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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푹자는게소원 Aug 11. 2024

리얼 장기 입원

[에드하임체스터 투병기]

황달(빌리루빈) 수치는 20점대를 일주일 넘도록 유지되었고, 나의 입원은 예상치 못하게 길어지게 되었다. 

회사에 낸 일주일짜리 연차는 기약 없는 휴직으로 바꾸게 되었다. 슬슬 현실 감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냥 두서 없이 장기 입원에서 느낀 이런 저런 썰을 풀어보자면..


(1) 낙상 조심 : 보통 대학병원에는 일반병동과 암병동이 따로 존재하고, 각 병동 마다 규칙이 조금 다른 것으로 기억난다. 나의 경우 혈액종양내과 하위 암병동에 입원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낙상 조심"이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낙상은 말 그대로 침대나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볼 때 넘어지거나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생각보다 낙상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암병동에서는 작은 상처도 회복이 쉽지 않기에 입원이 길어지길 우려해 항상 조심하도록 간호사님들의 예의 주시하고 반복 잔소리를 해주었다. 다른 분들에 비해 거동에 문제가 없었음에도 한 번 넘어질 뻔했던 기억이 있다. (다이소에서 산 저렴한 슬리퍼가 문제였는데 슬리퍼를 미끄러지지 않는 제품으로 잘 고를 필요가 있다.)


(2) 준비물 : 처음 입원하는 날은 일주일짜리 가벼운 MT 가는 수준의 마음가짐으로 준비물도 적당히 필요해 보이는 것 위주로 챙겼다. 하지만 장기입원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고 필요한 것이 상당히 많아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갖다 주거나 비싼 편의점에서 사야할게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느꼈다.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장기 입원자 필수 품목★

탁상용 미니 선풍기 (암병동 기온은 극단적이다 춥거나 덥거나 겨울엔 덥고, 여름엔 춥다)

선이 긴 스마트폰 충전기 (충전기 선이 길면 길수록 좋다)

제로 탄산 (병원밥 일주일정도만 먹어보면 안다 탄산 없이는 식사가 너무 힘들다)

슬리퍼 (미끌거리지 않고 너무 말랑말랑 하지 않은 제품)

전기 면도기 (이거 없어서 고생함)


(3) 인풋/아웃풋 기록 : 입원 중 가장 귀찮은것을 꼽으라면 내가 먹은 것과 내보낸(?) 것을 기록하는 것이 되겠다. 입원한 기간 내내 몇시에 물을 몇 ml 마셨는지? 그리고 화장실에서 몇 ml 내보냈는지를 빠짐 없이 기록해야 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 입원 기간 거의 대부분 보호자 없이 혼자 보냈는데 마시고 내보내고 일일이 기록하는게 여간 귀찮은게 아니었다. (솔직히 기억 안나서 대충 가라로 쓰거나 잘못쓰기도 했다.) 세상 신기한건 내가 마신게 내 몸에서 증발하는게 아니라 거의 비슷하게 배출된다는 점을 기록하면서 알게 됐다. 그리고 환자마다 개인 소변통이 존재하는데 여기에 우선 채우고 몇ml인지 측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 때문에 더 귀찮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지만 제대로 기록하지 않으면 간호사님들이 잔소리를 하시기도 할 정도로 중요한 부분인듯 하다. 


(4) 수액 : 나만 그런게 아니라 모든 환자가 수액을 맞는다. 주로 포도당이 주 내용물인 수액을 입원기간 내내 쉬지 않고 맞았는데, 기본적으로 수액을 맞으면 혈당이 오른다. 그리고 이것도 수분이다보니 내가 마시는 물 이외에도 수액을 소변으로 배출하기 때문에 화장실을 정말 자주가게 된다. 그리고 수액 맞는 위치에 주사 바늘을 계속 꼽아두고 있는데, 얇은 바늘과 두꺼운 바늘 두가지가 존재하는데, 사실 처음 꼽을때만 아프고 이후로는 크게 통증은 없다. (그래도 두꺼운 바늘은 무섭다.) 수액은 떨어질때마다 간호사님들이 계속 갈아주셨는데, 만약 고갈된 상태로 놔두면 거꾸로 내 피가 수액통으로 역류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5) 채혈 : 채혈이 정말 수시로 있다. 하루에도 수십번 채혈을 해간다. 갑자기 자는 도중에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면 거의 99% 채혈이라고 보면 된다. 무슨 검사 명목, 매일 정기 검사 명목, 혈당 체크 등등 많은 이유로 채혈을 하는데 이것도 일상이 되더라. 나중에는 양쪽 팔이 남아나질 않는다 아무리 지혈을 잘해도 너무 자주 뽑으니 멍이 들 수 밖에 없더라. 


(6) 전투 식사 : 나의 경우 입원 후 보름만에 10kg 가까이 감량됐다. 정말 살이 쭉쭉 빠진다. 사실 영문을 모르겠다. 밥은 나오는 족족 심시세끼 남기지 않고 꾸역꾸역 밀어넣었는데 다이어트가 그냥 된다. (일반식이 이랬으면 노벨상을 받지 않았을까?) 병원식은 리얼 다이어트식이다. 평생 다이어트 해보적이 없으나 이렇게 단시간에 살이 빠진건 난생 처음이다. 기본적으로 싱겁고 원재료 고유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저염식 식단은 일주일 정도 먹으면 가끔 헛구역질이 나올때가 있다. 그래도 먹어야한다. 먹지 않으면 아마 20kg은 빠졌을거다. 건국대학교 병원은 일반식과 특별식 두가지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시스템이었는데, 특별식은 삼계탕도 나오고 갈비찜 이런 고급 반찬이 나오긴 하는데 이게 좀 많이 비싸다. (15,000원 이던가?) 한번도 먹지 않았는데 그래 봤자 병원밥 아니었을까? 라고 정신 승리를 했다. 

비주얼만 괜찮습니다


(7) n인실 : 6인실은 기본적으로 하루 3~5만원 수준으로 책정되는 것으로 아는데, 2인실은 하루 거의 20만원 수준이더라. 뭐 일주일 정도 치료 받고 금방 퇴원하는 사람이라면 2인실 쓰는거 솔직히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름이 넘어간다면 감당이 안될것 같았고, 2인실 신청해본적은 있는데 바로 취소하고 6인실에서 지냈다. 보험사마다 다르겠지만 입원비 지원이 20만원까진 보장 안해주는 것으로 대충 알고 있다. 장기 입원은 그냥 6인실이 답이다. 


장기 입원은 정말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처럼 거동에 전혀 문제가 없는 보호자가 굳이 필요 없는 환자라도 말이다. 그렇게 2주일 가까이 지나갈 무렵 나는 PET CT라는 전신 촬영을 하게 되었는데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에드하임체스터 투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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