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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lucia May 28. 2021

이사, 내 집

얼마 전 이사를 했다. 지난 2월 엄마의 상속재산을 정리하고, 신고와 납부를 마치고, 각자 4남매의 몫을 나눠 가졌다. 나는 엄마의 상속재산을 보태고 대출의 힘을 빌려 작은 빌라를 하나 매입했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 길 하나 건넌 옆 동네이다. 이 동네는 한강과 경의선 숲길이 가까워 산책하기에도 좋고, 초등학교 바로 뒤라 안전하고 조용한 편이다. 내가 애초에 이 동네로 이사 온 것은 둘째 언니 가까이에 있으려고 온 것인데, 둘째 언니는 조카가 성년이 될 때까지 이 동네에서 교육을 마칠 계획인듯하다. 그래서 나도 이 동네에 뿌리를 내렸다.      

나는 비교적 이사를 적게 한 편이다. 결혼하고 엄마 집 아랫집에 터를 잡았다가, 엄마 집 윗집으로 한번 이사를 하였고, 2019년 가을, 엄마의 그늘을 벗어나 지금 살던 동네로 이사 온 게 두 번째, 그리고 지금 집으로 내 집 마련을 하여 이사 온 것이 세 번째다. 나와 남편의 올해 나이 39세, 적당한 나이에 적당히 방황하다 둥지를 틀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알뜰히 살고, 겸손히 살며, 대출의 짐을 하루빨리 내려놓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면 목표다.     


나는 예민한 편이다. 신경 쓰이는 것이 있으면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멀리멀리 뻗쳐나가 잠이 오지 않는다. 네*버 부동산과 직*을 검색해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있어서 잠이 안 오고, 없으면 없어서 잠이 안 온다. 중개사무소에 연락해 집을 보고 오면 사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에 또 잠이 안 온다. 이런 내 예민 탓에 이 예민을 얼른 떨쳐버리고자 빨리 결정하고 빨리 실행하게 되니, 장점 아닌 장점인 샘이다. 내가 볼 수 있는 서류를 다 띄어보고, 이것저것 검색을 마치고, 계약을 했다. 중도금을 치르고, 잔금을 치르고, 이사 나간 뒤 빈집이 된 집의 상태를 점검하고, 공사를 하고, 이사를 하고, 이것저것 손을 보고 정리를 하는 내내, 나는 수면제의 힘을 빌려 잠을 잤다. 지금은 이렇게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쓸 여유가 생겼으니, 수면제 없이 잘 잔다. 

     

이사 나간 뒤 빈집의 상태가 다소 생각과 달랐다. 집이 깨끗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묵은 때가 많았다. 원래 계획은 도배 후, 입주 청소만 하고 들어올 생각이었는데, 싱크대도 교체하고 여기저기 손을 좀 보게 되었다. 이사 날짜는 잡힌 상태로 촉박하게 공사를 하다 보니 신경 쓸 게 많았다. 그중 가장 신경이 쓰인 것은, 보일러실 배관의 미세한 누수였다. 아마도 세탁기에 가려져, 전 주인들도 보지 못했을 것 같다. 바닥에 미세하게 물이 고여있었다. 육안으로 내가 봐도 큰 누수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누수는 덜컥 겁이 났다. 혹시나 바닥을 뜯어야 하면 어쩌나, 보일러 배관을 전체 교체해야 되면 어쩌나, 아랫집에 누수가 생겨 보상을 해줘야 되는 건 아닌가, 또 잠을 못 잤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까지 염려할 누수는 아닌데, 괜히 또 생각에 생각에 생각을 하다 쓸데없는 걱정만 늘어졌다. 보일러 전문가를 섭외해 점검을 받아보니 역시나 별거 아니었다. 간단히 조치를 하고, 보일러 잘 돌아가는지 확인까지 잘 받고, 큰돈 안 들이고 해결했다. 정말이지 쓸데없이 잠만 못 잤다. 나는 늘 이렇다.      


이사를 하며 엄마 생각이 정말 많이 났다. 나의 예민함이 어디서 왔으랴. 엄마는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엄마의 언니, 팔순의 이모는 엄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대를 이어 내려온 예민함이다. 평생 그 예민함을 다스리며 사는 것이 엄마와 이모의 과업이라면 과업이었다. 나는 아이도 없이 남편과 달랑 둘이서, 적당한 짐을 꾸리며 이사를 다녔지만, 엄마는 자식 넷을 줄줄이 달고 이사를 다닌 게 아닌가. 아빠와 이혼한 뒤 우리끼리 살 때는, 말 만한 딸년 셋을 데리고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이사 다니느라 늘 노심초사였다. 다가구 주택을 사고, 그 집에서 집주인 노릇하며 살 때는, 건물 관리가 이만저만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었다. 말이 좋아 집주인이지, 세입자들 관리하는 것이, 집사 같을 때가 더 많았다. 그 많은 일들을 엄마는 남편도 없이 혼자 해냈다. 이것저것 집 관리하며 상대하게 되는 업자들은, 까다로운 이들도 많고, 여자라고 무시하고 날림공사하고 돈 받고 튀어버린 업자들도 있었다. 지금이야 인테리어 공사에 여자들이 많이 개입하고, 친절하고 싹싹하게 비즈니스 마인드로 잘 응대하는 업자들이 많지만, 나 어린시절엔, 거칠고, 욕해대고, 무시하고, 배째라는 식의 업자들이 부지기 수였다. 나는 이거 해줘 저거 해줘, 쉴 새 없이 불러대고 시켜먹을 듬직한 남편이라도 있지, 엄마는 혼자서, 아니, 혼자라면 차라리 편했을 것을, 줄줄이 달린 딸 셋을 데리고 살며 다 해낸 것이다. 아. 집을 사고, 입주 전 공사를 하고, 이사를 하는 내내, 정말이지 엄마 생각에 울컥울컥, 밤에 울기도 자주 했고, 엄마 꿈도 정말 많이 꿨다. 아.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사는 내내 한고비 한고비, 큰일을 해낼 때마다, 엄마 생각이 더 많이 나겠지. 아. 그때 엄마에게 좀 더 살뜰히 말할걸, 같이 해줄걸, 같이 고민해줄걸, 잠 못 드는 엄마의 머리 한번 쓸어 만져 줄걸. 내내 후회하고 그리워하며 살겠지. 문득 아이가 없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가 크는 내내 얼마나 또 엄마 생각을 하게 될까. 얼마나 더 그리워하게 될까. 


그만 그만. 나는 나의 삶을 살아내야지. 성실히, 담담히 잘 살아내야지. 엄마도 그걸 바라실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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