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인생 공식 글에서 우리 삶의 공식을 제시하였으니, 몇 가지 사례들을 통하여 이 공식의 타당도를 검증해보도록 하자.자신의 체험에 대한 사례는 그날 이후라는 글을 통해 증명하였으나, 이 공식을 제시한 개인의 사례이므로 매우 주관적일 수 있겠다. 외적 사례들을 통해 점검하기 위해 '양 떼 발자취를 따라 I'의 사례를 먼저 보도록 하자. 위 글들을 읽지 않으셨다면 먼저 읽어 보시길 권한다.
거친 삶을 살아오셨던 어느 중년의 부부(L1+ L1’)의 사례이다. 이 부부는 거친 세상을 사시며 삶의 무게 2를 자신의 주먹과 거친 대응 방식으로 대처해 오셨다. 그들에게 그런 삶은 많은 갈등과 다툼의 부작용들을 발생시켰으며 평온한 삶이 될 수 없었다. 이 부부의 삶의 공식은 아래와 같았다.
L_= L1+ L1’ +2
부부가 결혼하였으나 인생이 감당해야 할 크기 2는 변하지 않았고 그들의 삶의 대응방식이 거칠었으므로 이 정수 2는 3으로 발전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부부는 예수 그리스도( ‘L2’)를 구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2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악을 다 쓰며 반응해왔지만 이 2의 문제의 크기는 줄지 않았었다. 오히려 새로운 갈등을 불러일으키며 어려움이 더 커지는 일이 왕왕 발생하였을 것이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주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이후 그런 악다구니를 더 발휘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악을 발한 것이 후회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자백한 것이다. "주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행하였습니다."라고 말이다 이 순간 그들의 인생 공식은 다음과 같이 되었다. 인생이 감당해야 할 문제 2가 사라진 것이다.
L_= L1+ L1’ + L2 + 0
이제 같은 글에서 K준위의 사례로 가보자. 그는 젊은 날 권투 시합 중 사망한 상대 선수로 인해 인생에 평생 그에게는 해결할 수 없는 크나큰 마음의 짐이 있었다. 그의 인생 공식은 적어도 다음과 같았다.
L_= L1+3
그는 다른 사람보다 감당할 인생의 무게가 더 컸다. 그래서 그는 내게 자신의 발로 걸어와 제발 자기에게 복음을 전해달라고 했던 것이었다. 그 전후로 이런 사람을 아직 만나보지 못하였다.
당신의 인생의 무게는 얼마인가?
그랬던 그에게 권투도장의 문제로 그의 인생의 순간 무게는L_= L1+4가 되었을지 모른다. 사람이 감당할 무게의 크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이미 주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상태였고, 필사적으로 주 예수의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기묘한 일이 발생하였는데
L_= L1+ L2 + 0
위와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4의 인생 문제의 크기가 0이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4의 문제를 주예수께서 다 짊어지셨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동안 주예수님의 이름을 부른 후에 천사와같은 얼굴로 관장 방에서 걸어 나왔고 관원들이 다 놀랐다.
이제 좀더 견고한 사례, 인류 역사를 통해 기록되고 전수되어 온 사례들에 적용해 보자. 요한복음 4장에는 이름도 나오지 않는 수가의 우물가의 여인이라 불리는 사마리아 여인이 나온다.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고 계셨던 예수께서 수가라하는 사마리아의 한 동네를 지나셨다. 거기 한 우물가에서 물을 길으러 온 이 여인을 만나시곤 마실물을 달라고 요청하셨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매우 천하게 여겨 상종하지 않던 때였다. 그런 문화적 배경 가운데 이 여인은 유대인인 당신이 왜 사마리인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시냐고 의아해하며 답하였다.
예수님께서 답하셨다. "만일 그대가 하나님의 선물과 또 그대에게 물을 좀 달라고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그대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고, 그는 그대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3:10)
이 사마리아 여인이 보기에 우물은 깊고,지닌물도 없어 내게 물을 달라고 하는 이분은 우물 길을 두레박도 없는데 어찌 내게 물을, 그것도 생수를 주겠다고 하시는가 하며 그 우물을 팠던 조상 야곱보다 당신이 더 뛰어나시냐고 물었다. 이 여인에게 낯선 유대인인 그분을 마음에 받아들이기에 큰 마음의 벽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분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마다 다시 목마를 것이지만, 누구든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원천이 되어 샘솟아 올라 영원한 생명에 이를 것입니다." (요한복음 4:13-14)
그러자 그 여인은 그럼 당신이 말한 그 물을 자신에게 달라고 하며 다시 이렇게 물을 길으러 오는 수고를 하게 하지 말아 달라고 하였다. 예수께서 그분이 말씀하신 생수에 대해 알아듣지 못하자 그녀에게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다. 그녀의 일평생 가장 약했던 부분, 그녀가 일생 해결할 수 없었던 부분을 만지신 것이었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남편을 데리고 오라는 말에 황급하였다.
