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무 Jul 05. 2022

 三顚四起(삼전사기) 캐나다 여행 -I

원하면 길이 열린다.

 이 이야기는 COVID-19 팬데믹 이전의 일이었다. 큰누님께서 캐나다에 이민 가신 지 이십여 년이 다 되어갔지만 한 번도   적이 없었던지라 누님 댁도 방문할 겸, 그 자연의 광대함과 아름다움을 인하여 다녀온 사람들의 감탄이 자자한  캐나디안 로키도 방문해 볼 겸, 캐나다 여행 계획을 세워 출도착 날자, 항공편을 정하고 머물 숙소까지 다 예약을 해놓고도 가정 사정으로 두세 번을 엎어야만 했었다. 당시 둘 다 직장을 다니던 우리 부부에게 십여 일간의 휴가를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상세 계획까지 세우고 엎어버리길 이삼 년간 하다 보니 캐나다 여행은 우리에겐 인연이 없나 보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지막으로 계획을 엎었던 때로 일 년이 다돼갈 때 우연히 마일리지를 적립해두고 있던 항공사의 사이트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했는데 캐나다 밴쿠버행 비행기의 비즈니스석 비용이 평소의 반값으로 나온 것이었다. 해외 학술대회 참석으로 비교적 해외여행이 잦은 탓에 항상 마일리지가 어느 정도 적립이 된 편이라 오버부킹이 될 경우 항공사에서 드물게 비즈니스석으로 무료 업그레이드해주어 타본 적은 있지만, 내가 직접 비용을 지불하여 비즈니스석을 살 엄두를 감히 낸 적은 없었다.


 한 번은 아내와 함께 워싱턴 DC에서 귀국할 때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코노미석을 예약한지라 공항에서 출국 절차를 밟느라 긴 줄에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비즈니스 클래스 줄에 한 모녀가 서서 기다리지도 않고 티켓팅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부러워 아내에게 '저분들은 집안이 얼마나 부자길래 비즈니스석으로 여행을 할까?'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난 후 생각해 보니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가? 나는 우주 가운데 가장 부요하신 분의 자녀가 아닌가? 내가 이렇게 부러워하는 마음으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란 느낌이 들어 정색을 하고 아내에게 내가 한 말을 주어 담으며, 참된 마음으로 '우리 아버진 더 부자야'하며 서로 웃고 잊어버렸다.


 드디어 우리도 발권을 하고 아내와 함께 출국 수속을 마치고 귀국 생각에 마음이 다소 들떠 우리가 탈 비행편의 게이트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공항 내 방송에서 영어로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자세히 들어보니 내 이름이 맞았고 우리가 발권한  항공사의 가까운 공항 내 데스크로 오라는 것이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나 하고 찾아가 보았더니 그날 오버부킹이 되어 내 좌석을 비즈니스석으로 바꾸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항공사 직원에게 어떻게 나만 비즈니스석으로 가냐고 하며 아내의 좌석도 문의하다 보니 가족 마일리지를 합산하여 아내도 승급이 가능하였다. 두 사람 모두 비즈니스석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그때 항공사 직원은 우리에게 편의상 좌석만 비즈니스석의 승급이지 나머지 서비스는 이코니 미석에 준하는 식음료 서비스가 제공된다고 하며 양해를 구하였다. 속으로 웃으며 나는 '우린 모두 비즈니스 서비스 전체를 받으며 갈 겁니다'하였는데 실재 모든 서비스가 비즈니스에 준하여 제공되었다.


 그러나 그분을 받아들인 사람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위를 주셨다. 요한복음 1:12


 평소의 반값에 해당되는 가격으로 비즈니스석을 제공하는 것을 안 마당에 이번에는 꼭 캐나다를 가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실제 이 여행 이후로 여러 차례 해당 항공사에 확인을 해보았지만 다시는 그런 가격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이 선택은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고 큰 부담을 주지 않고 돌아올 수 있게 하여 귀국할 때 가장 빛을 발하였다.


 아내를 설득하고 동행할 지인들을 찾아보았는데 마침 막 평생 교육계에서 묵묵히 일을 해오시다가, J고등학교를 정년이 지나 퇴임하신 같이 교회생활을 하고 계셨던 교장선생님과 사모님 내외께서 흔쾌히 같이 하여 주시기로 하였다.  평소 부부가 여행을 별로 다니지 않으시던 분이고 제자들 양성에 평생을 헌신한 분이셨는데, 교장으로 재직 중에 유수 대학 진학률이 현저히 높아져 이사장께서 정년을 넘기고도 몇 년을 더 계속 일을 맡기려 강권하셨으나 겨우겨우 사양하시고 퇴임하신 직후였다.  같은 직장 동료 S위원의 부부도 같이 가기로 이야기가 되었다가 중간에 사정이 여의치 않아 두 부부만 가게 되었다. 누님께도 방문 일정을 알려드리고 재스퍼를 거쳐 밴프까지 다녀오는 캐나다 로키 방문을 같이 가실 것인지 여쭈어 보았지만 최근 다녀오신 적이 있었고 다른 여건상 여의치 않아 밴쿠버에 머물 때 누님 댁을 방문하는 것으로 만족하여야 했다.


