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학을 배울 때 첫 시간에 소아과 교수님께서 꼭 하시는 말씀이 있다. "아이들은 단지 작은 어른이 아니다"라는 말인데, 키와 체중이 작은 어른의 축소형으로 이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병태생리, 약리 기전이 어른과는 다를 수 있으니 아이들에 특이적이고 적합한 의학적 접근을 해야지, 어른의 관점에서 환아를 이해하려 들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늦가을 하루, 지인들과 토요일 두물머리에서 남한강 쪽으로 산책을 갔다.이른 아침 쌀쌀한 날씨에 물가에 대포같이 큼지막한 망원렌즈와 삼각대로 중무장한 사람들이 추운 날씨에도 서성이고 있었다.강변에서 백로가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을 보고 일행 중 한 분이 "저 백로가 물고기를 먹고 있네"라고 하였더니 함께한 다섯 살 난 채안이가 "난 오늘 아침 멸치 먹었는데"라고 하자, 백로가 물고기를 잡아먹는 장면에 자신이 멸치를 먹은 것을 연결한 아이의 발상에 모두들 박장대소하며 자지러지었다.
어느 더운 여름날 야외에서 산책 중 채안이가 할머니한테 "더워요 에어컨 틀어주세요"라고 하였다고 해서 우리 모두는 또 한 차례 큰 웃음을 터뜨렸는데, 칠월 한 여름에 한국이 한참 무더위와 높은 습도로 불쾌하였을 때, 호주 브리즈번을 방문한적이 있었는데 공항을 빠져나오자 온 도시에 에어컨을 틀어 놓은 것 같은, 채안이가 해달라고 한 딱 그느낌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며칠 전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여 걷기에 최적인 날씨라 다른 두 부부와 우리 부부는 뒤영벌의 배경이 된 길을 걷기로 하였다.이들에게 우리가 좋아하는 걷기에 좋은 길을 소개도 하고 뒤영벌 책의 배경이 되었던 사연도 실재 장소를 보여주며 설명해줄 겸 해서 찾았는데 반환점인 장칼국수집에서 아침 겸점심식사를 할 때 한 지인이 짓궂게 말하였다. 책 제목이 '뒤영벌'이 무슨 뜻인지 어려웠다며 "책이 잘 팔리게 하려고 일부러 어려운 단어를 쓴 것이냐?"라고 말하여, 나는 "그리 말하시니 노인의 마음이라"라고 응수하였다.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을 말하니 그것도 상업적인 관념을 대입해서 말이다. 낯선 책 제목을 사용한 내게 대한 농담 반 푸념반의 말인지라 웃고 넘어갔지만 우린 어른들이었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8:3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이들과 같지 않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 마음이 신문지 같이 빽빽하게 이미다 쓰였고 거기에 또 이것저것으로 낙서된 것과 같은 마음판을 가진 사람들이 어른들 아닐까?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여백이 많아 그 마음 판에 하나님께서 마음껏 쓰실 수 있는 그런 아이들로 남아 있고 싶다. 세월이 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