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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May 05. 2020

크론병을 앓고, 치료하고, 가르치다

2학년 소화기학 블록 강의를 동영상으로 녹화했다. 코로나로 원격 수업이 일상화된 요즈음 동영상 강의가 뭐 특별할까 싶지만, 공교롭게도, 강의 주제가 <염증성 장질환의 외과적 치료>이다. 세상에 이런 얄궂은 경우가 다 있다. 크론병을 앓는 내가, 크론병을 치료하고, 크론병에 대해 가르친다.


사실은 대장항문외과를 전공으로 선택하고 또 대학에 남기로 결심한 이후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던 운명이었다. 이제서야 현실이 되었을 뿐이다. 내 병 내가 고친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건 절대 아니었고 그저 좋아서 선택한 건데 그게 하필 대장항문외과였다. 그렇게 나는 크론병을 가장 잘 알고, 크론병 환자를 수술하지만, 정작 내 자신의 크론병은 고치지 못하는 외과 의사가 되어 있었다.




크론병을 앓는 것이 숨길 일은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동네방네 자랑할 일은 아니기에 누가 물어보기 전에는 먼저 얘기를 꺼내는 일이 드물다. 아마 무슨 병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이 다른 환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환자들에게는 더더욱 내가 크론병 환자입네 내가 먼저 떠들 이유가 없다.


딱 한 번, 예외가 있었다.


K는 열여덟 살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크론병을 진단받고 1년간 약을 바꿔가며 치료했지만 썩 반응이 좋지 않았고 소장 염증이 심해지며 미세 천공이 발생하여 어쩔 수 없이 수술을 해야 했다. 다행히 염증 범위가 넓지는 않아 최소한만 절제하고 장루를 만들지 않고 수술을 종료했다.

K는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회복도 빨랐다. 이삼일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병동을 활보하고 다녔고, 회진 때는 항상 스마트폰 게임에 집중하느라 얼굴도 잘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이 여느 고등학생과 다르지 않음을 말해주는 것 같아 오히려 좋아 보였다.

수술 일주일째 되던 날, 이제 퇴원해도 되겠다고 말하고 병실을 나서는데 문 밖까지 따라 나온 K의 어머니가 나를 조용히 불러 세웠다.

"저기, 교수님."

"네, 말씀하세요."

어머니는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우리 아이 이제 괜찮은 거죠? 앞으로 다른 친구들처럼 공부하고, 일하고, 그렇게 살 수 있는 거죠?"

어머니의 눈에는 불안이 한껏 서려 있었다. 병의 실체를 잘 모르는 데서 오는 필연적인 불안이었다. 아니, 병의 실체를 알고 모르고는 사실 별 상관이 없었다. 크론병의 실체를 누구보다 잘 알고 또 겪고 있는 내가 스스로에게 가지고 있는 불안은 그보다 더 크면 크지 결코 작지 않았다. 괜찮을 거라고, 앞으로는 아무 일 없을 거라고 어머니의 불안을 한방에 날려드리고 싶지만 거짓을 말할 수는 없었다.

"일단 수술에서 잘 회복은 되었으니, 앞으로 약 쓰면서 경과를 잘 지켜봐야죠. 요즘은 약이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까요.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뜬구름 잡는 내 말에, 어머니는 대답이 더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를 꺼냈다.

"사실 쟤가 원래 공부도 잘했거든요. 의대 가겠다고 그러더니,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 의욕도 잃고 매일 게임에만 빠져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네요."

......그러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크론병 환자의 치료도 어려운 일이고, 엇나가는 고2 학생을 바로잡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운 일인데, 크론병으로 수술받은 고2 학생을 다루는 것은 대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것은 내가 대답해 줄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질문이었다. 나는 슬픈 미소를 머금은 채 내일 퇴원하라는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퇴원 2주 후 K가 외래로 찾아왔다. 어쩐 일인지 혼자 왔다.

"혼자 왔어요?"

"네. 제가 뭐 어린애도 아니고. 어머니가 일 때문에 바쁘셔서요."

혼자 온 것을 보니 퇴원하고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나 보다. 다행이다.

"아픈 데는 없고?"

"수술 한 데도 이제 괜찮고 다 좋은데, 주사가 너무 아파요."

고등학교 2학년이 주사가 아프다고 불평하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잠시 K의 눈을 쳐다보다가 차트를 확인하고는 짚이는 데가 있어 다시 물었다.

"휴미라 말이니?"

"네. 정말 너무 아파서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아요."

그래, 나도 안다. 너무나 잘 안다. 아달리무맙 피하 주사. 벌써 5년 동안 2주에 한 번씩 얼굴에 오만상을 찌푸리며 내가 환자임을 스스로에게 인식시켜 주어야 했던 살을 찌르는 고통, 그걸 내 어찌 모르겠는가. K를 다시 바라보았다. 아직 앳된 얼굴에 알게 모르게 드리워진 그늘이 마음 아팠다.

'원래 공부를 잘했거든요. 의대 가는 것이 목표였는데......'

'아프고 나서는 의욕을 잃고 만날 게임만 해서......'

어디선가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듯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K를 향해 말을 꺼냈다.

"맞아, 휴미라 엄청 아파요."

"에이, 그걸 선생님이 어떻게 알아요. 그거 예상보다 한 백 배쯤 더 아파요."

"나도 휴미라 맞고 있으니까 알지."

K가 뚱한 얼굴로 물었다.

"선생님이 그걸 왜 맞아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선생님도 크론병 환자거든."

K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수술로 나를 살려준 건 고맙지만 그렇다고 거짓말로 나를 위로할 필요는 없는데 이게 뭐하는 짓이지?'라고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믿든 안 믿든 그건 네 자유다만, 사실이야. 선생님이 왜 이런 거짓말을 하겠니."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고 있는 K에게 말을 이어 나갔다.

"크론병은 물론 완치가 어려운 병이야. 하지만 충분히 관리 가능한 병이기도 하지. 사회생활도 문제없이 할 수 있고. 보시다시피."

내 부연설명에도 K는 끝까지 의심을 거두지 않은 채 외래 진료실을 나섰다. 아무도 없는 진료실에서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부디 K가 마음을 다잡고 번듯한 어른으로 성장하길 마음속 깊이 빌었다.




크론병을 가르치기 위해 교과서를 다시 샅샅이 읽고 PPT를 만들고 동영상 강의를 녹화하는 일은 묘하게 새삼스러웠다.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크론병에 대해서만큼은 잊어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만들었는데 얼마나 전달이 잘 될지는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고민한다.


내가 대장항문외과를 선택한 것은 과연 잘한 선택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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