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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PJ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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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 Jun 12. 2023

PJ의 어린 시절

PJ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라고 하면 터덜터덜 걸어서 집까지 가던 그 길이 떠오른다. 학교에서 집에 가는 길엔 늘 오른쪽에 철도를 끼고 걸었다.

1호선 국철이 지나는 그 길에선 종종 기차도 지나가곤 했다. 작은 부품 공장들도 간간이 떠오르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혼자 걷던 날들이 생각난다.

학교를 나와서 하염없이 직진을 하다 보면 하천 위로 대교가 나왔다. 사람들도 건너고 차들도 지나는 대교인데, 한강대교와 비교하면 작은 다리에 불과했다.

차가 지나갈 수 있는 다리라서 대교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같다. 까만 아스팔트 위로 차들은 건너고 사람들은 인도로 건넜다.

신발주머니를 흔들면서 대교를 지나면 횡단보도가 나왔다. 유년의 기억 중에 꽤 충격적인 기억인데, 그 횡단보도에서 버스가 PJ 발 위로 지나갔다.

그런데 아직 어려서 그랬는지 아프지가 않았다. 버스가 발 위로 지나갔다면 꽤나 위험했을 텐데 어떻게 발 위로만 버스가 지나갔을까?

발을 차도 쪽으로 내밀고 신호를 기다렸었던 거 같다. 꿈은 아니었고 아주 생생한 기억인데 다치지 않았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꽤나 놀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며 집으로 걸어갔던 기억이 늘 선명하게 떠오른다.


다음 기억은 엄마가 집에서 찜통에 백숙을 해 주던 기억과 노랗고 달콤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카스텔라를 해준 기억이다.

굉장히 따듯하고 행복하고 맛있는 기억 중의 하나이다. 엄마는 밝게 웃으며 맛있냐고 물어보고 있고 PJ는 무척 행복해하며 카스텔라를 먹었다.

그 시절에 맛있게 먹었던 노랗고 달콤한 카스텔라가 종종 생각난다. 참 행복했던 기억 중의 하나이다. 엄마도 참 행복해 보였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잘 이어지지 않고 단편으로 기억이 난다. 카스텔라 기억처럼 인상적인 다른 기억은 화난 엄마의 표정이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굉장히 화가 나 있었고 아주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동생과 PJ는 아빠 뒤로 숨었고 엄마는 울면서 ''다 같이 죽자!"라고 달려들었다.

엄마가 왜 그렇게 울부짖으며 빨간색 소독약 통을 들고 무섭게 달려들었는지, 아빠는 무척 놀라고 당황하며 PJ와

동생을 뒤로하고 앞에 서 있었는지

지금도 PJ는 영문을 알 수가 없다. 그저 엄마가 무섭게 소리 지르며 "다 같이 죽자!"며 빨간색 소독약 통을 들고 달려왔던 사실만 기억에 남아있다.

기억은 너무나 불완전해서 때론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도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PJ에겐 그때부터 엄마에 대한 공포심과 불안감이 마음속 깊이 스며든 것만 같다. 엄마는 안전한 존재가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존재이고 언제든지 나를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PJ는 엄마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기보다는 무서운 존재로 기억하게 된 것 같다.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 그리고 부부의 불화가 PJ를 쉽게 불안해하는 사람으로 자라게 했다. 그후로 삶의 뿌리가 생각보다 쉽게 흔들리고 뽑힐 수 있다는 근원적인 슬픔이 마음속 깊이 자리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PJ는 지금도 아빠가 PJ와 더 친하게 지내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눌 때, 소외감을 느낀 엄마가 무섭게 째려보던 눈을 잊지 못한다. 무엇이 엄마를 그렇게 화가 나게 했을까? PJ에게 영원히 풀리지 않는 유년의 아픈 기억이다. 오히려 청소년 시절의 PJ에겐 엄마는 헌신적인 사람으로 남아 있다.

늘 PJ와 가족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최선을 다했던 엄마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아침을 꼬박꼬박 차리고 찌개와 다양한 반찬을 했던 엄마, 아빠가 입고 나갈 셔츠를 매일매일 다려두고 양말과 넥타이를 챙겨주던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현모양처 글자 그대로였다.

PJ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지 않아서 PJ는 친구 집에 가서 놀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오히려 친구들이 PJ 집에 놀러 오면 간식도 주고 반겨주었지만 PJ는 늘 학교가 끝나면 바로바로 집에 갔다.

내향적인 PJ의 성격의 영향도 있어서 PJ도 굳이 밖에서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이 크진 않았던 거 같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서 책 읽고 동생이랑 놀거나 TV만화를 보면서 여가시간을 보내곤 했다. PJ가 집 밖에서 친구들과 뛰어노는 일은 많지 않았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웠지만, PJ가 원해서 배웠다기보다는 엄마가 배우게 했기 때문이다. PJ는 오히려 수영이나 태권도, 미술학원에 다니고 싶었는데, 엄마는 피아노만 줄곧 가르쳤다. 그래서 PJ가 어른이 되었을 때 수영도 배우고 화실에도 다녔다. 어렸을 때의 아쉬움을 그렇게 해소했던 거 같다.


PJ는 어렸을 때 유일한 혈육인 남동생과 로봇과 인형을 가지고 놀곤 했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턴 남동생과의 소통이 많이 줄었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남동생과 단절된 삶을 살았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동생이니까 챙겨주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남동생이라는 존재는 귀찮기만 한 존재였다.

여동생을 챙겨주는 오빠가 있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 오빠는 좀 더 다정하고 좋을 거 같다는 막연한 기대를 했던 거 같다. 그래서인지 PJ는 오빠들이랑 쉽게 친해졌고 대화도 편하게 했다. 언니들은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졌고 불편했는데 오빠들은 편했다.


#소설 #마음일기 #어린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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