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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Dec 02. 2020

오프라인공포증 (Offlinephobia)

핸드폰을 집에다 두고 출근했다. 웬만하면 되돌아가서 가지고 올 텐데 병원에 거의 도착해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벌써 두 번째다. 대체 그런 건망증을 가지고 서울대 의대는 어떻게 들어갔냐고 물어보는 아내의 말에 그건 공부하는 거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했지만, 내 건망증을 똑 닮은 아들을 보면 얘는 커서 대체 뭐가 될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다른 직종도 비슷하겠지만 의사들은 핸드폰이 없으면 업무를 할 수가 없다. 하필이면 목요일은 하루 종일 두 방을 오가며 수술해야 하는 날인데 핸드폰을 두고 왔다. 연구실에 있으면 그나마 PC 카카오톡으로 업무 지시라도 내릴 텐데, 수술을 해야 하니 연구실에 있을 수도 병동에 상주하고 있을 수도 없어 전혀 콜을 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오늘 종일 수술인 것은 우리 팀 모두가 알고 있으니 급하면 수술방으로 들어와서 노티 하겠지 싶다가도 내가 뭔가 중요한 전화를 받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마음 한 구석 불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핸드폰이라는 문명의 이기는 의료 현장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당직 의사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않아도 전화 한 통이면 바로 보고가 가능하니 촌각을 다투는 응급상황에서 의사를 찾느라 허비하는 시간을 그만큼 단축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의사들은 핸드폰만 있으면 어디서든 콜을 받을 수 있으니 병원 당직실이나 집이 아닌 곳에 머무르는 시간을 더 길게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반대급부 역시 존재해서 핸드폰은 언제 어디서나 연락을 받아야만 하는 족쇄가 되어 버렸다. 핸드폰도 삐삐도 없었던 그때 그 시절에는 급한 보고사항이 있으면 집에도 전화하고 교수님께서 자주 가시는 식당이나 술집에도 전화해 보고 그랬다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전화를 거는 쪽에서나 급하지 정작 연락을 받지 못하고 있는 쪽은 급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을 터이니 교수님들 입장에서는 정말로 평화로운 세상이었을 게다. 당시에는 어디 한 일주일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병원과는 완전히 담을 쌓게 되었을 것이니 휴가를 가든 학회를 가든 핸드폰이라는 족쇄 덕택에 병원과의 연결고리를 절대로 완전히 끊어낼 수 없는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핸드폰이 없다는 불안감은 업무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오늘 하루 느꼈던 불안감은 단순히 업무 관련 노티를 받지 못하는 이유만이 아니라, 메일함을 확인하지 못하고, 카톡을 열어 보지 못하고, 평소 습관대로 뉴스와 SNS를 확인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했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어디서나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면서, 오프라인의 나뿐만이 아니라 온라인상의 내가 어느덧 내 자아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오늘 나는 함께이면서, 동시에, 혼자였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내가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또 한 명의 나는 주변과 단절된 채 혼자 고립되어 있었다. 종일 나를 감싸고 있던 불안감은 세상과의 연결이 끊어져 버렸다는 외로움과 상실감이었다. 단지,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왔다는 이유만으로.


Offlinephobia에 걸렸나 보다.




사실 offlinephobia는 offline에 -phobia(공포증)을 붙여서 내가 만들어낸 말이고, 구글 검색을 해 보면 FOBO (fear of being offline)이라는 말이 실제로 존재한다.


"FOBO is that separation anxiety you feel if you don’t have your phone on you"

"FOBO는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느끼는 분리불안을 말한다"

— 딱 내 얘기다.


"You fear that something could go wrong and you aren’t able to address it ASAP, which means you could get in trouble. Here’s the thing, though: For most of us, the world will not end if we do not respond to an email within five minutes." - clinical psychologist Kevin Gilliland, PsyD

"(핸드폰이 없을 때) 당신은 뭔가가 잘못되고 있고 그것에 대해 곧바로 대처하지 못할까 두려워한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메일에 5분 내로 답장을 하지 않는다고 세상이 끝장나지는 않는다."

(출처: https://www.wellandgood.com/what-is-fobo-work-anxiety/)




하루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회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세상은 끝장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자발적 노예가 되어 다시 스마트폰이라는 족쇄를 스스로에게 채우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디지털 시대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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