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개를 끓이기 위해 김치통을 꺼내 열었다. 반포기도 남지 않은 김치를 돼지고기 넣고
보글보글 끓여 저녁상을 준비한다. 그러고는 통을 씻어 베란다 한쪽에 놓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부터 김장철이 되면 똑같은 고민을 했다. 김장을 해야 할지 아니면
홈쇼핑에서 사야 할지 말이다. 그러다 재작년에는 남편과 김장을 해보기로 했다.
절인 배추를 주문하고 고춧가루를 사고 오일장을 돌아다니며 채소를 구매했다.
양념을 만들기 전에 인터넷 검색창에 김장 속 맛있게 만드는 법을 찾아보았다.
살림 경력이 28년 차인데 설마 못할까. 일단 육수를 끓이고 찹쌀 풀도 만들었다.
채소를 다듬고 무채를 썰었다. 채 썬 무에 젓갈과 고춧가루 마늘 생강 찹쌀 풀까지
모든 재료를 넣고 버무렸다. 빨갛게 버무려진 속은 제법 그럴듯하다. 이제 절인 배추에
속을 채워 넣기만 하면 된다. 남편과 앉아 배춧잎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양념을 발랐다.
첫 김장치 고는 먹을 만하다. 비록 깊은 맛을 흉내 낼 수 없지만 지금까지 알뜰하게 잘
먹고 있었으니 성공한 거나 다름이 없다.
작년쯤이었다. 저녁 산책을 나가려 엘리베이터를 탔고 아랫집 00 엄마를 만났다.
김장했냐 묻길래 웃으며 맛있는 김치 파는 곳을 안다고 대답했다. 그러고 며칠 뒤
저녁밥을 준비하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문을 열어보니 00 엄마가 커다란 접시에
김치를 담아서 쓱 내민다. “저녁밥 해서 얼른 먹어봐요” 그렇게 말하고는 계단을 내려간다.
그날 저녁 다른 반찬은 필요 없었다. 방금 한 따뜻한 쌀밥에 김치를 얹어 한입 크게 먹었다.
매콤하고 짭조름한 맛에 쿰쿰한 멸치젓갈 냄새까지 싫지 않았다. 그게 시작이다.
00 엄마는 3일이 멀다 하고 김치를 준다. 어느 날은 친정에서 김장을 했다며 주더니
시댁 김치까지 맛 보인다. 며칠 뒤는 아는 언니네 김장이라며 나눠 주었다.
손맛 좋은 00 엄마 덕분에 그해 겨울은 넉넉하고 푸짐했다.
작년부터 김장을 하지 않는다. 김치를 판매하는 곳도 주변에 있고 홈쇼핑에서 구입을
할 수도 있으니 핑계고 이유가 되었다. 엄마의 손맛을 담지 않은 그저 엄마의 입맛만
닮은 나는 맛을 제대로 낼 수가 없다.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니 맛도 내 맛도 없는 맛’ 이란다.
남들이 하는 대로 똑같이 젓갈을 넣고 맛을 흉내 내보았지만 깊은 맛이 없다. 엄마의 김치는
몇 번의 맛이 바뀐다. 금방 버무리면 짠맛이 강하다. 하지만 항아리 속에서 숙성을 마치고
나면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맛이 시원하고 깊다. 그런 맛을 낼 수 없는 나는 이제 김치통을
깨끗하게 씻어 선반 위에 얹어놓고 손맛 좋기로 소문난 사장님들의 김치로 밥상을 차린다.
이런 나를 엄마가 보시면 무어라 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