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난다

by 연이

실없는 웃음이 난다.

전날 잠을 설쳐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아 이런저런

생각들로 뒤척이다 얼마 전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남편은 몇 년 전까지 아프단 소리 한번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아침마다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난다. 또 얼마 전부터는 내가 먹는 영양제도 한 알씩 뺏어

먹으며 같이 먹고 오래 살자고 한다.

20년 전쯤이었다. 출근한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허리가 아파서 병원 들렀다 바로 집으로 오겠다했다. 그때까지도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한참 뒤 현관에 들어선 남편은 허리에 복대를

두르고 동료의 도움을 받아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남편허리가 틀어진 것이다.

넘어진 것도 무거운 걸 든 것도 아닌데, 그저 의자에 앉았다 일어섰을

뿐인데 통증을 느꼈단다. 단순히 삐끗한 줄로만 알았는데 이내 묵직한 통증이

오더란다. 그러고는 위아래가 나누어진 사람처럼 삐딱한 모습으로 들어왔다.


남편은 2주를 누워서 지냈고 화장실조차 혼자서는 갈 수가 없어 도움을

받아야 했었다. 물론 밥도 식탁 의자에 앉기가 힘들다며 서서 먹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다친 허리는 지금도 조금만 자세가 좋지 않으면 금세 탈이 나곤 한다.

주말 저녁 외출하고 돌아와 보니 현관 앞에 택배 상자 하나 놓여있었다.

남편은 반가운 목소리로 “왔네”라며 커다란 상자를 들고 집으로 들어온다.

상자를 열어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꺼내보니 둥글고 긴 원형 모양이 꼭 죽부인처럼

생겼다. 이것이 어떻게 쓰는 물건인가 궁금해 물었더니 남편은 무작정 설명서를

내게 내밀었다.


이름은 ‘마사지 폼 롤러’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롤러인 것이다. 목과 허리가 좋지

않은 남편이 인터넷 쇼핑을 한 모양이다. 남편은 원형의 롤러를 바닥에 놓고는

어쩔 줄 몰라했다. 설명서를 읽었을 때는 “별거 없네” 했던 사람인데 난감해

하고 있는 중이다. 허리, 어깨, 목, 옆구리, 종아리, 밸런스까지 롤러를 이용해 할 수

있는 스트레칭 방법이 꽤 많았다. 하지만 남편이 할 수 있는 건 쉽고 간단한 목 스트레칭

정도다. 일단 롤러를 내려놓고 베개를 사용하는 것처럼 그 위에 누웠다. 그러고는 고개를

좌우로 움직여 보더니 자신감을 얻었는지 조금 더 욕심을 낸다.


이번에는 밸런스 트레이닝에 도전한다. 길고 둥근 롤러를 세로 방향으로 놓는다.

그다음은 그 위에 누워서 한 발을 들고 두 팔을 올려야 하는 난도가 꽤 높은 동작이다.

과연 롤러 위에 남편은 누워 있을 수 있을까?

당연히 시작과 동시에 굴러 떨어진다. 넘어지고 구르고 가 반복되며 소리가 요란하여

아랫집에서 올라올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만하라는 소리에도 포기하지 않는다.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남편의 모습은 외줄 타는 사람처럼 두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결국 참았던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기어이 한 번은 성공을 하겠다며 또

롤러 위에 누워 다리를 들어 올린다. 이내 고꾸라진다.

나는 또 웃음이 터졌다. 눈물이 날 정도로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남편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고 롤러를 저 멀리 밀어 놓으며 “언젠가 한 번은 될 날이 있겠지”하고 내일을 기약한다.

남편 덕분에 배가 아프도록 웃어보았다. 내가 언제 그렇게 웃어보았을까.

아마 고등학교 시절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은 그냥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웃음일이 많았고

웃음소리는 늘 운동장을 가득 채웠었다. 지금의 나는 웃을 일도 웃음소리도 작아지고 있다.

왜일까? 아마 나 스스로에게 웃을 일이 없다고 핑계를 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10대의 나처럼 그냥 크게 한번 웃으면 되는데 말이다.


남편은 비록 1초도 버티지 못한 스트레칭을 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에게

10분 이상의 함박웃음을 선물해 주었다.

기대된다. 남편이 내일은 어떤 엉뚱한 모습으로 나에게 웃음을 주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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