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망버드 Oct 30. 2022

사랑이라는 실험

예술인의 피라고는 몇방울밖에 없는 것 같은 이 집안에, 초등학교 공개수업에서 마지막까지 손들고 발표하지 않던 아이가, 개미 한마리도 못 죽일 것 같은 시인의 얼굴을 한 이 아이가, 노래를 한다고? 내 이성으로는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고, 나의 선택지에 전혀 들어가있지 않은 일이었다.

요즘 말로 어쩌면 컨트롤 프릭, 내 마음대로 다른 사람이 움직여주지 않으면 화가 나는 나에게 이런 상황은 패닉이었다. 갑자기 멘토가 필요했다. 세상에는 셀 수 없는 사랑이야기가 있듯이 사춘기 이야기도 수억, 입시 이야기도 수억이었다. 나의 멘토는 어디에도 없는 듯 보였다. 이대로 대학 입시로 향하는 기차는 이제 빨리 속도를 더 내야만 했다.


나는 기차에서 뛰어내렸다. 철로가 갈라지고 있었다. 기차에서 내린 이상 다른 길을 가야했다. 앞으로 우린 마치 산티아고를 걷듯 걸을 것이다. 아이와 나는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걷는다'는 점에서는 같다. 앞으로 둘째아이에게서도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될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앞도 옆도 뒤도 보지 않고 질주하는 길들이 예전부터 싫었다. 공부부터, 공부만 해야된다는 것이 싫었다. 젠장, 아이는 내 아이가 맞았다. 알을 깨고 나와야하는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그리고 나는 사서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이 아이들은 내가 관심조차 없던 철학책 한장을 밤새 넘기게 만들고, 결국엔 사서로도 만드는구나. 나를 철학자로도, 사서로도 만드는, 전혀 새로운 길로 인도하는 하느님 아니 아이들이다.

그리고 거대한 실험이 시작되었다. 바로 사랑이라는 거대한 실험. 아이가 어떠한 말을 해도, 어떠한 행동을 해도, 무조건 아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실험이다. 어차피 인생은 실험아닌가. 




작가의 이전글 삐, 구춘기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