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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Jan 13. 2019

12. 귤즙 글씨처럼

내 아이의 사춘기를 받아들이는 방법

아이들이 학교 학예회를 한다고 한참 연습하던 나날들이 지났다. 큰 애가 그 말만한 몸으로 방탄소년단의 '고민보다 go' 커버댄스를 한다고 연습하는 모습이 어찌나 생경하든지.완전 진지. 우리 부부는 동네 구경이라도 난 듯 구경했다. 게다가 얼굴하얀 애 특유의,혹은 첫째 특유의? 무기력함만 보다가(시키는 것만 함) 난데없이 열심인 모습에  내심 부부둥절. 게다가 춤을 잘춘다고 선생님께 칭찬까지 받았다한다. 그래서 덩달아 차에서의 BGM은 지겹도록 BTS였다.

나름 첫째의 초등학교 마지막 학예회라는 것에 의미를 두고,여담이지만 마나 많은 마지막에 의미를 두어야할지,남편까지 휴가를 내고 보고 왔는데, 작년 학예회에 가서 6학년 남의 집 애들 공연보다가 "아이고, 크느라 고생한다.." 하며 눈물 철철했던 전적이 있는지라 각오 아닌 각오를 한 덕분인지, 눈물은 많이 안났지만, 대신 2학년 꼬마들이 '엄마 아빠 사랑해요'플랭카드를 들었을때 눈물을 주룩했다. 주책이다.

나는 사실 아이의 4학년때부터 사춘기 신드롬에 사로잡혀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왜 무엇이든 기대하는 것에만 익숙해져있어서, 걱정도 불안도 당겨서 기대하는지,계절도 늘 조바심으로 앞당기는지. 사춘기도, 중2병도, 미리미리 불안해하고 걱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걱정을 습관처럼, 나도 그랬다. 이제 난 더 이상 책으로,영화로 미리 불안을 예습하지 않기로 했다.사랑을 책으로 완전히 배울 수 없는 것과 같으니까. 내 아이는 늘, 남은 생보다는 가장 어린 아이니까.

둘째를 보면서 뒤늦게,그 아직 통통한 팔과 볼과 발바닥을 만지면서, 더 이상 크지 말고 알지 말아라..하고는 있지만, 사실 그건 큰 일이다.안크면 큰 일.이미 이 행성은 안크면 큰  일인 법칙이 지배하는 것이다.

'시크하다'라는 책에서는, 프랑스에서는 어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데(죽음도) 한국의 청소년들은 유독 어른이 되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한다고 한다는데. 왜 그렇게 된 걸까.

중학교 원서 안내문이 나왔었다. 두둥. 그렇다, 12년전에 태어난 나의 첫째 아이가 이제 중학교에 들어가는 것이다.

첫째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킬때 나는 워킹맘이어서 상대적으로 감정의 소모가 덜했다. 아침 저녁 무사히 챙겨 회사다니기 바빴으니까. 그저 어린이집 졸업했으니까, 초등학교 입학하고, 그 다음에 아마 초등학교 졸업하면 중학교에 입학하겠지..이런 식의 굵고 짧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언제나 나에게 처음인 큰아이의 초등학교 시절 6년은, 안개속에 코끼리를 만지는 듯한 모호함이 반은 명확해지는 시기였달까. 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그제야 반 정도 알게 되었달까. 이 아이는 하얀 얼굴만큼 섬세하지도, 꼼꼼하지도 않고 더 이상 마르지도 않다ㅎㅎ 졸업을 앞두고, 아직 자신의 걸어온 뒤를 명확히 볼 수 없는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허무하지만, 아마 부모만큼의 생각은 없을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나의 유년은. 시간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었다.아이의 시간도 그렇겠지.넘칠듯한 그 시간들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건 아이 몫이다. 

나보다도 키큰 첫째는 아직도 초콜렛으로 꼬시면 넘어간다. 나는 특별히 사춘기라는게 있는게 아니라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로 한다.아직 시작도 안했을까? 아니, 어느 날 갑자기 덮치는 사춘기라는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춘기는 재난이 아니다. 갱년기가 그렇듯, 계절을 앞서지 않기로 했듯이 그 갱년기도,사춘기도,앞서지 않기로 한다.

그저 아이방 책장 구석구석을 늘 닦아주고 침대를 정리해주는 것으로 내 할일을 다하자,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운명적으로, 내 중학시절의 기억들이 난로에 쬔 귤즙 글씨처럼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대체로 첫째아이의 나이에 맞춰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다. 이제는 조금씩, 잊혀져있던 내 사춘기에 먼지를 털고 볼 용기가 생겼다. 이렇게 우리는 내 인생을 다시 어여삐 여기고 받아들이게 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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