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보았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A.I.>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인간의 감정을 모방하여 만든 사이보그가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 꽤나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이십 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생각이 나는 이유는 할리 조엘 오스먼트의 미친 연기력 때문이 더 큰 것 같다. 대체 이 아이는 무엇이길래 <식스 센스>가 히트를 친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이런 어마어마한 연기를 보여주는 것인지 막 감탄하면서 영화를 보았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 아이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대배우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A.I.>에서 주인공 할리 조엘 오스먼트는 인간의 감정을 가진 사이보그다.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가진 부모의 집에 입양되어 진짜 아들 못지않은 사랑을 받고 지내던 주인공은 '진짜' 아들이 퇴원하자 부모로부터 버려지고 만다. 주인공은 파란 요정에게 소원을 빌면 인간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길을 떠나는데, 과연 이 사이보그의 소원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A.I.>는 잘 만든 가족영화이지만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기도 하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 <작별인사>를 읽으며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영화 <A.I.>가 다시 떠올랐다. <작별인사>와 <A.I.>는 비슷한 설정을 통해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왜 의사들은 앞으로 남은 인생이 행복할 것 같은 환자들만 살리지 않고 전부 다 살리려고 애쓰죠?"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성이니까요. 그들은 오랜 세월 사람은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윤리를 확립해왔고, 그래서 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데도 살려두려고 합니다. 환자의 생각은 무시한 채 말입니다. 생명은 그 어떤 경우에도 소중하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그걸 금과옥조처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온 것은 또 아닙니다. 인류가 벌인 그 수많은 전쟁을 생각해 보십시오."
- <작별인사> 중에서
과연 생명은 그 어떤 경우에도 소중할까?
당신이외과 의사이고 지금 당신 앞에 생사를 넘나들고 있는 여든 살의 할아버지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폐암 말기로 이미 암세포가 폐는 물론 뼈와 뇌까지 전이가 되어 진통제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환자인데, 복강 내 전이된 병변으로 인해 장천공이 발생하여 범발성 복막염으로 응급실로 내원했다.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패혈증이 진행하여 환자는 사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수술을 하더라도 환자가 살아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게다가 수술 후 다행히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환자는 통증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폐암으로 두세 달 안에 생을 마감할 것이다. 암성 통증과 씨름하던 할아버지를 보다 못한 보호자들은 이제 그만 할아버지를 놓아주고 싶어 한다. 그런데 정작 할아버지는 비록 통증에 시달릴지언정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려는 의지가 확고하다. 환자 본인은 어서 빨리 수술해 달라고 당신을 재촉하는데 보호자들은 당신에게 자꾸 눈치를 준다.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고통으로 점철될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위해 할아버지를 살리겠다고 선뜻 결정할 수 있을까?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환자 본인의 의지에 따라, 보호자들의 눈빛을 외면할 수 있을까?
사실 답은 정해져 있다. 당신에게는 수술을 받겠다는 환자를 막을 수 있는 권리가 없다. 수술은 진행될 것이고 당신은 환자의 고통을 연장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 사회의 윤리인 것은 확실하다.
그것이 과연 옳은지는 별개로 하더라도.
<작별인사>는 소설이면서 소설이 아니다. 인간은 왜 인간인지, 삶이 가치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지, 작가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소설이면서, 동시에 철학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