 우리도  이 다음에 자녀가 생기면 다 같이 다시 오자고  다짐했다.

카트만두 외곽으로 빠져 나가는 길

버스의 시동이 걸리고 힘차게 출발한다. 카트만두 시의 서쪽을 향해 나아간다. 카트만두는 분지라 시의 경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개를 넘어야 한다. 13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 있는 분지이다 보니 고개 정상을  넘자마자 꼬불꼬불 내리막길이 한 동안 이어진다. 계속되는 곡예 운전에 멀미가 날 것 같다.

포커라로 가는 트리슐리 하이웨이

출발한지 한  시간쯤 지나자 길이 조금 나긋해진다. 이제야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포카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는 트리슐리 강 옆으로 쭈욱 이어진다(고속도로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지방도보다 못한 길이다). 강과 마을, 산까지... 창문 뒤로 스쳐가는 풍경들을 보고 있자니 생각이 많아진다.

트리슐리 강 주변 풍경

아내와 창 밖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한다. 네팔에 온 후로 거의 하루 종일 함께 있기에 이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겄만 여행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이야기로 가는 문을 열어 준다. 아내는 내게 어렸을 적 할아버지 손을 잡고 서울대공원 갔던 이야기부터 여고 시절 친구들과 있었던 재미있는 사연까지 신이 나서 풀어 펼쳐 놓는다. 버스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은 따스하고 나눠 낀 이어폰에서는 Antonio Carlos Jobim의 음악이 흐른다.


여행은 즐겁다. 더욱이 사랑하는 이와 이국을 여행하는 것은 더 즐겁고 특별하다.


휴식 1번, 식사 1번, 그리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동안 길이 막히기까지 해서 포카라까지  8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새로운 풍경과 즐거운 대화로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사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진 200여 Km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지만 도로 사정이 워낙 좋지 않다 보니 꼬박 하루가 걸린다.


포카라 어느 동네 공터에 버스가 정차한다. 시외버스 터미널인 것 같다. 공터에는 이미 몇 대의 로컬 버스가 먼저 도착해 있다. 버스 트렁크에서 잔뜩 짓이겨진 배낭을 찾아 메고는 숙소를 알아본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래킹의 시작이다. 하루 종일 버스도 탔으니 오늘은 저렴한 숙소에서 저녁을 일찍 먹고 쉬자.


터미널에서 멀리 가지 않았다. 50여 미터쯤 가자 무슨 호텔이 보이길래 얼른 들어간다(여긴 게스트 하우스도 그냥 무슨무슨 호텔이다. 멍멍이나 음매나 다 슈퍼 럭셔리 디럭스 호텔이라고 써놓으니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주인아줌마에게 하룻밤에 얼마냐고 물으니 300루피란다. 4500원. 싸다. 홀린 듯 안으로 들어간다. 물만 잘 나오고  잘 내려가면 되지. 방으로 가 짐을 푼다. 잘 도착했다는 안도감에서 일까 졸음이 몰려온다. 밥은 먹어야 하는데...


잠깐 눈 붙였다가 일어날까? 어쩔까? 이런 생각을 하며 침대에 잠시 몸을 던진다. 천장엔 팬 하나가 세상에서 가장 나른한 속도로 빙글 빙글 홀로 돌고 있다. 보고 있자니 최면에 걸리듯 정신이 혼미 해진다. 아~ 졸리다. 내일을 위해 레드 썬~


내일 보자.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래킹 처음부터 읽기

https://brunch.co.kr/@lsme007/12

*네팔이야기 처음부터 읽기

https://brunch.co.kr/@lsme007/2

매거진의 이전글 11_어디 히말라야 가시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