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by 성휘

고백컨대 나는 요즘 우울하다. 최근 한 달간 나를 사로잡은 이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달 남짓.


불면의 밤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왔다. 무진의 안개 속에 갖힌 것 같은 끈적끈적한 기분 속에 파묻혔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스타벅스의 케케한 커피 냄새처럼 은근히, 하지만 끈질기게, 그리고 불쾌하게 스며들었다. 내게선 끈적한 안개 냄새가 났다. 눅진히 들러붙은 살냄새처럼.


스타벅스 커피 냄새라면 페브리즈 몇 방에 가볍게 날려버렸을텐데 끈적한 안개 냄새는 도저히 떨쳐낼 방법이 없다. 돈을 왕창 써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만큼 달려도, 일년 내 미뤘던 창문 청소를 해도 벗어나질 못했다. 기르던 머리를 확 쳐내도 자라난 우울감은 짧아지지가 않았다.


심각한 결막염에 걸린 적이 있다. 중3때 일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에 가기 싫어서 당시 유행했던 눈병에 걸린 친구 휴대전화를 눈에 문지른 게 화근이었다. 어찌나 효과가 굉장했던지 눈을 깜빡일 때마다 모래알이 눈알에 굴러다니는 듯한 찌르는 통증에 시달렸다. 그렇다고 눈을 감고 있으면 눈꺼풀 속 눈알이 굴러갈 때마다 사포로 눈알을 긁는 것처럼 아팠다. 말 그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였다.


그나마 고통에서 벗어나는 때가 있었는데, 안과에서 마취 안약을 뿌려줬을 때였다. 안약이 눈알에 떨어지자마자 통증은 씻은듯이 사라졌다. 하지만 효과는 30초도 채 가지 못했다. 약효가 가시면 통증은 더 심해졌다. 약빨에 고통을 잊고 눈알을 막 깜빡이고 이리 저리 쳐다본 탓에 각막이 더 들고 일어나서다.


우울을 잊기 위한 나의 여러 가지 시도들을 고백하다 말고 15년도 더 된 결막염 투병기를 끄집어 낸 건 지금 내 꼴이 딱 그래서다. 통장과 신용카드 목을 조르고, 몸을 혹사시켜도 효과는 딱 그 순간 뿐이었다. 한나절도 되지 않아 자기혐오와 현자타임이 밀려왔다. 막힌 댐이 터지듯. 우울을 잊겠다고 한 행동들이 결과적으로 자기파괴에 다름 아니었던 셈이다. 우울의 고통은 더 심해졌다. ‘어쩌면 안개 냄새는 내 살이 아니라 피의 냄새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되뇌었다.


말기 암 환자는 다섯단계에 거쳐 병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우울도 그렇다. 적어도 내 경우엔. 다섯단계까지는 아니지만 분명한 기점이 있다. 육체적으로 자신을 혹사하는 초기 단계는 말하자면 부정과도 같다. 스멀 스멀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우울감을 부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분명히 과잉되게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새벽녘 호수에서 피어오르는 안개를 입김으로 몰아낼 수 없듯, 부정은 눈가리고 아웅에 불과하다.


이내 찾아오는 건 무기력이다. 설거지가 쌓이고, 빨래가 밀린다. 일 욕심은 고사하고 물욕도 사라진다. 그러고 나면 비로소 깨닫는다. 아 나는 우울하구나.


우울을 받아들이는 단계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지는 모르겠다.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고, 어쩌면 다시 자기파괴의 단계로 회귀할 수도 있다. 일정 단계를 거치면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갖고 있지만 어쩌면 선형 구조처럼 ‘자기파괴-무기력’의 굴레가 반복될 지도 모르겠다. 말하다보니 후자일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인다.


어쩌면 벗어나려고 발버둥쳐서는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우울일질도 모른다. 우선은 이 감정을 받아들이는 게 순서일수도 있다. 내가 아프다는 걸 받아들이고 알아채야 쉼호흡을 하며 고통을 덜어낼 수 있듯. 내 피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안개 냄새가 느껴진다는 건 내가 피를 흘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나는 피를 흘리고 있다. 나는 아프다. 나는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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