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혼돈을 사랑하라
-올해 최고의 영화, 에브리씽에브리웨어올앳원스를 보았다.
인생을 되돌리고 싶은 순간에는 누구도 예외는 없다. 공평하게도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인생을 살 만큼 살아 꽤 많이 걸어온 사람들은. '다시 처음으로!'라는 주문은 그 얼마나 간절한 것인가, 역사에 if란 없다고 하지만, 그 때 그랬더라면, 그 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 때 그 집을 샀더라면..팔았더라면..
비페라 에바네스카-마법으로 이루어진 것을 없애는 주문을 백번이라도 외치고 싶은 심정이 있었으니까. 사방이 벽으로 막혀있는듯한 그 상황이 마법에 걸려버렸다고 생각하고 싶었으니까.
'미국에 이민와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에블린은 세무당국의 조사에 시달..'이라는 기본소개를 다 읽지도 않은 채 나는 무조건 예매를 했다.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이민자라니, 그냥 이건 나에게 무조건 예매버튼이다. 나는 결사조직에라도 참석하는 심정으로 평일 오후 혼자 영화관에 갔었다.
영화 첫머리부터, 되돌리고 싶죠?란 한 마디에 나는 이미 모든 걸 이입해서 울었다.모든 것이 망한 것같고, 내가 망친 것 같고, 걷잡을 수 없다는 중년의 함정에 빠져있는 중이었으므로. 조부 투파키가 등장할 때는 막 웃었다. 왜 그녀의 딸이 최대의 악, 최대의 빌런, 가장 돌이키고 싶은 원인으로 묘사되는지 아마 사랑을 처절히 배반당한, 사춘기 자녀를 키워본 사람은 백번 이해할 것이므로.
자본주의의 심장 뉴욕의 상징 뉴욕베이글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한 어떤 것으로 나온다.ㅋㅋ 실제로 에브리씽 베이글이라는 메뉴가 있다지. 가운데가 공'(空')이어서 공이 전체고 전체가 공인 이 세계의 허무를 일찌기 도넛에 비유했던 하루키는 또 어떻고. 영리한 감독은 지금까지의 멀티버스의 지겨움들을 하나하나 깨간다. 쿵후를 하는 멀티버스 주인공을 본 적이 있는가? 게다가 중년 여성이다. 단언컨데 지난 몇년간 본 영화중 가장 익살스럽다.
영화는 사랑하는 남자 하나만 보고 미국에 와서 세탁소를 하며 젊음, 사랑이 스러져가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어야하는 에블린이 갈 수 있었던 무한한 가능성의 길들과 파워를 동시 존재하는 멀티버스로 보여준다. 그 파워를 겪게 되면서 결국 문제의 해결은 힘이 있고 없고에서가 아니라 자신이 멸시했던 다정함, 즉 그저 받아들임이 결국은 '악'(이라고 치부했던 딸의 변화)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행복은 쫓을수록 멀어지듯이, 좋은 엄마를 쫓을수록 멀어지는 역설인 것이다. '좋은' 무언가를.
우리집 마당의 파랑새를 발견하기 위해 돌아 돌아오는 진정한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보여주면서 영화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인생 1회차는 언제나 혼돈이다. 네 인생이 혼돈처럼 보여도, 혼돈마저 사랑하라. 네 모든 선택의 순간들이 모인 지금 현재를 사랑하라. 사랑한다면, 현재에 더 다정해라.
우리는 동시세계를 살지 않더라도, 입자의 브라운 운동처럼 비틀거리며 충분히 불확실하게 시간의 선위를 걸어간다. 사실 살 수록, 더 어렵게 느껴진다. 어떤 어른이라해도, 삶에 익숙해지거나 능란해지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익숙하게 느끼는 것이 더 많을 뿐. 하루는 언제나 새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어떤 판타지 여행도 결국은 우리집 침대위에서 끝난다. 이 엄청난 혼돈의 영화가 끝난 후에는 비로소 내 혼돈을 인정하게 된다. 내 혼돈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아침으로 베이글을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