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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Jul 15. 2021

살아온 시간,살아내는 시간,살아가고 싶은 시간

고백하자면


어려서부터 병치레 없이 건강했고, 지금도 겉만 보아선 아주 튼튼한 사람이지만 나를 한번 주저앉게 한 그날 이후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평범한 하루가, 그 찰나의 시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이제는 안다.

막연하지만 한 번쯤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시간과 그 시간 안에 머무는 것들……. 그게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 무엇이든 말이다. 나는 대개 새벽 5시, 오전 10시, 그리고 오후 4시 그 언저리의 시간을 좋아하는데 오늘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동력인 그 새벽 5시를 되새겨 보고 싶다.



새벽 5시는 내가 가장 좋아하지만, 여전히 쉽게 눈 뜨기 힘든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새벽 5시의 공기는 어쩌면 병원의 공기가 거의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시간의 공기가 모여 내게 몇 년을 굳건히 살아갈 힘을 주고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어려서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었고, 좀 더 자라서는 내 전공 분야를 살려서 ‘무언가’ 하고 싶은 바람을 가졌었다. 그런데 간절함이 없는 무언가와 우유부단한 내 마음이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친정을 떠나 낯선 곳에서 다시 시작한 대학원 생활이 힘들어서 잠깐 쉬게 된 그 1년을 기점으로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다시 건강 문제로 결국 내 꿈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모두 잊은, 그저 그런 사람이 되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 후로 나를 그저 그런 사람이라 스스로 하찮게 여기고 있었다.


불규칙한 주기로 반복되는, 병원에서 맞는 새벽 5시의 공기는 낯설지만 늘 상쾌했다. 고열에 시달리다 입원 4일 차가 지나면 겨우 내 주변의 것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때마다 가장 먼저 나를 맞아준 것이 바로 새벽 공기였다. 한번 입원하면 2주 정도는 누워있는 병실 한 편의 내 자리는 대개 창가 자리였다. 간호사들의 혈압계 쟁반 소리보다 먼저 눈을 떠서 물 한 잔을 들이켜고 나면 창밖으로 까만 어둠이 옅게 드리운 새벽이 보였다. 그러면 뭐랄까. 알 수 없는 벅참이 마구 밀려왔다. 고열과 싸운 치열한 밤이 지나고 온몸이 땀으로 범벅된 그 새벽, 하루를 건강하게 시작할 수 있음이 왜 그리 감사한 지. 예고 없이 내 삶을 비집고 들어온 낯선 그림자를 이번에도 이겨냈다는 뿌듯함인지, 간절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여러 번 느낀 후라서 인지는 모르겠다. 너 잘 견뎌냈다는 토닥임이었을지도 모르지.


고통의 순간순간을 지나 더디 흐르던 긴 밤을 이겨낸 그 새벽을 떠올리면 흐트러졌던 나는 다시 단단해진다. 매일 평범한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 같았지만, 사실 나는 그 안에서 알게 모르게 웃고, 울고 숨 쉬며 나를 가꾸어 오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새벽 기운은 퇴원을 하고 대개 2~3주 가량 이어졌다. 작심 삼 주는 되었지만, 그 이상은 못 되었다.

내 의지와 무관한 일이긴 하지만,그래도 당분간 병원의 새벽 5시를 만나고 싶진 않다. 그런데도 다시 그 새벽 5시를 떠올리는 건, 오늘 그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꾸준히 건강 시계의 리셋을 반복하며 걸어온 만큼 시간을 더 감사히, 귀하게 쓰고 싶다. 물론 그 시간 속에 ‘내’가 좀 더 많았으면 하는 건 당연한 바람이다. 조금씩 숨을 불어넣은 내 자리에서 내 이름이 조금 더 빛났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날이었다. 탈 없이 오늘 밤이 지나고 내일 나의 하루는 새벽 5시, 우리 집에서 시작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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