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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an 22. 2020

노쇼 (no-show)

노쇼(no-show)는 음식점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병원도 노쇼 환자들 때문에 골치를 앓는다. 예약된 외래 진료를 오지 않는 것이야 다음 환자 진료를 그냥 보면 되니 무슨 문제가 되겠냐만, 문제는 수술 날짜를 받아 놓고 예정된 날짜에 입원하지 않는 환자들이다. 입원해야 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입원을 하지 않아 전화해 보면 그제서야 수술 받지 않겠다고 하는 환자들이 있다. 미리 알려주기라도 하면 다음 주 수술 환자 일정을 당길 수라도 있지, 입원해야 하는 당일에 입원을 취소하면 대처할 방법이 없다. 소중한 수술 스케쥴을 펑크낼 수밖에. 수술이 밀려 있는 상황에서 이런 노쇼 환자가 생기면 속이 터진다. 덕분에 한 나절 쉬고 잘 되었다고 애써 위로하지만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노쇼에도 여러가지 유형이 있다. 다른 병원에서 수술받겠다고 가 버리는 환자나 수술 받기를 거부하고 집에서 지내는 환자가 많지만 간혹 돈이 없어서 입원을 안 하는 경우나 일이 바빠서 입원을 못했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근무처가 지방이다보니 서울로 수술 받으러 가는 거야 막을 수도 없고 그렇게라도 수술을 받는다면 다행이지만, 문제는 환자 본인이 수술을 거부하는 경우다.


노인 환자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외래 진료실에 앉아 있으면 일단 의심부터 든다. 또 수술 안 받는다고 하는 건 아닐까? 노인 환자들의 심리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아들 딸에게 등떠밀려 병원에 오긴 했는데 전신마취를 해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무섭다. 앞에 앉은 새파란 의사는 수술 안 받으면 안 된다고, 이 정도 진행된 대장암이면 수술 안 받으면 몇 달 안에 배 아파서 응급실로 오게 될 거라며 겁을 주고 있다. 그럴 리가 없다. 내가 당뇨 약간 있는 거 말고는 지금까지 얼마나 건강했는데. 담배고 안 피우고 채소도 얼마나 많이 먹고 운동도 매일 하고 얼마나 신경썼는데. 변비 조금 있어서 내시경 받은 것뿐인데 대장암이라니. 수술을 받아야 한다니. 그럴 수가.

여기까지는 대다수 환자들이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공통적으로 보이는 반응이다. 여기서부터 내 역할이 중요하다. 많이 놀라셨지요. 하지만 너무 걱정부터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대장암은 치료 성적이 상당히 좋은 암에 속해요. 수술하고 치료 잘 받으시면 완치될 확률이 70퍼센트가 넘어요. 지금부터 시작이니 마음 굳게 먹고 같이 시작해 봅시다. 아시겠지요? 보통은 이 정도만 말해도 먹힌다.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하고 나가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끝까지 수술을 거부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살아 봐야 얼마나 더 산다고 수술을 받아. 안 받고 죽을랍니다."

오만 가지 설득을 해도 통하지 않는 고집쟁이 노인들이다. 지금 수술을 해야 완치될 수 있다고, 그냥 놔두면 전이된다고, 몇 달 뒤에 막히거나 터져서 응급실로 오면 생명이 위독해진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다.

"그럼 그냥 죽고 말지 뭘."

"그게 그렇게 쉽게 콱 돌아가실 거 같으면 저도 수술 받으시라고 안 해요. 절대 쉽게 안 죽습니다. 아픈거 참다가 참다가 도저히 안 되어서 응급실로 오시게 되어 있다니까요. 제가 장담해요."

"아 몰라 어쨌든 수술은 안 해."

이렇게 나오면 도리가 없다. 수술 안 받겠다는 환자를 억지로 수술대에 눕힐 수는 없다. 그런데 보호자들 생각은 또 안 그렇다.

"교수님, 저희가 책임지고 설득시킬 테니까 일단 수술 날짜는 받아주세요. 엄마가 지금 경황이 없어서 그래요."

보호자의 간곡한 청을 외면할 수도 없다. 일단 수술은 예약해 드릴테니 혹시 설득이 안 되면 제발 미리 전화로 연락을 주십사 간곡히 부탁드리지만 상당수의 환자는 아무 말도 없다가 입원 당일에야 입원을 취소한다.


문제는 이런 환자들이 결국은 폭탄이 되어 돌아온다는 점이다. 의료진의 권유를 뿌리치고 집에서 지내다가 병을 키워 위중한 상황에서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을 만날 때면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길래 제가 뭐랬습니까. 수술 받으셔야 한다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말입니다. 


서울로 가시는 거야 얼마든지 가셔도 상관없지만, 어디에서든 수술은 꼭 받으세요. 제발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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