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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Jul 28. 2020

풀을 미워할 수는 없으니

(거듭, 글들이 왜 늘 귀농스멜인지)


아침에 걸으러 매일 가는 저수지 둘레길에 무성한 잡초들을 베러 구청에서 나온 분들이 조끼를 입고 나와있다. 여름연례행사다.작은 청소기만한 잡초깎는 기계들이 군데군데 놓여있다.

세상에는, 잡초를 깎는 직업도 있는 것이다.

확실히 여름엔 잡초와의 전쟁이다. 자연의 법칙에 몸을 내맡기고 그저 씨앗에서부터 열심히 자랐을 뿐인데 풀들은 사람의 필요에 따라서 갑자기 잘려나가야하는 운명을 맞는다. 느닷없이.

잡초는 그렇다치고 잡초깎는 일 또한 그렇다. 고상한 일은 아니지만,(풀들이 한껏 자라는) 이 더위에, 누군가 꼭 해야하는 일. 하루키가 글쓰기를 문화적 눈치우기에 불과하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이렇게 잡초 베는 일도 형태만 다를 뿐,우리는 매일매일 고상할 것도 없이 잡초를 베어가며 길을 만들어 걸어간다.

그런 일들에는 대개 이제는 젊은 날에서 한참 비껴난, 그러나 잡초처럼 베이지 않고 위대하게 살아남은 나이대의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그런 잡초와 잡초베는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날이다, 공공근로 트럭이 와있는 그런 날은.


나는 아직(?) 공공근로가 아닌 사적인 근로를 하는 사람. 사적 근로는 가성비나 효율은 제쳐두고서라도, 관련된 대상이 가까이 있고,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심신이 더 소모되는 경향이 있다. 까짓껏 풀따위에는 연민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과했는지 부족했는지 자책하지 않아도 되고, 풀은 미워해봤자 한 순간이니. 

모든 신성한 근로 중에서도 그 사적 근로의 숙명같은 희로애락 또는 무덤덤함마저도 웃자란 풀인양 헤치고 길을 찾아 걸어간다.

길 양쪽이 말끔하게 베어졌다.확실히 다리에 풀이 휘감지도 않고 뱀 걱정도 덜하게 되었다.세상에 꼭 필요한 일은 풀이 자라는 일이고, 꼭 필요한 직업중 하나는 풀베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아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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