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불평등하게 태어난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어떤 사람은 아름답게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누군가는 천재적인 두뇌를 타고나고, 누군가는 평범한 지능을 가진다. 음악적 재능, 운동 능력, 사교성, 집중력 - 그 어떤 것도 동등하게 분배되지 않았다. 부모의 재력과 지위도 다르고, 태어난 나라와 시대도 다르다. 이런 차이들은 단순한 다양성이 아니라, 실제로 삶의 결과를 좌우하는 불평등이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의 진리가 있다. 모든 사람에게 하루는 24시간이다. 아무리 부유한 사람도, 아무리 권력이 있는 사람도 시간을 더 가질 수 없다. 빌 게이츠도 노숙자도 하루 24시간을 산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평등하다. 시간은 살 수도, 훔칠 수도, 상속받을 수도 없다. 그저 흘러갈 뿐이다. 이것이 우주가 인간에게 부여한 유일한 진정한 평등이다.
또 하나의 평등이 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는 법칙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외모로 주목받지만, 그만큼 내면을 인정받기 어렵다. 유명인은 부와 명예를 얻지만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잃는다. 재능 있는 사람은 성공하기 쉽지만, 그만큼 시기와 질투를 받는다. 권력자는 영향력을 가지지만 진실한 관계를 맺기 어렵다. 이것은 교환의 법칙이다. 세상은 공짜를 주지 않는다. 이 또한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진리다.
종교들은 이 진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말해왔다. 불교는 집착하면 고통받는다고 가르친다. 얻으려 하면 할수록 잃는 것도 많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 말한다. 재물을 얻으면 영혼을 잃기 쉽다는 뜻이다. 도교는 무위자연을 말한다. 억지로 얻으려 하지 말고 자연의 흐름을 따르라는 것이다. 이 모든 가르침의 핵심은 같다. 세상에는 균형이 있고, 그 균형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 평등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왜곡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우리는 평등하다"고 외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평등은 진짜 평등이 아니다. 그들은 시간의 평등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부정하려 한다. 그들은 교환의 법칙을 거부한다. 잃지 않고 얻으려 한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는 10년을 투자해서 의사가 되었다. 그 10년 동안 그는 놀지 못했고, 자유롭게 살지 못했고, 청춘을 포기했다. 시간을 투자해서 자격을 얻은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의사가 왜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하는가?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의사도 청소부도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평등이 아니다. 이것은 시간의 평등을 부정하는 것이다. 10년을 투자한 사람과 투자하지 않은 사람을 같게 만들려는 것은, 시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유명 연예인이 있다. 그는 인기와 명예를 얻었지만, 어디를 가도 쳐다보고, 사생활을 침해당하고, 악플에 시달린다. 그가 얻은 것만큼 잃은 것도 많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연예인이 왜 돈을 그렇게 많이 벌어? 그것은 불평등이다. 우리도 똑같이 대우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연예인이 잃은 것, 즉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함께 잃으려 하지는 않는다. 그저 얻은 것만 나누려 한다. 이것은 평등이 아니라 탐욕이다.
가장 교묘한 왜곡은 기회의 평등을 요구하면서, 실제로는 결과의 평등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모두에게 똑같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 겉으로는 정당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은 다르다. 누군가가 기회를 잡아 성공하면, 그들은 그것을 불평등이라고 비난한다. 결국 그들이 원하는 것은 노력하지 않은 사람도 노력한 사람과 같은 결과를 얻는 것이다. 24시간을 효율적으로 쓴 사람과 낭비한 사람이 같은 보상을 받기를 원한다. 이것은 시간의 평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런 거짓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으려 한다. 그들은 자신이 노력하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의 노력으로 메우려 한다. 이것은 평등이 아니라 착취다.
한 사람이 하루 8시간을 공부하거나 일해서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하자. 그 8시간은 그가 희생한 것이다. 그 시간 동안 그는 놀지 못했고, 쉬지 못했고,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와서 그 결과물을 나누라고 요구한다. "우리는 평등하다"는 이름으로. 이것은 그 사람의 8시간을 훔치는 것이다. 시간을 직접 빼앗을 수는 없으니, 시간의 결과물을 빼앗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이런 일이 제도화되어 있다. 세금이 그렇다. 물론 적정한 세금은 필요하다. 사회 인프라와 안전망을 위해서. 하지만 과도한 세금, 특히 노력한 사람에게만 무겁게 부과되는 누진세는 시간의 착취다. 누군가가 10년을 투자해서 높은 소득을 얻었는데, 그 소득의 절반을 세금으로 가져간다면, 그것은 그의 5년을 빼앗은 것과 같다. 그리고 그 돈은 10년을 투자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분배된다.
복지도 마찬가지다. 진정으로 어렵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것은 인간적인 일이다. 하지만 일할 수 있고, 노력할 수 있으면서도 복지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24시간을 게으름에 쓰고, 다른 사람의 24시간의 결과물로 산다. 이것을 평등이라고 부르는 것은 언어의 왜곡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교환의 법칙마저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무언가를 얻고 싶어 하지만,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는다.
