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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Jan 13. 2019

13. 나만의 작은, 이 큰숲

파랑새만큼 가까운, 리틀포레스트

라디오DJ는 7년전 하늘나라로 보낸 딸의 생일을 추억하는 엄마의 라디오 사연을 읽고 있었다.사연의 주인공은 남편에게 늘 "오늘도 행복하자"는 인사를 건넨다고 한다.

매일 행복한 것이 가능하기라도 하단 말인가. 아무리 행복의 기대치를 낮춘다해도.한 때 그런 말들이 오글거린다고 생각했다. 책임없는, 흩어질 말들.

그러나 '행복' 때로 이 거창한 단어는 지나치게 진지할 필요없는 삶이기에 너무도 천진한 기도가 된다. 오스카와일드가 그랬다던가,"인생은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논할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다"고 말한 그 의미를,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다. 어느 새 잎이 다떨어진 갈색의 집앞 숲을 바라보며. 어떤 삶은 그런 헛된 꿈을 꾸는 것이 헛된 것만은 아니라는것을 깨닫는,겸손한 아침.

김소연의 '수작사계'를 읽는다. 굳이 말하자면, 한국, 충청도 시골판 리틀포레스트같다고 할까. 

코앞 정거장이지만 마을버스가 한대뿐이고,그게 20분에 한대씩 온다고 늘 불평하는 나는 어떻게 비슷한 책상물림(작가 자신의 표현)인 내 또래가 걸어서 20분거리에 버스 정거장이 있고 그 버스를 타고 20분을 더가야 읍내가 나오는 시골에서 목수와 아이키우며 겨울엔 심지어 새끼를 꼬며- 살 수 있는지 신통스럽기만 하다. 이런 얘기를 하면 남편은 또 자기가 군대에서 목공을 좀 해봤다며 (군대얘기 축구)얘기를 하겠지.

아마도 시골살이 경험이 전무해서, 오히려 가능했던 걸까. 처음엔 읍에 살다가 새소리가 들리지 않아 리 단위로 이사를 했다는데, 작은 산이 앞에 있는 우리 집은 사실 새소리를 조금은 들을 수 있다. 여름에는 뻐꾸기소리가, 아침에는 호랑지빠귀소리가.

아마 그나마 이 집을 선택한 것도 우리 자신이니, 우린 이렇게 늘 적당히 타협을 하며 약게 사는데 이 작가는 온전히 하나의 패에 다 건다.(전문용어로 모 아니면 도.) 주변의 시선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오롯이 존재에만 집중하며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작가 말마따나 누가 알아주건 몰라주건. 아니,정말 현대판 월든은  지속가능하긴 할까. 우리 미래의 여류생태학자(?) 둘째는 이미 예전의 모란씨앗은 어디 있는지도 잊은 채 이번엔 주목의 씨앗을 열심히 받아오고 있는데. 빈말인지 진담인지 완전히 이해할 날은 아마 내가 양자역학을 이해할 그 때일 남편은(충청도 사람이다) 배실배실 웃으며 그런다,"말만 해,원하면 언제든지 갈 수 있어" (진짜 갈 수도 있어서 무서운 1인.)  유년시절 나보다 더 산골에서 살아 유치원도 안다녔다고 늘 강조하는, 누구보다 도회적으로 생긴 남편은 사실 할 줄 아는게 많다(말마따나 목공, 게다리에서 살 바르기, 불피우기, 도마뱀 손으로 잡기). 옛날옛날에 본 사주에선, 남편이 굶기진 않는다던데.

그들의 집을 넘보면서 때론 혀를 내두르고 고개를 젓고 때론 그 작은 마당을, 빵굽는 풍경을 동경도 해보다가,문득 깨닫는다. 아늑한 곳은 여기, 바로 여기라고.내가 타협한 이 곳. 이 집이 너무 작든 너무 크든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곳이 다른 어느 곳도 시골도 아닌 여기라고. 

이 모든 것이 여기서 일어난다. 겨울산이 사실은 이토록 다정하다는 것을 알게 해 준 베란다창 너머 숲도, 한번쯤 의무완수하고나면 세상 뿌듯한 주말의 온 가족 부루마블도,(-_-;;) 나는 좀 파스텔톤으로 꾸미고 싶은데 알록달록이 좋다며 아이가 자꾸 장식을 바꿔다는 트리도, 남편이 출장길에 사온 초콜렛도. 다 여기에 있다. 

우리도 숲에서 살까ㅡ란 말은 매일 행복하자는 말만큼이나 천진한 구호인 것일지.

그 숲은 타히티 섬 만큼이나 아련한 로망으로 남겨두고, 이제 나만의 숲속에서, 나만의 리틀포레스트를 찍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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