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직장

by 새나
내 인생의 홈런


나는 25살에 내 인생의 홈런과 같은 남자 사람과 결혼했다. 내가 사랑한 남자 사람은 다정다감하고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함께하면 마냥 즐겁고 끝도 없이 대화를 하게 되곤 했다.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행복했는지 짜릿했는지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우리는 매일 같이 엠티를 하는 사람들처럼 소박하면서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아이 둘을 낳고 29살이 되었을 때 더 이상 프리랜서로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25살에 결혼하면서 한 번도 알바를 쉬지 않았던 나는 일명 프리랜서로 약 5년간 재택근무를 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집에서 끊임없이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5년째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틈틈이 일을 한다는 중압감과 회사를 다니면서 조직 안에서 성장하고 싶다는 로망은 남편과 상의하지 않고 이력서를 작성하게 했다.


늘 내 결정을 존중해주는 사람이라서 이 일로 인해 남편이랑 결혼생활 후 처음으로 장기간의 냉전을 겪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고 싶은 건 하고야 마는 나

아빠가 목사님이라서 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것에 익숙했고 내 욕구보다는 다른 사람의 욕구를 소중히 여겼던 나는 당당하게 내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습관이 생겨 버렸다.

그래서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누군가 반대를 할 거 같으면 말을 하지 않고 몰래 하거나 그냥 저질러버렸다. 엄마 아빠한테 말씀 안 드리고 남자 친구를 만나거나 공부한다고 하고 친구랑 영화 보러 가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굳이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가 없는 일도 나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해야 직성이 풀렸다.

욕심이 많고 고집이 세서 그렇게 한 건지 부모님이 내 의견을 존중해주지 않고 늘 반대를 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늘 바른 아이의 이미지를 주는 삶에 익숙했던 나는 싫어도 싫다고 못하고 좋아도 딱히 좋다는 표현을 맘껏 하지 않으며 감정이나 내 욕구에 대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갓 돌이 되어가는 둘째를 두고 직장생활을 하겠다고 남편에게 말하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있는 대학원 동기들이 무척 부러웠다. 대학원에서 공부한 전공을 살려서 취업한 동기들처럼 나도 언젠가는 직장을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했던 거 같다.

이제 딸이랑 아들을 낳았으니 직장생활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나는 이력서를 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반대할 거 같은 남편에겐 최종 합격 후에 통보했다. 내가 취직을 해서 회사에 다니겠다고...



keyword
이전 06화육아 스트레스 해소법(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