예컨대 그들은 성공한 사람의 부를 원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견뎌낸 스트레스, 책임감, 불안, 외로움은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유명인의 인기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들이 감수하는 프라이버시 침해, 악의적 비난, 끊임없는 감시는 거부한다. 그들은 전문가의 권위를 시기한다. 하지만 그들이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 포기한 젊음은 외면한다.
이것은 아이의 사고방식이다. 어린아이는 사탕을 원하지만 이가 썩는 것은 싫어한다. 놀고 싶어 하지만 숙제하기는 싫어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교환의 법칙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거짓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다.
더 나쁜 것은, 그들이 이런 유치한 욕망을 도덕적 언어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평등", "정의", "공정" - 이런 아름다운 단어들을 앞세워서 자신의 탐욕을 정당화한다. 자신이 노력하지 않은 것을 요구하면서도, 마치 숭고한 이상을 추구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것은 위선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등을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는 진짜 평등으로 돌아가야 한다. 시간의 평등, 교환의 평등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 24시간이 주어진다. 이것은 진정한 평등이다. 그리고 각자는 그 24시간을 어떻게 쓸지 선택할 자유가 있다. 누군가는 공부에 쓰고, 누군가는 일에 쓰고, 누군가는 놀이에 쓴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각자가 책임져야 한다. 공부에 쓴 사람이 더 많이 아는 것은 당연하다. 일에 쓴 사람이 더 많이 버는 것도 당연하다. 이것은 불평등이 아니라 정의다.
물론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이 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사람, 건강하게 태어난 사람은 유리하다. 하지만 그것조차 교환의 법칙에서 자유롭지 않다. 부유한 집의 자식은 기대와 압박을 받는다. 아름다운 사람은 외모로만 평가받는다. 재능 있는 사람은 그 재능을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진다. 완벽한 공평함은 없지만, 교환의 법칙은 작동한다.
진정한 평등 사회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결과를 주는 사회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24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그 결과를 정당하게 누릴 수 있는 사회다. 노력한 사람이 보상받고, 게으른 사람이 그 대가를 치르는 사회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받아들이는 사회다.
거짓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그들은 정말로 평등을 원하는가?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특권이다. 노력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특권,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도 결과를 누릴 수 있는 특권, 잃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특권 말이다.
역사를 보면 이런 일은 반복되어 왔다. 프랑스 혁명은 평등을 외쳤지만, 결과는 공포정치였다. 열심히 일한 사람들을 단두대에 보냈다. 공산주의는 평등을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당 간부들의 특권 사회를 만들었다. 누구보다 평등을 외친 사람들이 누구보다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다. 평등이라는 거짓말 뒤에는 늘 권력욕과 탐욕이 숨어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평등을 가장 크게 외치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정말로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가? 아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빼앗아 자신에게 달라고 요구한다. 그들은 부자의 세금을 올리라고 외치지만, 자신이 가난한 사람에게 직접 나눠주지는 않는다. 그들은 기업의 이윤을 비난하지만, 자신이 기업을 만들어 공정하게 운영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평등은 늘 다른 사람의 희생을 요구한다.
결국 우주는 공정하다. 시간의 평등과 교환의 법칙이라는 두 가지 진리가 모든 것을 균형 잡는다. 아무리 부자라도 시간을 더 살 수 없고, 아무리 권력자라도 잃지 않고 얻을 수 없다. 이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거짓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법칙을 거스르려 한다. 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노력 없이 얻은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복권 당첨자의 대부분이 파산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들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돈을 얻었고, 그래서 그 가치를 모른다.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을 얻은 사람은 불안에 떤다. 그들은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고, 그래서 그것을 지킬 수 없다.
반대로, 시간을 투자하고 정당한 대가를 치른 사람은 그 결과를 지킬 수 있다. 10년을 공부한 의사는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이 있다. 누가 뭐래도 그는 그 시간을 투자했고, 그 결과를 누릴 자격이 있다. 20년을 사업에 매진한 기업가는 자신의 부를 떳떳하게 여긴다. 그는 그만큼의 시간을 포기했고, 위험을 감수했고, 스트레스를 견뎠다.
진짜 평등은 이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24시간을 갖는다. 모든 사람이 선택하고 그 결과를 책임진다. 모든 사람이 무언가를 얻으면 무언가를 잃는다. 이것은 아름답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진실하다. 그리고 이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거짓 평등이라는 환상에 속는 것보다 훨씬 건강하고 정직한 삶의 방식이다.
가짜 평등은 약자를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들을 더 약하게 만든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치고, 결과에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고 속이고,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는 것이 정당하다고 세뇌한다. 이것은 사람을 망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진짜 평등은 모든 사람에게 24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그 시간을 어떻게 쓸지는 스스로 결정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를, 좋든 나쁘든, 자신이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존중이고, 진정한 평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