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삐, 우리집은 남편이 퇴근하는 현관문 비밀번호 소리에 제일 먼저 아빠 또는 남편한테 안겨 인사를 하기 위해 우다다다, 달려가는 것이 몇년째 전통처럼 되었다. 고1인 첫째에게도 예외는 없다.
이 내 좋은 구남친이자 현남편은 집에 오면, 이렇게 물어봐준다. "별일 없었어? 너만의 시간은 보냈어? 네 인생은 어디 있어?"
연애 8년 결혼 18년 접어든 시점에도 종종 나는 남편같은 사람을 어떻게 발견해서 이렇게 같이 살고 있는지 뿌듯할 때가 있는데, 이런 때가 바로 그런 때이다. 바로, '나'에 대해 물어봐주는 것이다. '나'라는 직업에 대한 질문인 것이다. 오늘, 너에 얼마나 충실했냐는 질문을 해주는 사람과 나는 살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자랑거리인 것 같다.
우리 모두에게는 여러 역할, 은유적으로 말해서 '직업' 이 있는데, 나에게는 엄마, 딸, 아내 등이 그것이고 또 누구나 가지고 있는 바로 그 직업,'나'가 있다. 사람들은 그 '나'라는 직업을 죽을 때까지 바꿀 수 없는, 유일의 직업이라는 것을 쉽게 절감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내가 거의 최초로 '나'라는 직업의 존재에 대해 자각하게 된 것은,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 아직은 너무도 젊은 시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였다. 나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 자체를 실제로 겪은 것이 처음이었다.
죽음에는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때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남겨진 사람의 상실된 일상들이 상상이상의 고통이라는 것등을 차치하고도 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 일은 아버님이 '혼자' 살게 되신 것이었다. 이미 자식들은 독립을 하여 어머님과 두분만이 살고 계셨기에 수십년 세월을 분신처럼 함께 해온 어떤 이와 생살떼어지듯 떼어져 오롯이 '혼자'로 남아, 거의 껍데기만 남는 일.그때 난 오. 나같으면 하루도 이틀도 못살거야, 숨도 못쉴거야, 나라는 존재는 있지만 이미 없을거야,그건 사는게 아닐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잔인하면서도 다행인 일은, 그래도 남은 사람의 삶이 없어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속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님은 계속 살아가셨다. 당연한 일이다. 나의 엄마가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라 어떤 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처음 하기 쉽지 않듯이, 그 사실이 너무도 낯설지만, 생각해보면 아버님은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아버님 자체였고 쭉 아버님이라는 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진실이다. 아버님이자 남편이자 아들이기 이전에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이.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다해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언제나 '나'의 직업으로 나는 존재했다.어떠한 관계들은 소멸되기도 하지만 나와의 관계는 영원히 그 자리에 있다, 다른 관계에 의해 상대적으로 위치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서. 내가 어떤 일들을 겪었고 어떻게 느껴왔고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는 혼자 있을 때 뭘하는 걸 좋아했는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는 늘 아이들의 엄마로서, 엄마의 딸로서, 남편의 아내로서,친구로서의 역할의 성패에 대해서만 생각할 뿐(혹은 아빠로서, 아들로서, 친구로서) '나' 라는 직업에 대해서 생각하기는 곧잘 미루거나 잊어버려왔지만 언제라도 잠깐, 우리는 '나'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결코 나에 대해서는 실직하지 않으니까.
나라는 직업에 충실한다는 것은 단순히 취향,호불호 리스트를 늘리는 것, 내가 딸기맛보다는 초코맛 우유를 좋아하고 콩을 싫어하며 오렌지색을 좋아한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졌냐는 것이다. 남에게 알릴 취향을 확고히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소통하는 것, 나의 감정과 행동에 관해 내가 정말 좋아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뭘 할때 제일 행복한지,나는 무엇에 몰입을 했는지, 그것으로부터 내가 배운 것은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