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살다 한국에 들린 교민들이 꼭 하고 가는 것이 건강검진과 그동안 밀린 치료를 받는 일이다. 해외 영주권을 받은 사람 들이 시민권을 취득할 때 가장 고려하는 항목도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포기 문제이다. 접근성으로 보면 세계 최고의 의료서비스일 것이고 과거 고가의 의료비로 치료받지 못했던 것도 무난하게 받게 되었다. 암에 걸려 무척 당황하였지만 진료받은 후 지불해야 할 의료비가 상대적으로 무척이나 낮은 것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초대형 대학병원들의 시설을 외국에서 방문 온 고위급 행정가들이나 정치인들에게 보여주며 복지부 행정가들은 어깨를 으쓱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의료가 이 정도야’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코로나 19 사태 전까지만 해도 매년 늘어가던 해외환자 수가 2018년에는 200만 명을 넘었었고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나 중앙아시아로부터 환자들이 몰려왔다. 물론 여기에는 병원들의 노력과 정부의 지원이 물밑에서 치열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나라의 의료서비스 수준이 세계적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600병 상급 이상인 병원이 40여 곳이 넘고 1000 베드 이상인 병원은 15곳이나 된다. 2019년 OECD 통계에 따르면 “병원의 병상은 인구 천 명당 12.3개로 OECD 평균(4.7개)의 약 2.6배에 이르고, 자기 공명 영상장치(MRI)와 컴퓨터 단층촬영(CT) 보유대수도 OECD 평균보다 많아 물적 자원의 보유 수준은 최상위권”이라고 한다. 이러한 화려한 우리나라 의료의 외양 속에 대형 병원 바닥에 대리석 깔고 이런 것이 본질이 아니지 않냐는 아주대학 병원 권역외상 센터 이국종 교수의 외침이 내 귓가에 항상 맴돌고 있다. 외양이 큰 만큼 드리워진 그늘도 크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지불제도 체계의 가장 큰 축은 행위별 수가제이다. 병의원에서 진료받는 과정에서 진찰, 진단검사, 영상 검사, 투약, 시술, 수술 등 하나하나의 진료 항목마다 수가가 정해져 있고 해당 환자에서 이루어진 총합이 진료비가 되게 된다. 이렇게 모든 행위를 수가로 쪼개 놓고 진료비를 건강보험에 청구하다 보니 해당 의사, 해당 진료과의 수익이 계산되게 되고, 그 수익은 고스란히 병원 경영의 기초 자료가 되게 된다. 대학병원에서 조차 교수회의 때 수익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된다고 현장에 있는 교수들로부터 들을 때마다 마음이 영 불편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어떤 병원들에서는 수입을 반영한 인센티브를 지급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5억 클럽이란 이야기도 들린다. 병원에 벌어준 수익이 5억 원을 넘는 의사들을 지칭하는 말로 이런 의사들은 아무도 못 건드린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들리고 있다. 대학 병원 교수들은 해당 과의 수련의 배정, 후임 교수 배정들을 둘러싸고 자신들의 진료과 수익이 크게 고려되므로 이에 대한 압박을 받기도 한다.
내가 교육받고 수련받을 때 어떤 의사나 특정과의 수익에 대해 논하는 분위기는 거의 없었다. 해부병리 선생님들이나 방사선 의학과 선생님들도 그 콧대 높은 내과 선생님들 앞에 매우 프라우드하고 당당하게 때론 거만하리만큼 행동하실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환자 진료에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었다. 환자에 대한 정확한 판단에 그 해당 전문의가 주는 정보가 너무나도 중요하기에 그분들은 당당하시고 자부심에 넘치셨었다.
건강보험이 너무나도 사람들에게 중요한 제도가 되어 도입된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나, 제도 운영에 있어서는 부작용으로 모든 의료서비스를 마트의 상품처럼 만들어 놓았다. ‘참치캔 얼마, 라면 한 봉지 얼마, 소고기 한 근 얼마 …. 땡. 총합이 얼마입니다.’ 마트처럼 말이다. 의사들은 암묵적 또는 매우 명료한 방식으로 압박을 받게 되고 자연스럽게 과잉 진료가 산출될 크나큰 잠재력을 가진 제도가 되었다. 최종 피해는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돌아온다.
2010년 의료법에 ‘의료인은 의약품 공급자로부터 의약품 처방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받지 못하도록’ 규정하였다. 의약품 처방에 따른 이차 이득을 원천 제거하여 의사가 환자를 위해 가장 적절히 약물을 사용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로 인해 의사들이 해외 유수 학술대회에 참가하여 최첨단 지식을 공부할 기회를 잃고, 병원 내 환자 진료에 매진한 수련의들의 노고를 위로할 각 해당 진료과의 운영지원이 끊겨 의사들은 울상을 지었다. 그러나 이차 이득을 얻기 위해 환자에게 최적화된 치료보다 자칫 특정 의약품 몰아주기 처방이 가져올 수 있는 해로움을 줄이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큰 이득이므로 이러한 법이 통과되었고 지금에 이르렀다.
이제 약제 리베이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병원 봉직 의사들 개개인과 특정 진료과의 수입을 데이터화 하고 이를 근거로 인센티브를 주는 것을 법으로 금해야 한다. 의료 최일선에 묵묵히 일하는 의사들이 이러한 압박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오로지 일차 이득만을 관심하여 자신의 앞에 와 앉아 있는 환자만을 위해 최적의 판단을 하도록 사회가 도와야 한다.
내과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교과서 중 Harrison이란 책이 있다, 과거 초창기 1950년대에 발간되었었던 책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환자는 단지 증세, 증상, 잘못된 신체 기능 이상, 손상된 신체 장기 그리고 혼란스러워진 감정의 복합체가 아니다. 환자는 두려워하면서도 희망을 갖기 원하고 곤란함으로부터 놓이길 바라고 도움을 필요로 하며 안심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의사에게는 기술적 숙련과, 과학적 지식과 인간에 대한 이해, 재치와 고통에 대한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요구된다.”
의료가 마트에 진열된 상품처럼 되는 순간 ‘인간’은 사라지게 되고 기술만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의사에게 천사나 至高, 至善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의사들이 우리나라에서 어떤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고 그렇게 행동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네, 선생님 말씀하신 대로 해주세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의료제도를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게 될 것이다.
마음이 순수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8)
의사별, 진료과별 수익을 계산하는 것은 금지되어야합니다. 개별 수입에 따라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도 금지되어야 합니다.
의사들은 환자들을 소중히, 최선을 다해 진료하는 것으로만 평가 받아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