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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Mar 02. 2020

지키지 못할 다짐

세상에 사연 없는 환자가 어디 있으랴. 젊어서부터 안 해본 일 없이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 하다가 애들 대학까지 다 보내고 이제 좀 살 만해지나 싶었더니 대장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이야기나, 나이 마흔다섯에 천생배필 한 번 찾아보겠다고 필리핀까지 날아가 구해 온 스무 살 아내가 결혼한 지 여섯 달 만에 난소암 진단을 받고 이 년간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이야기는 사연 축에도 끼지 못한다. 세상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아서, 어느 드라마 작가가 막장이라고 욕을 먹을지언정 시청자들 눈물 한 번 짜내 보겠다고 작심하고 쓴 스토리보다도, 세상에 그런 기막힌 일이 어디 있느냐고 말도 안 된다고 혀를 차던 그 이야기보다도 더한 일들이 병원이라는 세상에서는 진짜로 일어나고 있다. 내가 웬만한 사연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건, 워낙 다양한 환자들의 사연에 무디어질 대로 무디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나도 도저히 짠한 감정을 숨기기 어려울 때가 있다.
바로 의사 자신이 암환자가 되어 나타날 때다.

K가 응급실로 내원한 것은 두 달 전 어느 주말이었다. 간, 폐, 뇌전이까지 있는 하행결장암 환자가 종양에 의한 장폐색으로 응급실로 내원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종양이 크고 굴곡져 있어 스텐트 시술도 어렵다고 했다. 자주 있는 일이다. 응급 수술을 준비하라 이르고 병원으로 나섰다.
수술대에 누워 있는 환자의 몸은 가냘프기 그지없었다. 암의 진행으로 근육량이 줄어들어 바싹 말라버린 말기 암환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아직 오십대 초반에 불과한 환자였다. 불과 석 달 전에 진단받고 항암도 세 차례밖에 못했다는데, 대체 그 동안 뭐하느라 암이 이 지경으로 진행할 때까지 몰랐을까. 나이 마흔이 넘으면 한 번쯤은 종합검진을 받아볼 만도 한데.
“이 환자 뭐 하는 사람이래?”
환자의 배를 소독하고 있던 전공의에게 물었다.
“의사랍니다.”
뒷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엄습했다. 뭐라고? 의사라고?
“외과의사라고 하던데요, 환자 본인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멍하니 수술대에 누운 환자의 몸을 다시 바라보았다. 채 한 줌도 될 것 같지 않은, 배에 힘을 주고 세게 불면 훅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저 앙상한 몸뚱이의 주인이 정말 의사란 말인가. 그것도 다른 과도 아닌, 외과의사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확실해?”
“확실해요. 가능하면 Hartmann(하트만수술) 하지 말고 primary anastomosis(일차문합) 해 달라고 제가 뭐라고 설명하기도 전에 먼저 말하던데요?”
그랬다. K는 정말로 외과의사였다.

