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망버드 Feb 11. 2020

아무튼 하루키? 아무튼 걷기

'아무튼 하루키'가 드디어(?) 아니면 이제서야(?) 나왔네.(핫하다는 아무튼 시리즈 한번도 안읽었지만.) 

소싯적 한번쯤 하루키에 빠지지 않았던 사람은 드물겠지만 하루키때문에 일어번역가가 되었다면 또 얘기가 다를 것같아서 장바구니에 넣었다.

몇십년이 지나도 아직도 덕후인 사람도 있겠지만,나는 몇년전부터 하루키 신간이라면 읽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사지만은 않게 되었다.

봄날의 곰은 여전히 내 옆에서 진짜 곰같은 배를 하고 코를 골며 자고 있고 한밤중의 기차 기적소리는 기다릴 필요도 없이 내내 울리고 내겐 수학을 가르쳐야하는 중학생 아이가 있다.나는 하루키 시대를 통과한 리얼 어른이 된 것이다.하루키 소용돌이를 빠져나온.

운명처럼 폭 빠졌다가 필연처럼 훅 나왔다.아이의 조개줍기처럼, 홀연히 빠졌다가 돌아나왔다.


오늘은 대구에 내려 와서 처음 맞는,영하 10도의 추위였다.며칠이나 연체된 책을 반납하러 꽁꽁 싸매고 나섰다. 버스타고 후딱  갔다와야지,하고 막상 나와보니 공기는 차지만 햇살은 따뜻해서, 그대로 쭉 걷기로 했다. 도서관을 향해 걷다보니 나온 김에 살 것들이 생각나서 굳이 들러서 사가기로. 아뿔싸.어깨에 멘 베낭에도 책들이 들어있어 무거운데, 또 한쪽에 멘 장바구니에까지 산 짐이 가득해 어깨가 아팠다. 도서관까지 버스타기도 애매한 거리여서 잠깐 고민하다가 걷기로 했는데, 이쪽 저쪽 짐을 옮겨가며 들어도 어깨가 빠질 것 같았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지.점심은 뭘먹지.얼마나 걸어야하지. 어깨아픔을 잊어보려고 애써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힘겨워,아우 모르겠다 그냥 아무 생각도 말자하고 한발한발 내딛는데,갑자기 오히려 힘이 덜 드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구름위를 걷는 듯, 짧은 순간에 그걸 느꼈다. 거창하게 무아지경이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러너스하이가 아니라 워커스하이랄까. 20대 중반, 회사 워크숍으로 개인적으로는 절대 가지 않았을 한겨울의 눈내린 설악산을 걸었을 때와 겹쳤다.너무 힘들때는 힘들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걷기만 하는 것.무겁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 앞만 보고 가는 것. 그게 바로 몸을 내맡기는 일인가보다. 산티아고를 일부러 걷지 않더라도, 드물지만 때때로 필요한 일인가보다. 언젠가는 이 기억이 꼭 필요한 때가 올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채는건가 보다.

작가의 이전글 개학과 미용실과 완벽한 아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