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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lucia Jun 22. 2021

금주 禁酒

술을 끊었다.      


술을 그만 마셔야겠다고 작정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나는 술을 먹지 않고 있었다. 굳이 술을 먹고 싶지도, 술이 당기지도 않았다. 이제 먹을 만큼 먹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차피 몸에 좋지도 않은 술, 이제 그만 먹어야지 싶었다. 그러다 보니, 술을 먹지 않은 것이, 근 1년은 된 것 같다.    

 

나는 술을 좋아했다. 술을 좋아하기보다는, 술 먹는 분위기를 좋아했다. 야근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직장동료와 상사 욕하며 술 한잔, 비 오는 날 엄마표 부침개를 나눠 먹으며 맥주 한잔, 결혼하고는 남편과 야식 먹으며 홀짝홀짝 몇 잔, 그런 낭만을 좋아했다. 나는 알코올 분해효소가 적은 건지, 간이 안 좋은 건지, 술을 많이 먹으면 그다음 날 술이 깨는데 한참 걸렸다. 두통이 심했고, 꼭 전날 먹은 술안주를 몇 번씩 게워 내야 했다. 그래서 취할 만큼 많이 먹지는 않고, 적당히, 기분 좋을 정도로만 먹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술이 내키지 않았다. 엄마의 백혈병 투병이 시작된 후였다. 자주 울었고, 자주 마음이 아팠고, 불안하고, 두렵고, 말 그대로 정신상태가 온전치 못했다. 술을 먹지 않아야겠다.라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으나, 편의점에서 맥주캔에 손이 가지 않았다. 남편이 한잔 하자 하면, 나는 탄산음료, 과일음료, 각종 음료수를 하나씩 마셨다. 그러다 탄산수를 먹게 되었고, 탄산수에 과일음료 조금 타서 얼음 넣어마시니 카페에서 파는 에이드 맛이 나는 게 먹을만했다. 그렇게 술을 멀리하게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집에 계셨던 주말이었다. 작년 8월 중순쯤, 폐렴이 도무지 잡히질 않아 퇴원하지 못하고 계시다, 6주 만에 퇴원하고 집으로 오셨다. 분명 퇴원할 상태가 아니었는데, 우리는 참으로 무지하게도, 그저 엄마가 6주 만에 퇴원하는 게 좋았다. 엄마와 집에 있는 것이 좋았다. 주말마다 병원으로 엄마를 보러 가는 게, 코로나19로 면회를 길게 하지도 못하고, 엄마 얼굴을 비벼보지도 못하고 매번 돌아서야 하는 게 답답하고 버거웠다. 그래서 그저, 6주 만의 퇴원이 반가웠다. 엄마도 드디어 퇴원이라며 반갑게 병원문을 나서셨다. 그날 저녁, 엄마는 방에서 주무시고, 나, 둘째 언니, 남동생은 오랜만에 엄마 집에서 토요일 밤을 함께 보내며 야식과 술을 즐겼다. 나도 그날은 오랜만에 맥주를 마셨던 것 같다. 엄마는 그날 밤, 고열이 나셨고, 많이 아프셨다. 술을 먹다 엄마 방에 들어가, '엄마 열나? 아파? 힘들어? 응급실 갈까?' 라고 하면, 부산 떨지 말고 나가서 놀라며 짜증내고 내쫓으셨다. 열나는데 화장실 드나들기 위험할 것 같아 기저귀를 하자고 하니, 싫다며 또 짜증 내셨다. 타이레놀만 챙겨 드시며 엄마는 혼자 그 밤을 견디셨다. 우린 자정이 넘을 때까지 시끄럽게 수다 떨며 야식과 술을 마셨다. 다음날 일요일 오전,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며칠 뒤, 엄마는 화장실 다녀오시다 넘어지셨고, 둘째 언니가 뛰어가 엄마를 입원시켰고, 검사 결과, 고관절이 골절되었고, 폐렴은 더욱 심해졌다. 수술은 할 수가 없었고, 마약진통제에 의지하며 다리 한번 펴보지 못한 채, 엄마는 다시 집에 돌아오지 못하시고, 떠나셨다. 엄마와 함께했던 마지막 주말의 기억은, 그렇게 엄마와의 이별로 이어진다.     


그때 우리끼리 술 먹지 말걸, 짜증 내는 엄마를 좀 더 받아줄걸, 땀이라도 닦아줄걸, 아무리 짜증내고 싫다 하셔도 기저귀 채워드릴걸, 뭐 그리 할 말이 많다고, 엄마를 방에 혼자 두고 우리끼리 있었을까. 그날이 마지막이었는데, 엄마와 함께 엄마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주말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다시는 그 집에서, 거실에 앉아있는 엄마를 볼 수 없는데, 다시는 엄마 방 침대에서 엄마의 얼굴을 만져 볼 수 없는데, 대체 왜, 엄마를 혼자 두고 우리끼리 웃고 떠들었을까. 열이 나는 엄마를 혼자 두고...    

 

그렇게 그날은, 수없이 많은, 돌이킬 수 없는, 아무 소용없는, 바보 같고 부질없고, 한심스럽기만 한 후회로 가득 찬 주말의 기억이 되었다. 다시 그날 밤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잠이 오지 않는 엄마 옆에서 머리를 쓸어줄 수만 있다면, 잘 자라고 노래 한 소절만 불러줄 수 있다면, 그랬다면...     


술을 다시 마시면, 그날의 기억이, 더욱더 무겁게, 태산같이 버겁게 나의 가슴을 짓누를 것 같다. 이 기억이 조금 무뎌진다면, 조금 잊힌다면, 그땐 술을 다시 마실 수 있을까. 아니다. 뭐 좋은 것이라고, 탄수화물을 끊은 것도 아니고, 고기를 끊은 것도 아니고, 술을 끊은 것인데, 얼마나 잘한 일이야. 굳이 술을 다시 마셔야 할 이유가 무엇이야. 나는 그냥 이대로, 술을 계속 마시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엄마, 

나중에, 나중에, 먼 훗날, 우리 다시 만나면, 그때 맥주 한잔해. 

엄마표 부침개, 김치전, 부추전, 파전, 말 만하면 골고루 나오던 엄마표 부침개 해줘.

못다 한 이야기 나누며 맥주 한잔해.      

생각만 해도 좋다. 너무 좋다.      

보고 싶은 나의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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