K의 뱃속은 예상대로였다. 진행할 대로 진행한 대장암이 후복막을 침범하여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고, 상부 결장은 터질 듯이 늘어나 있었다. 여느 환자였다면 절제 없이 우회 장루만 조성하고 끝내는 편이 나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걸 설마 떼어 낼 거냐는 전공의의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애써 외면하고 암덩어리를 주변 조직으로부터 분리해 내기 시작했다. 수술은 쉽지 않았다. 고환정맥을 침범하고 있어 동반절제해야 했고, 좌측 요관을 어렵게 분리해 냈다. 종양침윤으로 불분명해진 경계를 따라 박리를 하고, 이미 퍼질 대로 퍼져 버린 복강내 파종 사이로 조직을 절제해 내었다.
“교수님, 연결하실 건가요?”
제1조수로 들어온 치프 전공의가 걱정을 가득 담아 물었다. 장시간 이어진 폐색으로 늘어나고 부어 버린 대장을 연결하게 되면 그만큼 문합부 누출의 위험이 높아진다. 별 고민 없이 말단결장루를 조성하고 하트만수술로 끝내 버리면 될 수술을,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환자가 의사라는 이유로, 환자가 일차문합을 간절히 원한다는 이유때문에.
“어떻게 하는 게 좋겠니?”
“하트만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 생각도 같았다. 수술 방법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안전이었다. 문합부 누출이 발생할 가능성과, 누출이 생겼을 때 재수술로 인한 위험성을 고려한다면 하트만수술로 끝내는 것이 타당했다. 하지만 환자의 앙상한 몸뚱이가 머릿속에 계속 아른거렸다. 일차문합을 원한다는 환자의 목소리가, 아직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환자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의사인데. 외과의사인데.
“문합하자.”
“……괜찮으시겠어요?”
의사들 사이에 통용되는 은어 가운데 VIP 신드롬이라는 것이 있다.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는데, VIP 환자라고 더 잘 해 주려고 평소와 다르게 신경쓰다가 괜한 합병증을 만들게 됨을 일컫는 말이다. 평소대로 하면 되는데, 그냥 장루 만들고 끝내면 되는데, 아직 얼굴 한 번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환자의 직업이 외과의사라는 이유로 나는 일차문합을 결정했다. 물론 일차문합을 하게 된 의학적 근거를 대라면 한 손 손가락이 모자랄 만큼 꼽을 수 있었다. 문합부가 복강 내에 위치하여 비교적 누출 위험이 낮았고, 장기간 제대로 먹지 못하여 장 내용물이 많지 않았고, 장이 늘어난 정도에 비하여 장벽의 부종은 심하지 않았고, 환자가 젊고 아무런 기저질환이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얼마 남지 않았음이 분명한 환자의 여생에 장루가 있느냐 없느냐는 삶의 질이나 환자의 자존감 측면에서 차이가 컸다. 하지만 결정의 큰 이유 중 하나가 환자가 외과의사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신중에 신중을 기해 문합했다. 두어 달에 불과할 지도 모르는 환자의 여명을 생각했을 때 문합부 누출이 생기게 되면 환자는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가능성이 컸다. 그럴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퇴원시켜야 했다. 환자 스스로 남은 생을 정리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어야 했다. 문합을 하는 와중에도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인가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이미 자동문합기로 문합이 끝난 부위를 수기로 다시 꿰매고, 안심이 안 되어 한 번 더 꿰맸다. 그렇게 해서라도 지켜 주고 싶었다. 반평생 환자를 위해 살았을 한 의사의 생의 마지막을. 수십 년간 수술대에 누운 환자를 돌보느라 스스로는 미처 돌보지 못하고 이제는 시한부 인생이 되어 수술대에 누워 있는 한 인간의 소원을.

수술 다음 날, 병실에서 K를 만났다. 설명해 줄 말이 많았지만 굳이 설명이 필요 없었다.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아무 것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지, 어느 병원에서 일했는지, 세부 전공은 무엇인지 끝내 아무 것도 물어보지 못했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K의 눈을 보며, 나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침묵을 깬 건 환자 쪽이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수백 수천 번 들었던 감사하다는 말이 그렇게도 새삼스러울 수 없었다.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에 이미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말이 녹아 들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곧 괜찮아지실 겁니다. 경과를 지켜봅시다.”
간단한 한 마디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닷새 뒤, K가 퇴원하겠다고 했다. 다행히 우려했던 문합부 누출은 생기지 않았지만 K는 아직 미음 한 모금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뇌전이 병변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지 정신이 또렷하지 못하고 멍하니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시간이 점차 길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K는 퇴원을 강력히 원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집에 가고 싶습니다.”
‘집’이라는 단어 한 마디가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었다. K는 가장 편안한 곳에서 생을 마무리하고 싶음이 분명했다. 나는 그 간절한 눈을 마다할 수 있을 정도의 냉정함을 가지지는 못했다.
“정 그러시면 내일 퇴원하세요.”
그렇게 K는 병원을 떠났고, 다시는 K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외과의사는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환자 한 명 한 명의 안타까운 사연과 환자의 치료는 별개가 되어야 한다. 환자의 기구한 운명 하나하나에 휘둘리다가는 현명하고 냉정한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나는 익히 알고 있었다. 십수 년의 의사 생활을 거치며 나는 내가 충분히 냉철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모자란가보다.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아 회진을 가기조차 힘겨웠던 환자를 떠나 보냈다. 환자를 가슴에 묻으며 다짐했다. 앞으로는 환자와 나를 동일시하여 감정적으로 버거워하지 않으리라. 환자는 환자로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냉정해지리라. 하지만 나는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 다짐은 결코 지켜질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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