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에세이는 잘 읽지 않는 편이다. 도서관에 가면 빌리는 책은 대부분 교양서 아니면 소설책이고 에세이는 가뭄에 콩 나듯 읽는다. 지난 토요일에 도서관에 가서 하필 이 책을 집어든 것은 수영 강습이 유난히 힘들어 진이 빠진 상태에서 과학 교양서와 소설책을 하나씩 골랐더니 책 표지만 봐도 더 지치는 느낌이 들어서 오랜만에 가벼운 에세이를 하나 읽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에세이 코너를 이리저리 훑던 중에 노란 바탕이 유난히 눈에 띄어 고른 책이 <파리로 간 물리학자>다. (도서관 책은 커버를 다 벗겨 놓기 때문에 표지가 초록색이 아니라 노란색이었다.) 제목이 <파리로 간 물리학자>인 줄 알았는데 앞에 (우주 말고)가 써 있다는 것을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저자는 물리학자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다양한 분야의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 작가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도 전반적인 글의 분위기와 찰떡으로 어울리면서 묘하게 매력적이다. 게다가, 파리에서 처음 살게 된 계기가 '파리에서 한 번 살아볼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니, 놀랍기 짝이 없다.
"가끔 젊은 친구들이 나에게 파리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 내 대답은 간단하다. "파리에 살면 되잖아!" 쉬운 이야기 같지만 결단을 내리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인생을 다 가질 수 없듯이 가볍지 못하면 파리에 머물 수 없다. 인생을 가볍게 만들려면 뭔가를 버려야 한다. 이것이 어렵다. 그래서 꿈만 꾸고 관성의 힘으로 자신의 공간을 떠나지 못한다."
- <우주 말고 파리로 간 물리학자> 중에서
관성의 힘으로 살고 있는 입장에서 작가의 저 한 마디가 뼈를 때린다.
나는 버리지 못하는 것들을 잔뜩 이고 인생을 살고 있고, 그래서 내 공간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작가의 이런 자유로움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갖추지 못한 덕목 중의 하나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현재의 내 공간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나는 지금 내가 있는 이 공간에서 가장 편안하다. 작가의 자유로움을 부러워하는 것과 내가 그것을 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책을 다 읽고 나서 검색을 해 봤더니, 작가가 2NE1 씨엘의 아버지란다. 책에 등장하는 첫째 딸 채린이가 씨엘이었다. 채린이는 CL, 둘째 딸 하린이는 HL. 얼마 전 작가가 <유퀴즈>에 출연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씨엘이 학교를 자퇴한다고 했을 때 믿고 허락해 주었던 아버지, 그림책 그리는 물리학자가 바로 이 책의 저자였다. 곧바로 수긍이 갔다. 이 에세이를 읽고 작가에 대해 받은 느낌 그대로라면, 딸이 고등학교를 자퇴할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래 너 하고 싶은대로 해'라고 하고도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ygWIi9ZInU
세상을 보다 열린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아이에게도 내 기준의 닫힌 세상을 강요하지는 않아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