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무 Feb 09. 2021

심장이 떨어지는 줄

 수년 전 일이다. 아내와 나는 봄에 곰배령에 다녀오려  예약을 하고 초등학교 시절 소풍 갈 날을 기다리듯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마침내 당일 점봉산 생태관리센터에 도착하였다.  

내게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야생화

최근엔 동절기에도 입산이 허가된 것 같은데, 당시에는 겨우내  금지되었었다. 미처 인지하지 못하였는데 우리가 예약한 날이 닫혔던 산길이 열린 날이었다. '와! 올해 처음 열린 곰배령 탐방이라니.' 무엇이 우릴 기다릴까 궁금한 마음 한가득 안고 산길을 걷기 시작한다. 입구에 있었던 이삼십 명의 사람들은 산길에 들어 서자 보이지도 않는다.

고개를 숙이며 피어오르려는 얼레지


 초입 산길 옆으론 얼레꽃이 고개를 숙이고 피어나며 수줍은 모습으로 힐끗 보며 인사를 하고,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여기저기 피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전문 산악인도 아마추어 산악인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어느새부턴가 기회가 될 때마다 야외에 나가 산과 들을  함께 걷게 되었다. 자연을 걷다 보면 아내는 평소 미루어두었던 많은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곤 하고, 싸간 도시락이나 오랜만의 외식을 하며 평소 나누지 못했던 교감을 나누곤 는데, 이것이 우리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연인에서 부부로, 부부에서 친구로, 친구에서 동반자로 우리가 걸어온 길이 이제 34년에 다가서고 있다.

산을 약간 오르니 나뭇가지에 살얼음이 끼어있는 것이 여기저기 보인다.

 봄으로 시작한 곰배령 산행이 시간이 지날수록 타임머신을 타고 뒤로 돌아가는 듯 다시 겨울의 모습으로 가는 듯하였다. 길을 걸으며 이상한 모습들을 주변 나뭇가지에서 발견하였는데, 잔가지 위에 살얼음이 껴 있어 반질반질한 것이었다. 처음엔 날씨가 추워 이슬이 얼었나 하였는데, 신기하게도 그 얼음의 두께가 산을 오를수록 점차 더 두꺼워지는 것이었다.

그 살얼음이 산에 오를수록 두꺼워져가고

걷다 보니 초입에 보였던 꽃들과 함께 봄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점차 겨울 풍경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좀 마음이 두렵기 시작했는데 겨울에 대비해 준비하고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였고, 또 겨울철 산행을 해본 경험도 없는 터라 계속 올라가도 되나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다.

한쪽 방향으로만 얼음이 얼어 있다.

 그런데 주변 나뭇가지들에 얼음들이 신기하기만 하고, 갈수록 그 두께가 넓어져가는 모습이 처음 보는 광경 이어서 호기심도 생겨, 우린 계속 걸어 올라갔다. 그 얼음은 신기하게도 한쪽 방향으로만 자라 있었다. 오르다 보니 이젠 우린 겨울 한 복판에 와 있었다. 4월이었는데 말이다. 고개 정상에 거의다 가까이 왔을 때에는 눈까지 쌓여있었는데 무릎까지 올라왔다. 우리에겐 에베레스트 산이 아닐 수없었다. 여길 계속 올라가야 하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나뭇가지에 얼어 붙은사슴뿔깥이 생긴  얼음

봄에 산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던 우리에게 한겨울, 그것도 에베레스트산 같게만 느껴지는  정상이 바로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다행히도 몇몇 사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게 되어 우리도 용기를 내어 끝까지 올라가자고 하였다. 나뭇가지의 한쪽 방향으로만 얼음이 얼어 있었던 것은 강한 바람 때문인 것 같다고 하며  과학 현장 탐구까지 하면서 올라가다 보니 그 얼음은 정글탐험용 칼같이 넓적하게 자라 있었다.

마치 칼 모양으로 얼음이 넓게 얼어 붙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이 상고대였다. 무릎까지 차오르는 눈길을 따라 오르니 곰배령 정상이다. 센 바람과  추운 날씨가 이제 그만 내려가라 하니 떨어질 줄 만 알았던 심장을 부둥켜안고 아내와 하산길을 취하였다. 난생처음 보는 기이한 경들을 마음속에 그려놓고, 사진에 담고 내려오는 발길은 왠지 뿌듯하였다. 바닷가에서 예쁜 조개껍질을 잔뜩 주어 바지 양쪽 호주머니가 불룩 튀어 오른 어린아이들처럼.

작가의 이전글 숲 속 카페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