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휴기간 동안 문경새재 옛길에 다녀왔다. 이전 교육계 계셨던 분께서 연수차 다녀와서 그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인근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곳이니 꼭 가보라고 권했던 웨스트 오브 가나안 호텔과 새재 옛길을 간다 간다 하다 몇 년이 흘렀다. 조선 태종 때 왕국이 만든 도로로 1414년 개통되었다 하니 61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길을 걷는 셈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장고의 시절을 거쳐 숱한 사연을 지닌 채 오갔을까?
이번 어린이날 대체 공휴일이 월요일로 되면서 연휴가 주어진 기회를 잡아 차일피일 미루던 여행을 계획했는데 미리 알아보니 이 길은 걷기 좋은 길로 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경새재 도립공원에서 출발하면 1 관문을 거쳐 3 관문까지 왕복으로 네 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길이 잘 닦여 있어 편하게 걸을 수 있다는 좋은 평들이 인터넷상에 올라와 있었다.
딸아이는 주요 과제로 함께 못하고 우리 부부만 다녀오게 되었는데, 연휴 시작 전 날, 일과가 끝나는 대로 출발하였다. 내려가면서 차 안에서 샌드위치 한 조각씩 먹으며 저녁은 간단히 때웠다. 생각보다 멀지 않아 2시간 정도 소요되어 호텔에 도착하였다. 연휴 당일 출발하여 1박을 아낄까도 생각하였지만 좀 여유 있는 힐링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터라 처음 별생각 없이 예약했던 숙박일정을 단축하지 않았는데, 다음 날 제3관문에서 하산길에 연휴당일 출발한 분을 만났는데.너무나 잘 한 결정이었다.
도착한 날 아직 해가 지기 전 여운이 호텔 건물 옆 야외 테이블에 남아 있어 우리는 간단한 식음료를 시켜 숲 속 호텔의 분위기를 누리기로 하였다. 한 무리의 직장인들이 단체로 왔는지 야외 바비큐를 즐기며 희희낙락하는 모습이 자칫 을씨년스러울 수도 있는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들어 주었다. 우린담소를 즐기다 다음날 일정을 준비하러 들어갔다.
아침 식사는 간단히 하고 일찌감치 문경새재 도립공원으로 향하였다. 20여분 차로 이동하니 공원입구가 나오며 일찍온 덕분에제1 주차장 깊숙이 여유롭게 주차할 수 있었다. 나올 때 보니 모든 주차장이 꽉 찼고 진입하는 차량들이 무한정 길게 줄을 지어 서 있는 것을 보고 한 발 앞서 움직이길 잘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제1관문 입구에 도착하는 길곳곳에 문경 찻사발 축제를 알리는 홍보 문구들과 곳곳에 설치된 부스들이 보였다. 마침 우리가 온 것이 축제의 한가운데 해당하는 날이었다. 수려한 장관을 지닌 문경새재 제1 관문을 지나 잘 마련된 완만한 산책길을 오르는 내내 맑은 계곡의 물이 옆에 흐르고 잠시 후사극 영화 세트장이 나왔다. 이 기간 세트장을 이용해 문경찻사발 축제가개최되어,행사 기간 동안 무료개방되었다. 우린 내려오는 길에 여유가 있으면 들리자고 하며 완만한 길을 계속 올랐다.
제일 관문과 성벽뒤로 수려한 자연 풍광이 보인다.
가는 길 주변 계곡의 맑은 물이 흐른다.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길가 벤치에 앉아 준비해 온 커피와 이에 어울리는 작은 빵조각을 먹으며 잠시 여유로움을 즐겼다.
직장동료들이 대부분 여성분들인데 주말에 부부가 같이 걷고 사진 찍고 동행한다고 이야기하면그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신기해하곤 했는데, 의외로 50대 이후 부부들이 함께 하는 것이 그리 흔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나는 놀라곤 한다. 때로 서로에 대해 다소 실망한 듯한, 또는 다소 냉소적인표현을 하는 걸 들을 때한번더 놀라게 된다.
서로 성격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고, 선호가 다른데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양육이라는 공통의 과제가 그래도 함께 하게 하였는데, 아이들이 성장하면서부모와함께 하지 않게 됨에 따라,부부만 함께 여행 가거나산책하게되는데 그 과정 중에 화평의 조율에 실패하면 자연스레 '각자 알아서' 전략으로 바뀌게 되나 보다. 부부가 같이 하는 것의 즐거움을 일깨워 주고 같이 할 수 있는 약간의 팁을 알려주면 동료들은 눈이 반짝거리며 다시 한번 도전해 보겠다며 의지를 북돋기도 한다.
가다보며 우측에 자그마한 폭포가 심신을 시원케 해준다.
