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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Jul 28. 2020

방학, 나의 퇴사의 이유

그렇다, 잊을만 하면 내 오랜 회사 동료는 내가 10여년 다닌, 이른바 철밥통인 회사를 그만두면서 아이들에게 잃어버린 방학을 주고 싶어서, 라고 했다는 걸 상기시켜준다. 나는 살림이나 육아에는 별 관심도 재능도 없고 오직 밖에서 일하는 것만이 최선인 사람인 것처럼 살아왔지만, 결혼을 하고 워킹맘이 되면서부터는 혹시 전심을 다할 기회가 없었던 것일뿐인가,생각했다. 나는 사실 애저녁에 아이 셋은 낳고 싶다고 해서 주변이들을 경악시킨 적도 있다.그만큼 아이를 좋아했(다고 느꼈)다.

이렇게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전업한만큼 사명감,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나는, 무언가를 천천히 들여다보면서 키우는 것에는, 곰곰히 정성을 들여 돌보는 것에는 별로 소질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을 준 사람은 바로 다름 아닌 나의 딸. 그녀는 참외씨앗과 녹두씨앗과 강낭콩 씨앗에 매일 물을 뿌려 발아를 시키고 일일히 흙에 옮겨 심었다. 냉장고속에 오래 있던 녹두에서 뿌리가 나오고 싹이 나왔을 때 마치 수천년전 호박속에 갇힌 씨앗을 싹틔운 것 같이 신비로울 뿐이었다. 씨앗을 뿌려두고 방치되어 있던 나의 메리골드와 첫째의 무화과 묘목에도 매일 물을 주었다. 하루에 두 번 주는 날도 있었다. 

하도 달팽이 노래를 부르길래 어느 비온 다음날 아침 운동나가서는 집에 있는 그녀에게 굳이 전화를 걸어 저수지 주변에 달팽이가 많이 나와있다고 특별히 알려주었다. (그것은 실수.) 처음에 달이와 팽이라고 이름붙여 데려온 달팽이 둘 뿐만 아니라 달팽이 노다지-_-를 알려준 죄로 지금 우리집에는 달팽이 10여마리가 더 얹혀 살고 있다. 나의  샐러드 야채들을 나눠먹으며. 그녀는 매일 아침 달팽이 똥이 가득한 달팽이 집을 씻어주고 애호박과 양상추를 넣어주고 달팽이 먹방을 감상하며 물도 칙칙 뿌려준다. 심지어 달(팽)이가 알을 낳았다고 고생했다며,사놓고 몇년째 한번인가 썼을 내 절구를 이용해 계란껍질을 빻아 특별식으로 제공한다. (엄마도 너 낳을 때 고생했는데.. ) 

나는 노력해야 가능한 일을 그녀는 기꺼이 하고 있다. 재능과 노력의 간극이란 엄연하다. 그런 그녀와 비교하면 나의 육아란, 그 때 그 때 눈앞의 장애물을 치우고 넘어가며 허덕이는 일련의 과정일 뿐이었다.

나는 그저 늘, 여기와는 다른 어떤 것을 바란 것 뿐이었나보다. 지금 현재에 몰입하지 못하는.

이런 내가 여행을 가지 못하는 요즘같은 상황은 정말 벌 아닌 벌이다. 나는, 왜 작년에 떠나지 못했는지, 왜 미리 떠나지 못했는지. 또 한번 여기 없는 것들을 갈망하고,자책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유전자에 새겨져있는 것이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

그래도 돌아보면 난 늘 내가 가진 로망을 하나씩 실현하는 것으로 또는 실현되는 것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대학도, 취업도,어떤 여행도, 전업주부도, 다 내가 오래 바랬던 것들이라고 위안해보고, 지금은 더 어릴 때는, 가장 좋은 것을 나중으로 미뤄왔지만 이젠 지금이 그 나중임을, 그 나중이 왔음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깨달음도 때가 있는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좋겠지만,그때는 절대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결론내린다. 나는 유전자에는 없지만 나는 싫어도 좋아도 이렇게 멈추지 않고 가상한 노력을 하고 있으니, 그녀보다는 위대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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