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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엘 Sep 23. 2015

3_Nepal Royal Airline 1

세상에 단 2대

오후 5시 30분


인천공항 한식당에서 앞으로 2년 동안 구경조차 못할지 모르는 육개장을 마지막 식사로 하고 있었다. 맛있게 먹고 싶었지만 배웅 나오신 장인, 장모님, 할머님의 눈가에 눈물이 비쳐 그럴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외동딸 시집 보냈더니  결혼하자마자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를 네팔이란 곳으로 사위 놈이 데려 간단다. 모르긴 해도 주변에 물어 보셨을 테다.


"네팔이 어디 붙은 나라인지 아십니까?"


십중팔구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 산 밖에 없는 나라, 오지 중에 오지란 답을 듣지 않으셨을까? 좀 더 유식하고 있어 보이는 답을 들으셨다면 세계의 지붕 내진 히말라야 지진대의 한 가운데  정도였을 테다.


'그런 곳에 내 하나 밖에 없는 딸을 데려가?'


내가 친정 아버지였다면 아마 사위 멱살을 잡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내 장인 장모님은 정말 인격이 훌륭하신 분들이다.


떠나기도 전에 이미 깊어져 버린 그리움과 진한 아쉬움에 몇 번을 다시 포옹하고 손을 맞잡은 뒤에야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출국장으로 들어 섰다. 8시 10분 비행기라 그리 여유가 없었다.


네팔로 가기 위해 항공편을 알아보았는데 직항은 대한항공, 외국 항공사는 대개 1번 경유 하나 주로 야간에 도착했다. 두 경우 다 가격도 만만치 않았지만, Open  Ticket으로 유효기간을 길게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물론 편도로 가도 되지만 왕복 가격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알아 보다가 Nepal Airline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가격을 보이 1년 오픈, 1인 왕복이 100만 원 수준이었다. 방콕으로 한번  경유하는데 방콕까진 아시아나로 간다고 하니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방콕에서 카트만두까지 3시간 정도만 네팔 국적기를 타는 것이니 뭐 그 정도는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큼 예약을 했고 e-mail을 확인하며 e-ticket이 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감감무소식 아닌가. 설마 나  사기당한 건가? 어디 듣도 보도 못한 항공사 더니... 불편한 마음으로 예약을 한 여행사에 전화를 했더니 우편으로 보냈단다.


'우편? e-ticket을 왜 우편으로 보내지? 출력해서 보내주는 건가? 친절하다고 해야 할지...'


말 대로 얼마 뒤 우편이 도착했고, 내 손에는 이미 문화재가 되어 있을 법한 종이 항공권 뭉치가 들려 있었다. 참 오랜만에 보는 물건이었다. 과연 이걸로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 까 수속대에서 체크인을 할 때 항공사 직원들도 처음엔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였다. 어찌됐건 우리는 출국장에 들어섰고 모험은 이제 시작이었다


Nepal Airline 티켓


방콕까진 여유롭게 날아갔다. 사실 태국도 가본 적이 없었기에 방콕 수완나폼 공항에서의 환승이 기대되기도 했다. 기내에서 다시 저녁을 먹었다. 돈 내고 극장에서 보기엔 살짝 머뭇거려지던 영화 한 편과 예능 한편을 보고 기지개를 펴니 방콕에 다다른다.


출입구를 나오자마자 온 몸을 휘감는 동남의 특유의 후덥지근한 공기.

'이야... 정말 어디론가 가고  있구나'라는 실감이 들기 시작한다. 수화물은 자동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짐을 찾아들고 이민이라도 가는 모양새로 대기실 구석 그나마 누울 곳을 찾아 들었다. 다행히도 등받이가 우등버스마냥 쭈욱 펼쳐지는 의자다. 아내를 쉬게 하고 혹시나 모를 도난(?)을 대비해 짐 가방들을 한 곳으로 단단히 모아 두고 앉았다. 두런두런 얘기를 하다 보니 아내는 다사다난했던 오늘 하루가 피곤했는지 잠이 들었다. 나는 피곤했지만 잠 든 아내와 우리의 전 재산이 낯선 나라의 어느 밤에 있다는 그 사실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서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뜬 눈으로 꼬박 밤을 새우며 가져간 책 한 권을 다 읽고야 말았다.


아침이 밝았다. 오후 2시가 예정된 환승시각이기에 여유가 많았다. 세수도 못 한 체 구내 식당을 찾았고, 그 유명한 똠얌꿍과 팟타이를 주문했다. 어쨌거나 태국에서 먹은 거니... 원조(?)의 맛에 가깝겠지. 오전엔 뭘 했는지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 하다. 아마도 공항 구경을 좀 했던 것 같고, 그러다 쉬이 피곤해져서는 대기실에서 멍하니 천정과 비행 스케줄이 뜬 전광판만 번갈아 보았던 것 같다.


오후 2시가 지나가도 아무도 우릴 찾지 않는다. 지정된 게이트에 가보아도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 사기를 당한 걸까? 아, 아닐 텐데. 저기 전광판에는 Nepal Royal Airline 이 적혀있다. 적어도 사기는 아니다. 그런데 뭘까? 비행기도 항공사 직원도, 탑승객도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초조해서 안절부절 못 하고 이리저리 두리번 되고 있는데, 어디선가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억양의 영어로 안내방송이 나온다.

"뭐블다브라 블라 블라브라 뭐뭐블 네팔 로얄 에어라인 뭐 발라블라 딜레이 브라발라..."

"응?"

온몸에 귀가 달린 듯 쫑긋한 자세로 다시 들어본다.

"네팔 로얄 에어라인 이즈 고잉 투 비 딜레이드 포 투 아워즈 위아 베리 쏘리 포..."

'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했다. 적어도 우릴 버리고 가진 않았구나. 뭐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두 시간 더 못 기다리리... 시간이 흘렀고, 어디선가 네팔 사람들로 보이는(사실  그때 당시는 인도 사람들 같았다) 사람들이 마치 시골 버스 터미널에 버스를 타러 온 듯 느릿느릿 한 명씩 나타났다.


이제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너무나 신기했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안내방송이 나오기도 전에 연착이 될 줄 알고 저토록 여유로웠을까? 이유는 살다 보니 알게 됐다. 원래 네팔엔 제 때 되지 않는 것이 제 때임을...




네팔 이야기 처음부터 보기

https://brunch.co.kr/@lsme0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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