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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Aug 29. 2022

지금 당신은 행복한가요?

<어메이징 디스커버리 1: 덴마크>

막내와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 동네가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걸어서 3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 책을 좋아하는 막내 손을 잡고 도서관을 다녀오는 것이 소소한 행복이다.


어린이 도서관은 5층이고 성인 도서관은 6층인데 오늘따라 왠지 6층까지 올라갔다 오기가 싫었다. 어린이 도서관에도 어른이 읽을 만한 책이 있지 싶어서 이리저리 살피다가 괜찮아 보이는 그래픽 노블을 발견하고 앉아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만 푹 빠져서 읽고 말았다.


바로 <어메이징 디스커버리 1: 덴마크>이다.




처음 책 제목을 보았을 때는 여느 흔해 빠진 여행안내서인 줄 알고 지나치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옆에 꽂혀 있던 2편이 <어메이징 디스커버리 2: 부탄>이어서 발길이 저절로 멈추어졌다. 덴마크와 부탄이라. 아무 연관 관계도 없을 것 같은, 여행을 자주 가는 것도 아닌 두 나라를 시리즈로 묶은 의도가 무엇일까. 책 표지를 보니 '교양 만화로 배우는 글로벌 인생 학교'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문득 부탄이 전 세계에서 행복지수 1위를 차지했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아무 관계도 없을 것 같은 이 두 나라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국민들이 행복하다는 것.


그렇다. 이 책은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덴마크는 UN에서 발표하는 행복지수에서 전 세계 1위를 다투는 나라다. 한동안 덴마크가 1위였고 가장 최근 발표한 자료에서는 핀란드가 1위, 덴마크는 2위에 위치해 있다. 아이슬란드, 스웨덴, 노르웨이가 모두 10위권 이내에 위치해 있는데 우리가 북유럽 하면 흔히 떠올리는 '복지'라는 단어와 아무래도 연관이 큰 것 같다. 하지만 복지 제도가 잘 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주관적인 행복과 연결될까? 만일 덴마크의 복지제도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도입한다면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도 덴마크 사람들처럼 행복해질까? 아니, 북유럽의 복지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대체 덴마크와 우리나라는 무엇이 다른 것일까?


이 책은 덴마크 하면 떠오르는 '휘게'라는 개념에서 시작하여 덴마크의 복지제도를 설명하고 그것이 잡음 없이 운영될 수 있는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강조하는 키워드는 '신뢰'다. 덴마크의 복지제도가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근간에는 내가 낸 세금이, 무려 평균 48%에 이르는 세금이 국민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라는 사회와 국가에 대한 굳은 믿음이 바탕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세금을 많이 내지만 그것이 결국은 나를 위해 사용될 것이 확실하므로 전혀 아깝지 않다는 신뢰, 먹고사는 걱정이 없도록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이니 나는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것인가만 고민하면 된다는 믿음이 편안함과 행복감('휘게')을 중시하는 국민성과 합쳐져 행복지수 1위라는 결과로 나타났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일견 이해가 되면서도 대한민국에서 평생을 살아온 나로서는 저렇게 사는 것이 과연 행복할까 싶기도 하다. 경쟁, 경쟁, 또 경쟁에 내몰리며 살아온 내가 어릴 적부터 '너는 남들과 다를 바 없다'는 교육을 받고 자라온 덴마크인들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겠지.


만화라서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내용을 다루고 있어 읽고 난 후에도 한동안 여운이 남는다. 이 정도 퀄리티의 그래픽 노블이 단지 만화라는 이유로 어린이도서관에서 잠자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맹목적인 경쟁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누구나 의대를 원하지만, 의대 내에서는 아무도 소아과, 외과, 산부인과, 흉부외과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는 없다. 우리나라 의료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없는 방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최근 뇌출혈로 안타깝게 사망한 아산병원 간호사 사건은 대한민국 의료의 어두운 그늘의 아주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 그늘을 매일 마주하지만 탈출구는 요원하기만 하다.


어느덧 90년대생이 전문의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80년대생과 90년대생이 칼같이 구분되지는 않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사명감으로 필수과를 선택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는 바이탈을 사랑하는 몇몇 낭만주의자들을 갈아 넣어 겨우 유지되고 있다. 코로나 유행이 시작되었던 지난 2020년, 대장항문외과 응급 수술을 같이 담당하던 교수님이 연수를 떠나시면서 일 년 365일 당직을 섰던 적이 있다. 사람 할 짓이 못 된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모든 교수님들이 나만 보면 안타까워했는데 다른 방법이 없었다. 사람을 뽑으려고 해도 당장 응급 수술이 가능한 전문의를 지방 대학병원에서 급하게 새로 채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정말 악으로 깡으로 버텼다. 그나마 우리 과는 사정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소아과는 이대목동사건 이후 지원자가 급감하여 과의 존속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정도가 되었다. 밤에 애들이 아파도 소아를 보는 응급실이 없어 떠돌고 있는 형편인데 아픈 아이를 두고 헤매는 부모들과 일선의 의료진들만 그 심각성을 알지 정책 입안자들은 아직도 느긋한가 보다.


맹목적인 경쟁은 다양성을 해치게 되어 오히려 효율이 떨어지고 잃는 게 많아진다는 저자의 말이 사무치게 와닿는다.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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