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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사람 Nov 23. 2020

따뜻한 겨울

나는 왜 뜨개질을 하게 되었나

딸아이가 다니는 중학교 앞 도로의 나무들은 겨울이면 알록달록한 뜨개질 옷을 입는다. 

가정선생님의 인내심과 아이들의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지어진 뜨개옷은 한 학기 프로젝트 수업의 결과물로  겨울 내내 학교 앞을 지나는 행인을 미소짓게 한다. 

올해는 그놈의 코로나로 인해 이 활동을 못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안타깝게 여긴 몇몇 학부모가 모여 '꼼지락 다락방'이라는 학부모 동아리를 만들었다. 뜨개질을 제법 선수급으로 잘 하는 엄마도 있었고, 대표 엄마의 강요에 억지로 가입한 엄마도 있었다. 서로서로 가르쳐 주고 배우며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뜨개질을 했다. 카톡으로 자기가 뜬 작품을 올리기도 하고, 쉽게 잘 설명해 주는 유튜브 링크를 걸어주며 실력을 키워 나갔다.  회비로 감당하기에는 만만치않은 실값을 위해 구청에서 공모하는 학부모 동아리 사업에 지원하였고 1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아 알록 달록 예쁜 실을 샀다.  재능기부 차원에서 학생들을 위한 뜨개질 원데이 클래스도 열었다. 



누가 억지로 하라고 한 일도 아니고, 이거 한다고 칭찬을 받거나 크게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모여서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 나누며 뜨개질 하는 시간이 좋았다. 나무 옷 열심히 뜨다가 잠시 멈추어 필통도 떠 보고, 컵 받침도 떠 보고, 세수할 때 쓰는 머리띠도 떠서 사용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실을 새로 구입해서 나눠주는 날에는 일거리 받는 셈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부자가 된 듯 마음이 좋았다. 단톡방에 올린 내 작품 사진에 멋지다고 잘했다고 이모티콘 왕창 올려주는 엄마들이 좋았따.  모일때마다 집에 있는 먹거리들 들고 와서 나누는 기쁨은 코로나로 인해 단절된 관계의 욕구를 채워주는 듯 했다. 



날씨가 쌀쌀해지고 우리의 작품이 제법 쌓인 토요일 오후, 드디어 옷 입히기 작업을 했다. 10명의 회원이 구역을 나누어 돗바늘에 실을 꿰어 단단히 엮어 주었다. 동아리 이름과 좋은 글귀를 적은 종이도 함께 붙였다. 지나가던 동네 주민들이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메세지도 읽고 어떻게 이런 이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 묻기도 했다. 함께 하고 싶다는 적극적인 분도 계셨고 지그시 미소만 보내고 가시는 분도 있었다.  우리끼리 나름 뿌듯해 하며 부족한 부분은 조금 더 뜨개질을 해서 보충하기로 하고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는 치맥 파티도 했다.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예술 작품처럼 멋진 뜨개옷을 입은 가로수길에 대한 기사도 보이고, 뜨개옷이 잠복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히려 환경 오염이 된다는 뉴스도 있었지만, 왕골이나 짚을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면실로 나무 옷을 해 입히고 나무도 사람도 따뜻한 겨울이 될 수 있다면 족한것 아닐까 하며 그 길을 자꾸만 걸어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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