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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문화와 다이어트에 대하여

12% - 황령산

by 샤샤
bgm. 비밀의 화원 by 아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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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진급 기념 부산 여행!

군에서 진급식은 주로 오전에 하고, 점심 전 퇴근시켜 주는 문화가 있다. 진급식에 참석해 준 가족, 친지 분들과 점심식사도 하고, 기쁘고 행복한 날인 만큼 그날 오후는 업무로부터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난 금요일 08시 10분 중위 진급식을 했고, 09시가 되기 전에 진급식에 참석해 준 엄마와 함께 부대 위병소를 떠나 오랜만에 저 남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사실 지금 보임하고 있는 자리가 한국군 4성 장군을 모시는 자리이다 보니, 상시 대기 차원에서 퇴근 후와 주말 할 것 없이 멀리 어디론가 떠나기 눈치 보였다. 제주도 여행을 가기 위해 항공권과 숙소까지 예약했다가 급한 상황 발생에 여행 전날 모두 계획을 취소하고 수수료를 내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 소위로 지금의 자대를 와서 넉넉잡아 1년간 고생했으니, 잔머리를 굴려 '진급'이라는 아주 합당한 핑계를 아주 오랜만의 여행의 사유로 활용할 수 있을 정도의 '짬'은 찬 것 같아서, 뒤도 안 돌아보고 부산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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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브런치에 연재해야 하기 때문에 등산을 해야 하는 의무감도 부정할 수 없지만, 이번 부산 여행 중 특히 등산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다. 첫째, 의외로 황령산 정상이 부산의 야경 명소라고 추천을 받았고 (생각보다 명산을 많이 보유한 부산이었다!), 둘째, 부산의 유명한 먹거리를 다 신나게 먹고 오려면 그에 응당한 칼로리 소모 수단도 필요했다. 약 한 달 반 정도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6킬로 정도를 감량한 상태였기 때문에 마냥 먹고만 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물론 6킬로 감량한 것은 중위 진급식 때 정복이 꽉 끼지 않았으면 좋겠기 때문이었지만 가벼워진 몸과 마음, 이 관성을 유지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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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기 시작한 공원 그리고 거인이 쓸 것만 같은 훌라후프...!

사실 결론부터 적어보자면 황령산 정상을 보지 못하고 내려왔다. 여러 차례 등산을 하면서 생긴 내공으로 쭉쭉 잘 올라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네이버 지도가 잘못된 등산로를 알려주는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황령산도 부산을 대표하는 명산이기 때문에 당연히 지도를 따라가면 길이 있을 거라고 오판했다.


우리는 전포역 근처 숙소에서 출발해 황령산 정상까지 가는 네이버 지도상의 최단거리를 따라 이동했다. 지도상으로도 길이 마냥 단순해 보이지만은 않았지만 정상 방향을 안내해 주는 표지판이 중간중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어느 정도 올랐을 때는 정상을 향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확신까지 들었다.


지도를 따라가던 중 위의 사진 속 거대한 훌라후프가 걸려있는 공원을 마주했고, 저 공원으로부터 틔어져 있는 그 어느 갈래의 길도 안전한 등산로 같지 않았다. 정상에서 일몰과 야경을 보기 위해 오후 느지막이 산을 올랐던 터라 해도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정말 아쉽긴 했지만 더 이상 도전하면 위험할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몰려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일반적인" 등산로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게, 말도 안 되는 경사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 말고는 산을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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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층이면 잠실 롯데타워 수직마라톤 절반의 높이

비록 정상까지 올라가진 못했지만 부산까지 가서 등산을 도전했다는 것 자체로 뿌듯하다. 게다가 무려 74층에 해당하는 높이까지 이르렀다니. 황령산 등산 1트가 주는 교훈은 최단 거리를 추구하는 것은 항상 리스크가 따른다는 점이다. 조금만 더 알아보고 등산객들이 자주 오르내리는 등산로를 알아볼걸. 부산 여행을 언제 또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다시 도전해 보는 걸로 하겠다.

KakaoTalk_Photo_2025-06-02-12-12-51 006.jpeg 부산은 참 독특한 지형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아무런 정치적 의도도 없습니다)

다이어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최단거리를 운운할수록 조급해지고 급급해진다. 유튜브, 인스타그램의 모든 알고리즘이 "다이어트"라는 주제에 잠식된 상태보다 그저 일상을 보내면서 한두 가지의 루틴을 더 추가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식단관리를 시작하면서 요리에 관심이 생겨서 내 모든 알고리즘은 건강식 도시락 관련된 주제들로 잠식되어 있긴 하다..!)


원래 배가 터지도록 많이 먹는 편은 아니다. 약간 잘못된 비교군일 수 있지만, 내 친구 중 한 명은 본인의 지인들 중 대표적인 소식좌로 나를 꼽기도 한다. 나는 조금씩 자주 먹는 스타일이어서 식단 조절을 하는 것은 매 다이어트마다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저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초절식만 했다는 것이다.


3년간 공군 장교 기간 동안 이루고 싶었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는 체력 증진이다. 군입대 전의 다이어트는 단순한 초절식과 몸무게에 의존하기만 했다면, 지금은 공복유산소를 하고, 친구들과 술자리보다는 등산을 가고, 건강하고 맛있는 식단을 양껏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가볍고 온전한 느낌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시작 몸무게부터 총 8킬로를 감량했고, 이 무게 전부 오롯이 체지방만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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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화를 신고 도착한 광안리 (초필살 껍데기 광안리점)

그럼에도! 부산에서는 먹방을 빼놓을 수 없었다. 식단관리 중이긴 하지만 양을 조절하여 아주 맛있는 것들을 이곳저곳 먹으러 다녔답니다. 이를테면,


재작년 생일에 처음 갔다가 중독되어 버린 초필살 껍데기 (벌집 껍데기의 원조 맛집)

2012년(중2) 부산 가족여행 때 빠져버린 씨앗호떡

그 외 이재모 피자, 삼진어묵, 밀면, 시장 떡볶이 같은 부산 유명 맛집


한 달 반동안 고구마, 계란, 닭가슴살, 샐러드 위주로 먹다가 속세의 음식이 들어오니 정신이 혼미 해질 정도로 맛있을 수밖에 없었다. 슬프지만 세상엔 맛있는 게 정말 많다.

KakaoTalk_Photo_2025-06-02-12-12-54 009.jpeg 광안리 해수욕장

Young and lively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광안리. 내 young 하고 lively 한 20대의 남은 기간은 몸을 많이 움직이고 건강한 것들로 나를 가득 채워놓아야겠다. 그래야 그 이후의 삶도 20대의 경험으로부터 오는 원동력과 관성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임관 후 1년간의 혹독한 직무 적응 기간을 거쳤기 때문에 이제는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서 다른 것들을 돌아볼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다음 등산 기록은 중위로서의 새로운 마음가짐에 대해 써볼 예정이니 많관부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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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시장 근처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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