 밴쿠버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 캠룹스> 재스퍼> 레이크 루이스> 밴프> 밴쿠버로 돌아오는 것으로 일정을 짜고 머물 곳 인근 숙소는 인터넷 숙박 포털 사이트를 통하여 예약하였다. 밴쿠버로 돌아오는 날 밴프에서 곧장 하루 만에 오는 일정이라 무리가 될 것 같아 보였지만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운전하니 가능하리라 생각하여 다소 무리하게 계획을 세웠다. 한 사람이 운전하는 것이라면 너무 무리한 일정이었다.


 드디어 장시간을 거친 비행 끝에 우리 항공기는 정오 무렵 밴쿠버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누님과 매형께서 반갑게 맞이 해주시고, 아이스박스, 김치와 간식거리,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그릇 등을  한가득 준비해 오셨다. 누님 내외의 사랑과 자상함에 취할 겨를도 없이 우린 렌터카 사무소로 달음질하듯 서둘러 갔는데 당일 차로 네 시간 정도 걸리는 캠룹스까지는 가야 하였기 때문이었다.


 차량은 원래 세부부 6명이 여행할 것을 고려해 GMC에서 나오는 대형 SUV인 Yukon XL을 예약했었는데, 한 부부가 동행하지 못하여 더 작은 차량으로 바꾸려 했다가 그대로 진행하였다. 해당 렌터카 사무소에서 차량 인도를 받으러 갔더니 큰 차를 빌렸다고 놀라워해서 순간 잘못 선택하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열쇠를 받고 대기 중인 차량으로 갔을 때 우려가 실로 드러나는 듯했다. SUV가 아니라 탱크 같은 느낌을 주는 막강한 차량이었다. 차량 선택을 잘못한 것만 같아 내색은 못하겠고 속으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낭패란 생각이 드는데, 이 차를 어떻게 운전하고 다닐까 걱정이 몰려왔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차량과 여러 가지로 부속장치들도 사용 패턴이 달라 패닉의 찰나를 경험하던 중 연료탱크 여닫이 버튼을 아무리 찾아도 차 안에 보이지 않았다. 연료가 다 떨어져 갈 때 당황하지 않으려면 미리 알아 두어야 하는데 렌터카 직원이 지나가는 것이 보여 머리가 새하얘진 채 물어보니, 별것을 다 묻는다는 표정으로 연료 주입 탱크를 손으로 한번 눌러주자 싱겁게 주입부 커버가 개방되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역시 선진국답게 차량연료 절도 가능성조차 고려하지 않는 사회인가 하며, 이 탱크 같은 차량을 드디어 움직여 보았다. 누님 내외께 돌아와 뵙겠다고 인사드리고 흥분되는 여정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차량을 운전해 보니 점차 익숙해져 가고 탑승하신 분들도 차량이 커서 여행 내내 편안하였다고 두고두고 좋아하셨다.

캐나다 도착 첫날 밴쿠버에서 캠룹스까지 4시간 정도 차량으로 이동하였다(출처:구글맵)

 밴쿠버시 주변을 빠져나가는데 곳곳에 정체구간이 있어 다소 마음이 급해지긴 하였는데 외곽으로 나오니 도로는 이내 한산해지고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를 남서에서 동쪽으로 가로지르는  코키할라고속도로를 따라 호프(Hope)와  메릿(Merritt) 경유하여 목재의 도시이자 캐나다 중서부 지역 교통의 중심지인 캠룹스(kamloops)에 도착하였다. 이곳에 모텔을 잡았는데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잠시 묵는 숙소로 그야말로 잠만 자고 갈 정도의 초라한 숙소였다. 그래도 우리는 누님이 싸주신 김치와 한국에서 가져온 햇반과 김, 그리고 레토르트 육개장을 커피포트를 사용하여 덥혀서 먹었는데 여정의 피로 때문인지 이내 곯아떨어졌다.

캠룹스 가는 도중 로키산맥의 절정에 도달하지 않았는데도 곳곳에 수려한 경관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둘째 날과 셋째 날은 재스퍼 인근 힌튼(Hinton)에 숙소를 정하였다. 재스퍼는 숙소가 이미 대부분 예약되었고 예약 가능한 숙소들은 우리에게는 초고가의 숙소들인 관계로 불편하더라도 훨씬 저가인, 좀 떨어진 힌튼이라는 인근 마을에 모텔에 숙소를 예약한 것이었는데, 나중에 그곳에 머물고 느낀 것인데 이 선택은 너무나도 잘한 일이었다. 지금 다시 방문할 계획을 세우라고 해도 심지어 비용이 재스퍼 숙소가  더 저렴하더라도 힌튼에 숙소를 정하겠다. 재스퍼에서 힌튼에 오가는 길의 아름다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들의 생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