어렸을 적 나는 부모님이 학교를 방문하실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부친께서 교육자셨지만 학교에 출근하셔야 하고 모친께서는 학교에 학부모로서 가실 수 있는 형편이 아니셨다. 당시 초등학교는 국민학교라 칭하였던 시절이고 국민학교 1-2학년쯤 되었을 때의 이야기였다. 그때 담임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부모님들께서 학교를 방문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나의 부모님이 오시지 않자 선생님께서 왜 부모님께서 오시지 않으시냐고 물으셨다. 나는 엉겁결에 어머니께서 각기병에 걸리셨다고 말하였다. 머릿속에 다리가 부어 오른 어머니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각기병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누구에게 들었는지 각기병 이야기를 하였던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그 사마리아 여인은 순간적으로 답하였다. 자신에겐 남편이 없다고 말이다. 그녀는 다섯 번이나 남편을 바꾸었고 지금 있는 남편은 여섯 번째인 남편이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녀를 보시면서 말하셨다. "그대에게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남편도 그대의 남편이 아니니, 그대가 한 말이 참됩니다." 예수께서는 우주 가운데 가장 긍정적인 분이시다. 그녀는 다섯 번이나 남편을 바꾸었다. 이전의 어떤 남편도 그녀의 깊은 속에서의 목마름을 해결 해 주지 못하였다. 그래서 남편을 바꾸고 또 바꾸고 다섯 번이나 바꾸었지만 여전히 인생의 목마름은 해갈되지 못하였다. 이 말을 성적인 문제로만 받아들이지 말라. 모든 사람에게 천박하게 여겨질 그녀의 행실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그녀의 존재에서 오는 깊은 목마름의 해결에 관한 문제였던 것이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여섯 번째 남편은 누군가의 다른 여자의 남편이었기에 '그대의 남편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이고 실낱같은 긍정적인 면을 붙들어 주시며 그녀를 옹호하시면서 그녀의 문제를 드러내셨다. 그 순간 그녀는 하늘이 노래지고, 심장은 방망이질하듯 뛰었을 것이다. 자신의 가장 가리고 싶고 부끄러운 부분, 그러나 일평생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보도 듣지도 못한 유대의 한 낯선 사람으로부터 다 드러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당황한 그녀는 종교적인 문제로 황급히 화재를 돌리며 예배할 곳에 대한 문제를 물었다. 사마리아 인들은 자기들의 산에서 예배하는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한다. '어느 곳에서 예배하는 것이 옳으냐?' 이런 질문이었다. 오늘날로 말한다면 성당에서 예배하는 것이 옳으냐 장로교 예배당이냐 감리교 예배당이냐? 아니면 으리으리하게 큰 예배당이냐, 작고 초라한 예배당이냐? 인수가 만 명에 육박하는 곳이냐 수십 명 모이는 곳이냐? 도대체 어디서 예배하는 것이 정답이냐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러자 주님은 이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고 "하나님은 영이시니, 경배하는 사람들은 영 안에서 진실함으로 경배해야 합니다."라고 답하셨다.
이제 그녀의 모든 무기는 다 떨어져 버렸다. 더 이상 이 낯선 분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한마디하고 떠나가려고 하였다. "나는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는 분께서 오실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메시아가 오시면 그분께 나의 모든 문제를 말하겠다는 태도였다.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에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4:26)
그러자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여인이 물동이를 버리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와서 보십시오이전에 행한 모든 일을 나에게 말씀하신 분이 계십니다. 이분께서 그리스도가 아니시겠습니까?'라고 하니"
'물동이를 버리고 가서.' 이 물동이가 그녀의 인생에 짊어져야 할 무게 2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아마 그녀는 인생의 무게를 스스로감당할 수 없어 그동안 그녀의 공식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왔었다. 아마도 그녀는 주관적으로 자신의 문제의 크기가 일반적으로 감당할 무게보다 크게 여겼기 때문에 그녀의 감당할 문제의 크기는 3이었을지 모른다.
L_= L1+ L1’ +3
L1’을 L1’'로, L1’'를 L1’''로 이런 식으로 바꾸다가 예수님을 만날 당시는 다음과 같았다.
L_= L1+ L1’''''' +3
3의 문제의 크기는 여전하였고 그녀는 목말랐다. 그런데 그녀의 인생에 메시아, 곧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이었다. 이제 그녀의 인생 공식은 이렇게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