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ro Apr 03. 2020

외과 의사의 무게

또 한 명의 환자가 죽었다.

어제 응급실로 내원하여 새벽에 응급수술을 시행했고 중환자실에서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아 재수술을 결정한 환자였다. 수술실로 밀어넣은 후 더 늦기 전에 수술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채 안도하기도 전에 심정지가 일어났고 미처 손을 쓸 겨를도 없이 환자는 떠나버렸다.

그리고 이어진 두 시간의 CPR.

이미 의미없음을 알면서도 두 시간이나 이어지는 집착과 고집의 시간.


외과 의사로서 이따금씩 죽음에 맞닥뜨리게 되지만 여전히 '죽음'이란 단어는 익숙함보다는 어색함으로 다가온다. 한 명 한 명.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경험을 어쩔 수 없이 또 하게 되고 나는 또 아파하고 절망한다.

언젠가 그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약간의 안이함에 빠져 있었을 뿐인데 환자는 그 사이 별이 되어버렸다.' 생사를 가르는 건 언제나 그 '약간'이다. 조금만 더 빨리 발견했었더라도. 조금만 더 주의를 가지고 지켜봤었더라도. 약간만. 아주 조금만.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경험과 교훈으로 '약간'의 틈을 메울 수 있다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 따위는 나오지도 않았을 테지. 나는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철저하고 완벽한 사람은 못된다. 그래, 그걸 두 글자로 '무능'이라고 한다. 무능한 외과 의사. 결국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다는 무력감.


시간이 흐르고 틈이 조금씩 더 넓어질 때쯤 또 역사는 반복될 것이고 나는 또 아파할 것이다.

그러나, 함께 아파함으로써 상처를 보듬어주는 것으로 그 역할을 대신하기엔 외과 의사라는 직업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무거운 주말이다.


(2010년, 전공의 2년차 어느 날 씀)

이전 06화 사람을 살린다는 자존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