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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Feb 11. 2020

개학과 미용실과 완벽한 아침

나는 완벽한 아침을 보냈다. 두 아이들이 모두 학교를 가고, 아이들을 보내놓고 잠깐 눈을 붙였으며, (어제 미용실에 가서 피곤했던 탓일 것이다) 양상추,달걀후라이, 토마토, 햄을 넣은 내맘대로식 샌드위치를 나름 정성껏 만들어 커피와 마시고, 또 한 잔의 커피를 마시러 물을 올려놓으러 가는 그 순간. 햇빛은 마치 가을빛처럼 집앞 언덕을 비추고 있었다. 완벽하다.

두 손으로 영혼의 난로(커피)를 감싸쥐고 어젯밤 읽다 잠든 책 두어장을 넘기는 것은 캬.

어제 중학생마저 개학한 첫날 마치 광복의 심정으로 미용실부터 간 것은 어쩌면 판단미스일지도 모른다. 너무 의욕에 넘쳤고 성급했을지도 모른다. 미용실은 음악을 들으며 잡지를 넘겨보고 가끔 차도 마실수 있긴 하지만 사실 계속 목을 뻣뻣이 하고 앉아있어야하고, 누군가가 머리를 두번이나 감겨주긴 하지만 이상하게 피곤한 곳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 산(feat.몇주간 나를 스트레스받게 한) 그 큰 어항이 벌써 녹조라떼가 되가는 것을 보고, 또 둘째의 책상이 쓰레기산이 된 것을 보고,아이들 버릇을 좀 잡아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바로 그 날이었으니.

예상대로 어제 저녁에는 대규모 유혈사태 아니 고성사태가 산발적으로 벌어졌다. 왜 둘째에게 책상정리를 시키면 1시간도 2시간도 더 걸리는지 모르겠다.'벼르고 있었음'으로 인해 사태는 무력충돌에까지 이르렀..(엉덩이 찰싹.)

그 후에 둘째가 속담책을 읽다가 "엄마,'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라는데 엄마는 왜 나를 혼내기만 해요?" 아유 이 고슴도치 같은...모르긴 몰라도 엄마가 고슴도치보다는 널 더 사랑할거다.

밤에는 노동주 아니 진정주를 한 캔하고, 자책하고 또 위안하고 나서야 잠이 들었었다.

이 완벽한 아침이 보상이라도 되듯 첫번째 세탁기가 다 돌기 전까지만이라도, 청소를 미루고 한껏 빈둥대주었다. 꽃씨를 검색하고 파종시기를 알아본다거나, 여행지 맛집을 알아본다거나. 역사이래 뭔가를 알아보고 상상하는 만큼 돈안들고 힘안들고 재미있는 활동이 또 있을까.뭐니뭐니해도 할 일을 미루고 즐기는 달콤한 여유, 이게 학생일때부터 불변의 진리.(그러니 아이들 탓만을 할 수도 없다.) 진짜 별 쓸데없는 것을 하는 시간이야말로 일의,두뇌의,손의,발의 원동력인가 싶을 정도다. 그러나 정말로 해야 할 일이 없을 때는 오히려 느낄 수 없으니 주의.

중학생이 예상보다 빨리 집에 온 지금. 입춘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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