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십여 년 전 갖고 놀던 인형이나 어렸을 때 노트, 심지어 다 닳아 빠진 크레파스조차 버리려면 한바탕 큰 소동을 벌여야 하고 그러고 나서도 결국 딸아이의 고집을 꺽지 못해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를 연발하곤 하였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온갖 잡동산이가 가득한 집에 사는 어떤 노 부부 이야기 같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 현실로 다가올 것 같은 위기감을 갖고 질 것이 뻔한 싸움을 또 걸어 보곤 하였다.
도대체 왜 옛것들을 버리기 그토록 힘들어하는 것일까? 수차례 거친 전투 끝에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아이가 옛 물건들로부터 과거를 회상한다는 것이었다. 옛 물건들이 아이에게 하나의 그리운 고향이었다. 고향을 빼앗긴다니 그토록 싫었던 게다.
히브리서 11:16 그러나 사실 그들은 더 좋은 곳인 하늘에 속한 고향을 그리워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부가 결혼한 후 둔촌동에서 신림동으로 다시 신내동으로 이사 갔다가 창동으로, 창동에서만 두 번을 더 이사했다가 중계동으로, 중계동에서 두 번 더 이사했다가 하남으로 거의 열 차례에 육박하는 이사 전력이 아이들의 고향을 빼앗았던 것이었다. 그걸 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사 때마다 다 이유가 있었고 삶의 처절한 분투 속에 이리 틀고 저리 틀어보고 해 왔던 터라,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그런 환경의 변화가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할 여유조차 갖지 못했다. 아이들에겐 갈 만한 고향이 없었고 자기 손자국이 남아 있는 벽들과 자기 발자국이 남겨진 길들의 아련한 추억을 가슴에 담아 두고, 때론 어려움이 닥쳤을 때 걸어 보고 마음을 다잡아볼 만한 공간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번 이사한 집에서 드디어 나의 서재를 갖는 로망이 현실화되나 했지만 그 방마저 아이에게 빼앗기고 도대체 네게 부족한 것이냐고 부르짖고 싶은 아비의 마음이지만 그래도 아이에겐 모든 것이 부족하였으리라 생각하며 나는 내방 쟁탈전은 벌이지 않고 조용히 거실에 아내와 앉아 오늘도 책을 읽는다. 아내와 함께 아이에게 그리운 고향을 실감 있게 찾아줄 계획을 해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