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러게요 Apr 15. 2024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돼요.

아이를 낳는다는 것

유튜브에 금쪽상담소 클립이 떴다. 강원래 김송 부부였다. 예전에 이혼하니 마니 한 것 같은데, 아이를 데리고 상담을 나왔네 싶어 시청하기 시작했다. 강원래의 꼬이고 꼬인, 남의 말은 하나도 듣지 않겠다는 고집과 공격성이 보고 있기 힘들어 5분마다 멈춰 쉬었다. 

오은영이 부부에게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이는 아빠를 있는 그대로 자랑스러워 할 거다. 이런 말들을 하고, 얼굴이 많이 풀어진 강원래가 말했다. 시험관을 세번 정도 실패하고 힘들어서 쉬고 있었다. 그때 암투병 중인 동생이(울랄라세션의 임윤택이라고 했다) 아이를 낳는 것은 내가 새로 태어나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다시 시험관에 도전해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작은 스마트폰 화면 앞에서 나도 모르게 "욕심이다 욕심."이라고 중얼거렸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이루게 하려고 애쓴다. 사람 마음이란 왜 그런 걸까. 내가 가진 것은 그렇게 반짝이질 않고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내가 이제와서 쟁취하는 건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 아이에게 자꾸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겠지. 하지만 아이는 타인이고, 내가 아니다. 내가 욕심이라고 중얼거린 건, 임윤택씨가 암투병 중에 아이를 갖게 되었고, 금방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겠지. 강원래씨가 자신이 장애인이라고 세상에 날을 세우고 있으면서도 아이를 갖고 싶어 했기 때문이겠지. 

결국 사람은 오로지 자기를 위해서 아이를 낳는 것인가 보다. 아이는 자신의 선택으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으니까. 아이가 있어서 괴로운 사람도, 행복한 사람도 다양하겠지만 아이의 출생 여부는 오로지 부모의 선택이니까. 결국 모든 탄생은 부모의 욕심이거나 부모의 실수겠구나 싶어진다.

자손을 이어가는 것 결국은 본능의 문제와 국가의 존속을 위한 것이겠지만(애국을 가르치는 것과 비슷하겠지)그러니 국가는 아이를 탄생시키고 싶으면 아이를 귀하게 여겨야 하는 건 당연한 문제이긴 하겠다. 인간은 참 나약하다. 부모가 없으면, 국가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로 이야기가 흘러가기 전에 정신을 붙잡자면, 국가가 필요에 의해 출산을 장려했으면,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아이를 책임지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사회주의 국가에서 공동 육아를 말하는 것이구나. 

생각이라는 걸 해볼 수록 결국 누군가가 이미 다 한 고민이고, 나는 공부를 해야 하나보다 싶긴한데..ㅋㅋㅋ 그렇다고 공부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세상 전부를 알 필욘 없잖아...


아무튼 나이를 이만큼 먹고 보니 세상이 왜 이렇게 굴러가고 있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이런 환경이 주어지면 이런 사람이 된다는 것.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기 때문이겠다. 예를 들면 아이가 어릴 때 3시간 간격으로 울어댈 때, 자고 있는 남편을 발로 차기를 여러번 했더니 남편이 자동기상하고, 그 후 나는 아이가 울어도 못 듣고 꿀잠자게 되었다든가. 시험 준비를 위해 육아를 남편에게 많이 넘겼더니, 아이가 말을 안들을 때, 애를 어떻게 봤길래 애가 이러냐라는 말이 목구멍에 맴도는 것을 느꼈을 때. 사람은 결국 자기 몸과 마음이 편한 쪽으로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 쓸 에너지가 줄어들면 여러 가지를 포기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친구가 그랬다. 안 힘들만큼만 해야 계속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또 세상 일이 그렇던가. 난 이 글을 쓰는데 실질적으로 글만 쓰는 것에는 1시간도 쓰지 않는데, 일주일에 한편 쓰기를 또 놓치고 월요일에 다른 일을 미루기 위해 쓰고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결국 무진 애를 쓰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밥벌어 먹기도 살기 힘든 이 세상에 사람답게 살기란 참 난제이다.


인간은 참 보잘 것 없어서, 내 삶을 인정받고 싶어서 자식을 낳는 걸까. 눈으로 보이는 게 필요한 걸까. 내 삶의 이유가 너였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싶은 걸까. 좀 더 키워보면 알겠지. 


어른은 왜이렇게 금방되고, 어른에게 왜 이렇게 희망은 없는지. 반면에 아이는 왜 모든 게 다 될 수 있는 존재라고, 엄청난 희망덩어리인 것으로 인식되는 걸까. 다르게 살려면 새로 태어나야 하는데 그걸 아이를 통해 이루고 싶은 마음일까.

하지만 우린 알지 않는가. 김애란은 어느 소설에서 말했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이 마음이 우리나라 비혼이 높아지고, 출산률이 바닥치는 이유라는 걸. 그러고보면 요즘 세대와 살짝 내 윗 세대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기 때문일까 싶기도 하다.


더 다듬고 싶은데, 지금 당장은 생각이 나질 않으니 발행해볼까.



작가의 이전글 핵폭발이든 기후위기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