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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Aug 11. 2022

매출로 줄 세우지 마세요.

회려한 우리나라 의료의 그늘:상업에서 생명의 영역 안으로

 초현대식 건물과 의료 장비로 대형병원을 건립하는 것은 환자 유치에 선점을 차지하는 거대 전략이며,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병원 경쟁에서 회심의 뒤집기를 시도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과 피땀을 흘리며 준비해도 될까 말까 한 일이다.  소위 일컬어지는 빅 3, 빅 5같이 병원 서열을 세우는 세계에서 말이다.


 이렇게 거대한 투자를 하였으면 그에 걸맞은 수익을 창출해야 하고 정해진 의료수가 하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양을 늘릴 수밖에 없다. 그것도 원가 대비 이익을 낼 수 있는 영역의 진료 양이 증가해야 수익이 증대될 테고 현실적 대안은 검사, 고가의 영상검사, 비급여 진료의 양이 증가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경영진은 해당 의사나 진료과별 수익에 따라 나래비 세워 성적표를 공개하고 다음에 더 잘하라는 압박을 가하게 된다.  모든 병원들이 다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교수들이나 봉직의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   물어보면  적지 않은 병원들에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진다고 답변을 들었다. 해당 진료과에 인력과 시설 등 병원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으려면 당연히 수익에 있어서 경영에 도움을 준 과들이 우선순위로 올라갈 터이고 각 진료과의 장들은 구성원들에게 유무언의 메시지를 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외상 의학의 대가인 이국종 교수님 병원에 대리석 깔고 이러는 것이 본질이 아니지 않냐는 외침에 깊이 공감이 된다.


 이 모든 복합적 역학의 산물은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돌아간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보장성 강화 정책을 펴도 보장률은 증가에는 미미한 영향을 끼칠 뿐 큰 폭의 증가는 보여주지 않는 마술의 그래프를 보여준다. 보장성으로 쏟아부은 재정은 체면조차 유지 못한 채 보장율거의 수평선을 긋는다.


 의사는 오직 환자를 치유하기 위해서만 그의 온 신경을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이차 이득 대해 염두에 두지 않도록 스스로 제한해야 고 사회는 이럴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앞선 '기사, 졸, 악당'이란 글에서 언급한 기사의 역할, 즉 신뢰를 기반으로 하여 의사들의 전문성과 자율성이 발휘되어 '의학'이 살아 있는 의료가 되게 사회가 여건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의료가 산업화될 때, 의료시스템의 생태계는 붕괴되고, 의료가 마켓에 진열된 상품처럼 될 때 결국 환자들에게는 존중받거나 안전한 양질의 진료를 받을 기회가 훼손되게 된다. 의사들에게 "생명을 구하고 개선시키는 것이 첫째이고 재정적 이득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도록 의료 생태계가 복구되어야 한다.


 내과 개원의협의회 회장을 역임했던 L 의학박사님의 말이 아직도 귓전을 맴도는데, 어느 날 외래에 숨이 찬 증세를 호소하는 환자분이 왔다는 것이었다. 청진을 포함해 자세한 진찰을 한 후 심장에서 잡음이 들리는 것을 발견한 그 의사 선생님은 환자의 증세가 심장 판막 질환으로 인한 것 같다고 심장 전문의가 있는 병원으로 보내드리겠다고 했더니 환자가 눈시울이 붉어지면 그 선생님의 손을 붙잡고 고맙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그 환자를 쳐다보니 그 환자는 자기가 대학 병원을 포함해 여러 곳에 숨찬 문제로 진료를 받고 이 검사 저 검사받았으나 이상이 없다고 심리적인 문제라는 답변만 받았는데 그동안 아무도 이 L박사님처럼 자세히 청진기로 진찰한 의사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신 집안의 어르신이고 지성인이시고 뛰어난 학계의 거두이신 분은 암 말기인데도 병원을 찾지 않으셨는데,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병원에서 개별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모든 진료가 이루어지지는 것이 아니고 그 병원의 유지를 위한 의료가 행하여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라고 의사인 내게 말씀하셨다.  마디로 오늘날의 병원에서 의사들은 오롯이 환자를 위해 진료한다고 신뢰할 수 없다는 말씀이셨던 것이다. 그 말씀을 듣는 나는 많은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의과대학 시절, 자세한 진찰을 할 때 이것만으로도 질병의 70-80퍼센트를 진단할 수 있게 된다고 하셨던 어떤 교수님의 가르침은 이제 대학병원에서조차 외면되고 있는지 오랜 것 같다. 환자가 입원해도 자세한 진찰을 하는 의사를 찾기 힘드니 말이다.


 의료 생태계가 제대로 복원되어, 의학이 의학답게 구현되는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게 되길 소망해 본다.


마태복음 14:14 예수님께서 나오셔서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그들의 병을 고쳐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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