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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Apr 01. 2024

대한민국 의료가 아파요

의학이 살아야 의료가 산다.

 국민건강보험공단 J 이사장 시절, 그는 임기 내내 수요 조찬 특강을 통해 건강보험공단 임직원들과 보건의료 전반에 대해 각 분야 전문가들을 초청해 듣고 공부하였다. 나도 두 차례 근거기반보건의료 관련한 주제로  초빙되어 강의하고 토론할 기회를 가졌었다. 이렇게 열심히 임직원들과 함께 공부한 CEO는 흔치 않았다.


 후문에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결과 J 이사장께서는 우리나라 의료의 문제는 공공의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고 들었다. 전해 들은 것이고 본인에게 확인해 본 것은 아니니 차착이 있을 수도 있음을 미리 말해두지만 J이사장의 기고문 글에서 이런 생각이 묻어나니 크게 틀리진 않을 것이다.


 정부 부처 차관을 역임하고 우리나라 100인 중에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인재라 불렸던 어떤 분의  국장시절, 그분께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에서 구조적 모순이 많은 왜곡을 일으킨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정부와 의료인 사이는 사회주의적 계약관계와 규제관계로 형성되어 있고 의료인들은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적 구조로 살아남아야 하는 구조니 이러한 하이브리드식 구조는 왜곡된 진료의 결과를 산출한다고 말씀드렸던 것이다.


  K국장님의 반응은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 것이 희한한 일입니다. '라는 대답을 하셨다. 우리나라의 의료접근성은 타 선진국이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이어서 어느 대학 병원, 어느 교수님이든 맘대로 진료를 볼 수 있고. 예약이 수개월 밀려 있다 하지만 웬만한 대학은 당일 접수하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서 그렇지 진료 볼 수 있으며 MRI든 CT든 장시간 기다리지 않고 촬영할 수 있으며 PET검사까지 건강검진으로 하고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우리나라 말고 또 있을까?


  예약시간이 길다고 불평하는 분들이 계시고 진료 보는데 몇 시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불평하지만 외국에 사시는 재외국민이야기 들어 보시면 배부른 소리란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이민 가신 분들이 귀국하면 먼저 찾는 것이 의료기관이 니던가?


 대형 대학병원들의 시설과 수준은 어떤 나라에 내놔도 손색이 없고 외국 보건의료 관계자들이 내한했을 때 이런 병원들  견학을 해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으니 이런 의료의 구조적 모순이 있다는 것은  다 알고 있지만 의료시스템은 잘 돌아가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IMF시절 우리나라 건물들이 헐값에 외국 자본에 팔려나갔을 때 새로운 주인이 된 외국건물주는 전세금을 돌려주고 높은 월세를 요구한 적이 있다. 이때 개원한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시설 투자를 해놓은 상태에서 개설 장소를 쉽게 바꿀 수도 없고 갑자기 의료기관 운영에 경제적 부담이 증가했으나 의료보험수가는 이를 적기에 반영해주지 못하니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대학에서 내과의사로서 수련을 받고 큰 꿈을 꾸며 배운 의술을 발휘하고자 개원을 하지만 실재 개원의 현장은 고고하게 배운 학문적 진료로는 운영하기 힘들다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된다,  00 내과의원하고 개원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비만 클리닉, 영양주사, 피부미용 등의 대학에서 수련과정 중에 듣도 보도 못한 진료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현실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소아과의 현실에 대해 얼마 전 언급했듯이 소아 인구층이 감소하고 갑작스러운 코로나 19 대유행 여파로 인한 소아환자가 급감하였을 때 소아과 개원가는 경영난으로 휘청거렸으나 자본주의적 생존환경에 그대로 노출된 소아과 개원가는 불황의 늪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맞아야 했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고 건강보험수가는 역동적으로  이러한 환경을 극복하도록 변동되지 않았다.


