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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Jun 13. 2023

벌레르기

 우리 집 막내는 벌레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집먼지 진드기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어 알레르기 비염등으로 고생을 했으나 소아 연령층으로 보면 인구의 18% 정도가 집먼지진드기에 의한 알레르기 비염을 갖고 있다는데, 이 일로 신조어인 '벌레르기'란 말을 구태여 만들어 보려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에는 여자아이답지 않게 벌레를 보아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다소 큰 벌레도 손바닥으로 쳐서 잡던 아이가 훌쩍 커버린 지금 벌레만 보면 비명을 지르고 질겁을 하니 그것이 참으로 기이하다.


 며칠 전 생일이 되어 막내와 막내 친구와 우리 부부가 점심식사를 같이 한 후 다산 생태공원 인근 카페에 가서 커피와 다과를 하며 고상하게 말하면 담화를 즐기고 평상어로 말하면 수다를 떨다가, 창밖 멀리 강변으로 난 길이 아름다워 보여 걷자고 하였다. 막내는 카페 앞 누렇게 익은 보리밭 주위를 걷자는 줄 알고 흔쾌히 따라 나왔다가 강으로 향한 오솔길을 걸으며 벌레들의 출현 빈도가 올라가자 왜 이런 길을 가느냐, 얼마 걸리느냐, 으악, 내 옷차림을 보고 갈  길을 선택해 주어야지 않느냐 며 계속 꿍시렁대며 따라왔다.


 작은 언덕길을 두 번 올라갈 때까지 간헐적인 벌레들과의 조우와 이에 따른 아빠에 대한 비난의 총알들이 한참 쏟아질 무렵 드디어 강변에 도달했는데 막내의 목소리가 완전히 평온해지며 "어 저거 오리 아니야? 새끼인가 봐! 정말 귀엽네." 드디어 벌레르기 증상에서 벗어난 모양이다. 시간이 지난 후 슬쩍 물어보았다. 잘 왔지? 아인 "네" 하는 대답으로 아까 쏟아부었던 총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대신하였다.


 막내와  친구 그리고 아내가 논에 촘촘히 흩뿌려지듯 자란 개구리밥을 보며 "왜 개구리 밥이야?"  "개구리가 저걸 진짜 먹는 건가?" 쉼없는 대화가 오가며 이렇게 올해 초여름은 강변에서 따사로운 햇빛과 함께 오고 있었다.

강변을 향해 걸었던 길, 막내가 뒤따라오며 우리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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