잠시 휴식을 뒤로하고 또다시 걷다 보니 우측에 작은 폭포도 나오고 옛 주막을 재현해 놓은 곳도 나온다. 가끔 이런 분위기와 전혀 동떨어진 휴게소가 나오고 취향에 맞지 않는 음악 소리가 크게 나오기도 해서 약간 어리둥절 하기도 한데 지루할 틈 없이 걷다 보니 물레방아가 나오고 이내 제2 관문이 나왔다.
제2 관문은 일 관문에 비해 덜 웅장했지만 비교적 규모가 작아서인지 다소 친근감이 더 느껴졌다.
우린 3 관문을 향하지 않고 여기서 발길을 되돌려 주차장으로 가 인근 음식점에서 점심식사하고 숙소에서 잠시 쉰 후에 호텔 쪽에서 제3관문으로 향하기로 하였다. 조령산 자연휴양림을 통한 길이 제3 관문까지 나 있고 젊은이 걸음으로 30분 정도면 오른다 하니 우리 체력에 그것이 더 낫겠다 싶었다.
2 관문에서 내려오는 길에 찻사발 축제장을 잠깐 이곳저곳을 들려 보았는데 옛 마을을 재현해 놓은 뒤로 산들과 숲들이 어우러진 것이 조선시대 영화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온 듯하다.
영남지방에서 밥이나 국, 막걸리 등 필요에 따라 편리하게 사용하던 막사발을 때론 개밥그릇으로도 썼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당시 이를 접한 일본에서는 이 막사발의 멋에 반하여 귀하게 여겨 이도다완이라 부르며 말차를 마시는 찻사발로 사용하였다고 하고 이중 국보로 지정된 것이 있었다고 한다.
훗날 막사발 장인으로 대한민국 도예명장이 되신 문경요의 도천 천한봉 선생은 일본 스님의 추천으로 국보가 된 이도다완을 보고 이를 재현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청자와 백자에 대해서는 그런대로 기록이 남아 있었지만 정작 당시 흔히 만들었던 막사발에 대해선 기록이 없어 이를 재현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하는데 마음에 드는 작품 몇 점을 얻기 위해 수만 개의 사발을 만들었다고 하니 실로 인고의 세월을 요하는 작업이었으리라.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마음에 품은 대로 작품이 나오지 않으면 뒤뜰에 가져가 부수었고, 어쩌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우연인 듯 만나곤 하면서 그는 마음에 그린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 자연이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일명 불의 정도에 따라 다른 작품이 나오는 요변현상,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도자기를 불의 예술이라 부른다. 사람이 공을 들이지만 작품이 나오는 것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고 신의 영역이라는 것을 이 도자기 명장들은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하나 /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시다. 잠언 16:9
문경에는 현재 35개 정도의 가마가 있고 이는 35명 이상의 도공이 지금도 도자기를 빚어내고 있다는 뜻이다. 여주 이천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뿌리 깊은 도자기 공예의 장인의 숨길을 느낄 수 있다.
점심 식사 후 호텔로 돌아와 잠시 쉰 후 네 시경 제3관문을 향해 호텔 앞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걷다 보니 조령산 휴양림을 지나 오르막 산길이 이어지고 우리 걸음으로는 한 시간 정도 걸려 도착하였다.
늦은 오후 햇살에 제3관문이 더욱 운치 있게 보인다.
3 관문에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제1 관문에서부터 2 관문을 거쳐 여기까지 올라온 우리 나이 또래 여성 분이 여기로 내려가면 이대 고사리 수련원이 나오냐고 다급하게 물었다. 우리가 그렇다 하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시며 함께 가도 되겠냐 물으셨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사 프로그램에 참여해 버스로 아침 7시경 서울서 출발했는데 오후 두 시가 다 돼서야 도착했으며 자신들을 문경새재 도립공원에 내려준 후 이대 고사리 수련관에서 버스는 기다릴 테니 1, 2 관문과 3 관문까지 거쳐 걸어서 알아서 집결하라고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가이드가 함께 하지 않고 버스로만 데려다준 모양이었다. 명절 때만큼이나 차량이 밀려 힘들었다고 하시며 걷는 것이라면 평소 자신이 있던 이분들은 일행들이 뒤쳐지자 꾸준히 앞서 걷다 제3관 문까지 잘 통과하고 합류하는 곳을 향해 하산하는데, 초행길이라 자신이 걷는 길이 맞는지 매우 걱정하다 우리 부부를 만난 것이었다.
도자기에 심혈을 기울여 노력하지만 마지막 완성은 신의 영역인 것 같이 인생길을 열심히 걸으나 제대로 갈길을 가는지는 하나님께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