 일전에 개원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온갖 영양주사와 미용주사에 대해 그 효과와 안전성에 대해 공동 연구자로 연구한 적이 있었다. 그때 연구 책임자에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니 이 주사요법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는 의사를 청해 강의를 듣자 하였고 해당 의사는 주저함 없이 와 주었다. 그가 하는 강의를 듣고 있다 보니 의과 대학 시절 명강의를 하셨던 생화학 교수님 뺨을 칠 정도로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강의를 하셨다. 강의가 다 끝나고 돌직구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대학에서 배운 대로 진료해도 먹고 살만 하신다 해도 이 주사요법을 지금처럼 장려하시고 본인도 처방을 하시겠습니까?"라고 말이다. 도발적인 질문이었고 '나를 모욕하는 거냐? 이렇게 좋은 것을 왜 하지 않느냐!'라고 답할 줄 알았는데 그는 1초도 기다리지 않고 단호하게 답하였다. "아니요." 그때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수많은 논리로 주류학계에서 의학적 표준으로 여겨지지 않는 이러한 약물 요법을 배우고 개발하고 해서 정형화시켜 나가는 것은 결코 적은 노력이 드는 문제가 아닌데 이러한 일들을 해온 그의 입에서 아니라는 답이 그렇게 빨리 그리고 단정적으로 나올 줄이야! 이런 것이 왜곡된 의료의 현상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건강보험 지불제도가 행위별 수가제를 장기간 운용해 오면서 진료 시 발생하는 행위만큼 비용이 지불되는 시스템이 작동하다 보니 모든 의료행위들은 마트에 진열된 상품이 팔린 만큼 수익이 되는 것처럼 되어, 병원들에서는 의사들 수입에 대한 통계로 성과급이나 해당진료과에 대한 투자를 결정하기도 한다. 또 이전 '의료란 무엇인가?'에서 언급하였던 것처럼  의료의 특성상 흔한 질환을 먼저 생각하고 잠정적 진단을 내리고 진료하면서 경과가 이에 맞지 않으면 단계적 감별진단을 통해 더 희소한 질환이 아닌지에 대한 감별진단을 수행하나 환자의 상태가 좋아지지 않아  법적 다툼이 일어나게 되었을 때 의학적 접근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법적 판결로 인해 심지어 형사적 책임까지 묻는 일이 발생하면 의사들은 방어적 차원에서 진료할 수밖에 없게 된다. 처음부터 희귀한 경우까지 두에 두고 철저히 진단해 나가면 더 좋은 것 아니냐 무엇이 문제냐고 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대다수 환자들은 필요하지 않은 검사에 노출되고 이에 따른 의료 비용의 증가와 검사의 부작용에 노출될 수도 있다. 이러한 지불제도의 구조와 사회의 의학에 대한 이해 부족은 불필요한 과다 진단이라는  다른 형태의 왜곡을 일으킨다.


 이것은 정부와 의료인사이에는 사회주의적 계약과 규제관계로 맺어 있고 의료인은 사회에서 자본주의적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구조가 가져오는 모순적 상황과 사회가 의료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한 왜곡의 사례들이다.


 이번 의정갈등이 심화되면서 이러한 구조적 모순이 가져오는 문제들이 적나라하게 표출되고 있다.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던 최고의 의료시설을 자랑하던 대형 상급종합병원들이 전공의 파업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시적으로 사회가 소아과의사가 부족하다, 소아 환자가 응급실에 갈 곳이 없다며 크게 요동치기 수십 년 전부터 우리나라 의료는 병들어 고 있었다.


 이러한 드러난 표면적인 문제가 어디서 왜 왔는지 심도 있게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는 참된 의료개혁이 없이 피상적 이해에 따른 처방은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이제 우리 모두 냉정을 되찾고 국민들, 환자들을 위한, 미래 우리 후손을 위한 지속 가능한 개선된 의료시스템을 구축할 의료개혁을 이루어야 할 때다.


 왜곡된 의료가 바로 잡히고 의료 생태계가 회복되어야 한다. 의학이 살아나야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정상화된다. 이제는 의학이 본연의 맛과 색깔을 되찾도록 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때가 된 것이다.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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