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대식 건물과 의료 장비로 대형병원을 건립하는 것은 환자 유치에 선점을 차지하는 거대 전략이며,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병원 경쟁에서 회심의 뒤집기를 시도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과 피땀을 흘리며 준비해도 될까 말까 한 일이다. 소위 일컬어지는 빅 3, 빅 5같이 병원 서열을 세우는 세계에서 말이다.
이렇게 거대한 투자를 하였으면 그에 걸맞은 수익을 창출해야 하고 정해진 의료수가 하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양을 늘릴 수밖에 없다. 그것도 원가 대비 이익을 낼 수 있는 영역의 진료 양이 증가해야 수익이 증대될 테고 현실적 대안은 검사, 고가의 영상검사, 비급여 진료의 양이 증가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경영진은 해당 의사나 진료과별 수익에 따라 나래비 세워 성적표를 공개하고 다음에 더 잘하라는 압박을 가하게 된다. 모든 병원들이 다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교수들이나 봉직의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 물어보면 적지 않은 병원들에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진다고 답변을 들었다. 해당 진료과에 인력과 시설 등 병원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으려면 당연히 수익에 있어서 경영에 도움을 준 과들이 우선순위로 올라갈 터이고 각 진료과의 장들은 구성원들에게 유무언의 메시지를 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외상 의학의 대가인 이국종 교수님의병원에 대리석 깔고 이러는 것이 본질이 아니지 않냐는 외침에 깊이 공감이 된다.
이 모든 복합적 역학의 산물은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돌아간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보장성 강화 정책을 펴도 보장률은 증가에는 미미한 영향을 끼칠 뿐 큰 폭의 증가는 보여주지 않는 마술의 그래프를 보여준다. 보장성으로 쏟아부은 재정은 체면조차 유지 못한 채 보장율은 거의 수평선을 긋는다.
의사는 오직 환자를 치유하기 위해서만 그의 온 신경을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이차 이득에 대해 염두에 두지 않도록 스스로 제한해야 하고 사회는 이럴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앞선 '기사, 졸, 악당'이란 글에서 언급한 기사의 역할, 즉 신뢰를 기반으로 하여 의사들의 전문성과 자율성이 발휘되어 '의학'이 살아 있는 의료가 되게 사회가 여건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의료가 산업화될 때, 의료시스템의 생태계는 붕괴되고, 의료가 마켓에 진열된 상품처럼 될 때 결국 환자들에게는존중받거나 안전한 양질의 진료를 받을 기회가 훼손되게 된다. 의사들에게 "생명을 구하고 개선시키는 것이 첫째이고 재정적 이득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도록 의료 생태계가 복구되어야 한다.
내과 개원의협의회 회장을 역임했던 L의학박사님의 말이 아직도 귓전을 맴도는데, 어느 날 외래에 숨이 찬 증세를 호소하는 환자분이 왔다는 것이었다. 청진을 포함해 자세한 진찰을 한 후 심장에서 잡음이 들리는 것을 발견한 그 의사 선생님은 환자의 증세가 심장 판막 질환으로 인한 것 같다고 심장 전문의가 있는 병원으로 보내드리겠다고 했더니 환자가 눈시울이 붉어지면 그 선생님의 손을 붙잡고 고맙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그 환자를 쳐다보니 그 환자는 자기가 대학 병원을 포함해 여러 곳에 숨찬 문제로 진료를 받고 이 검사 저 검사받았으나 이상이 없다고 심리적인 문제라는 답변만 받았는데 그동안 아무도 이 L박사님처럼 자세히 청진기로 진찰한 의사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신 집안의 어르신이고 지성인이시고 뛰어난 학계의 거두이신 분은 암 말기인데도 병원을 찾지 않으셨는데,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병원에서 개별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모든 진료가 이루어지지는 것이 아니고 그 병원의 유지를 위한 의료가 행하여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라고 의사인 내게 말씀하셨다. 한 마디로 오늘날의 병원에서 의사들은 오롯이 환자를 위해 진료한다고 신뢰할 수 없다는 말씀이셨던 것이다. 그 말씀을 듣는 나는 많은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의과대학 시절, 자세한 진찰을 할 때 이것만으로도 질병의 70-80퍼센트를 진단할 수 있게 된다고하셨던 어떤 교수님의 가르침은 이제 대학병원에서조차 외면되고 있는지 오랜 것 같다. 환자가 입원해도 자세한 진찰을 하는 의사를 찾기 힘드니 말이다.
의료 생태계가 제대로 복원되어, 의학이 의학답게 구현되는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게 되길 소망해 본다.
마태복음 14:14 예수님께서 나오셔서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그들의 병을 고쳐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